예레미야 45

다시 여호야김때로 돌아간다. 예레미야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 바룩에게 불러주면 바룩은 주님의 말씀을 두루마리에 적는다.

주님의 말씀을 받는 예레미야나 그 말씀을 받아 적는 바룩이나 얼마나 암담했을까? 말씀을 받아 적으면서 고통과 슬픔에 잠겨있는 바룩에게 주님께서 위로의 말씀을 하신다. 평안이라곤 도무지 없는 바룩에게 말씀하신다.

주님은 심기도 하시고 뽑기도 하시는 분이시다. (음 좀 강하게 말하자면) 오직 나 주님만이 심기도 하시고 뽑기도 하신다. 그러니 네가 스스로 무엇을 하려고 하지마라. 재앙은 돌이킬 수 없다. 그래도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나 주님이 너의 생명은 지켜주겠다.

// 고통과 슬픔중에 평안을 구하는데 재난중에 생명만은 지켜주겠다는 것이 위로의 말씀이 될까?
// 목숨을 건지도록 보살펴 주신다니 영생이 아닌가? 재앙가운데도 임마누엘을 누린다면 구원이고 영생이다. 태평성대라도 임마누엘이 아니면 생명이 없다.
// 주님을 알고 주님의 아신 바 됨이 영생이다.

예레미야 44:15-30

//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을 그대로 닮았다. 예레미야와 주님께 불평과 원망을 한다. 좋든지 좋지 않든지 순종하겠다던 맹세는 어디로 갔는지

원망과 불평하는 자들의 주동자가 누구인가? 자기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줄을 아는 모든 남자들이라고 한다. 물론 부창부수다. 아예 대놓고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것도 “우리는 한번 한 말을 어길 수가 없다”라는 궤변을 이유로 댄다. 주님이 아니라 하늘의 여왕에게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할 때는 먹을 것이 풍부했으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는 것을 폐한 후에 궁핍과 칼과 기근에 멸망했다고 말한다. 여인들은 남편의 허락하에 하늘 여왕에게 분향했다고 자고한다. 부창부수다.

예레미야의 심정은 어땠을까? 예레미야는 하늘 여왕에게 분향한 일을 주님이 기억하셨다고 말한다. 주님이 그 악행과 가증한 행위를 참을 수 없으셔서 유다 땅이 오늘과 같이 황폐해지고 온세상이 놀라 저주하게 되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고 말한다. // 그러니 하늘 여왕에게 분향했기 때문에 먹을 것이 풍부하고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재앙의 전조였다.

예레미야는 거듭 말한다. 너희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이 같은 재앙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예레미야는 주님께서 하늘 여왕께 분향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그들을 상한 마음에 내버려 두실 것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주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자, 주님께 약속하는 자가 더이상 없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 결과는 복이 아니라 재난일 것이라고 하신다. 칼과 기근에 망하여 멸절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여전히 극소수에 대한 자비를 베푸신다. 복음이다. 칼을 피한 소수의 사람이 있다. 그들은 애굽 땅에서 나와 유다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들은 하늘 여왕을 따르는 것과 주님의 말씀 중 누구의 말이 진리인지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은 그 징표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손에 유다를 넘기신 것 같이 애굽도 넘겨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 저들의 신은 먹을 것이 풍부하고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않는 것이다. 저들의 나라는 (물질적)먹고 마시는데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영적인 (성령 안에서) 의와 희락과 화평이다. 개인적이지 않고 공동체적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나라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나라다.

예레미야 44:1~14

애굽 땅에 사는 모든 유다 사람들. 애굽 땅에 눌러 앉아 살기시작했나보다. 이들에게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된다.

주님의 말씀이다. 너희는 예루살렘과 유다 모든 성읍에 내린 나의 재앙을 분명히 보았다. 폐허가 되어 사는 사람들이 없다. 왜냐하면 너희 조상들이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섬기는 악행으로 나의 진노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주님은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어 경고했으니 그들이 듣지 않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악에서 돌이키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분과 노여움을 쏟아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를 불살라 폐허가 되게 하였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과 사귐이 없는) 멸절당해 유다 가운데 남은 자가 없게 할 작정이냐? 어찌하여 우상으로 나의 노여움을 일으켜 세상의 저주와 조롱의 대상이 되려고 하느냐? 유다 모든 백성의 악행을 기억하라. 그들이 오늘까지 겸손하지 아니하며, 삼가 주님과 세운 언약을 (율법과 법규를) 지키지 않는구나. 그러므로 주님이 말씀하신다.

주님이 너희를 향해 재앙을 내리시기로 작정하셨다. 주님이 온 유다를 끊어 버리실 것이다. 애굽 땅을 피난처로 고집한 유다의 남은 자들을 처단할 것이다. 그들이 다 멸망하여 애굽에서 죽을 것이다. 칼과 기근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죽어서 세상의 저주와 놀람과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될 것이다. 주님이 예루살렘을 벌하신 것처럼 애굽을 피난처로 삼은 남은 유다백성들도 벌하실 것이다. 그들 중에는 유다 땅으로 돌아갈 자가 없을 것이다. 도망치는 자들 외에는 돌아갈 자가 없으리라

// 애굽 피난처에서 도망쳐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 몇명 피난민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유다 땅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재앙의 예언 속에 담겨 있는 복음이다. 주님은 채로 치고 또 치신다. 채의 구멍이 점점 좁아져도 막히지는 않았다. 좁은 길이다. 예수님께서는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애굽 대신에 하나님나라를 구하는 자들은 적다. 그 적은 무리에게 세상나라 대신 하나님나라를 구할 용기를 주신다. 오늘도 감사함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다.

 

예레미야 43

예레미야는 주님의 기도응답을 백성들에게 말했다. 무리들이 애굽으로 내려갈 구실을 찾으려고 거짓으로 기도요청을 한 것임이 들통났다.

유다에 남은 자의 무리를 이끄는 요하난과 모든 오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라고 강하게 반항한다. 차마 선지자 예레미야를 직접공격하지 못하고 바룩이 예레미야를 부추겼다고 에둘러 말하지만 불순종의 영이 그들을 지배한다.

예레미야에게 반항하며 말한 사람들에게 모든 “오만한 자”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저들은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다. 악인들이다. 불순종 한다.

유다에 남겨진 무리들은, 쫓겨 났다가 유다 땅으로 다시 돌아 온 자들은 불순종하여 애굽땅으로 갔다. 예레미야와 바룩도 데리고 갔다.

애굽땅에서도 주님의 말씀은 예레미야를 통해 계속된다. 애굽을 피난처로 삼으면 그곳에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으리라는 말씀을 구체화 하신다.

제일 먼저 칼이다. 주님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을 불러와 칼로 얘굽 땅을 치고 죽일 자는 죽이고 사로잡을 자는 사로 잡고 칼로 칠 자는 칼로 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 불순종할 것이면서 주여 삼창을 하는 기도나, 불순종할 것이면서 여전히 성경책을 펴는 묵상이나, 불순종할 것이면서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 임마누엘이, 주님이 함께 하심이 구원이라는데. 주님은 순종하는 자와 함께 하시는데.

예레미야 42:15-22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유다의 남은 백성이 애굽을 피난처로 생각하고 그곳으로 간다면 잘못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고집하지 말라고 하신다.

만약 애굽으로 피난 간다면 칼과 기근이 애굽으로 따라갈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그것도 급히 따라 갈 것이라고 하시며, 애굽에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칼과 기근에 혹 살아남아도 전염병에 죽을 것이라고 하신다. 지금의 재난은 주님께서 내리시는 재난이라, 이 재난에서 벗어나서 살 자가 없다고 하신다.

주님은 강경하시다. 예루살렘에 부은 분노하심을 피난간 애굽에서도 붓겠다고 하신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를 피난처로 삼지 않고) 애굽을 피난처로 삼는 것 자체가 불순종의 극치다. 주님은 이런 백성을 가증하다고 하신다. 애굽으로 피난간 백성은 바밸론으로 포로잡혀간 백성과 달리 놀램과 저주와 치욕거리가 되며 다시는 유다땅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유다의 남은 자들아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아라. 주님의 말씀이다. 예레미야를 통한 경고다. 너희들이 내게 부탁한 기도에 대한 주님의 /기/도/응/답/이다. 너희는 순종이 아니라 애굽으로 피난할 구실을 찾기 위해 너희 마음을 감추고 나에게 기도 요청을 하였지만 주님의 뜻은 변하지 않는다. 주님의 기도응답에 순종할 마음이 없는 너희여, 너희가 가서 피난처로 삼고자 하는 곳에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을 줄 분명히 알아라.

// 그렇다. 우리의 피난처는 주님 한분이시다. 임마누엘이 구원이다. 주님은 순종하는 백성과 함께 하신다. 그러니 순종하는 곳에 구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