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5:14-19

느헤미야 5:14-19 (공동번역)

느헤미야의 유다출장은 십이년이나 되었다. 느헤미야는 그 기간동안 총독으로서의 급여를 받지 않았다. 느헤미야는 선임 총독들이 양식과 술값으로 세금을 걷어 백성들을 괴롭히고 수하들이 백성을 착취하던 것을 답습하지 않았다. 하느님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수하 사람들과 아무런 보상 없이 성벽재건에 온 힘을 다했다. 느헤미야에게는 방문객을 제외하고도 돌봐야 할 관리들이 백오십명이나 되었다. 느헤미야는 이들을 자기 부담으로 먹였다. 그렇지 않아도 부역으로 허덕이는 백성들의 형편을 알기 때문에 총독의 녹을 받겠다고 백성을 착취하지 않았다. 느헤미야는 하느님께 자신이 한 일을 기억하시고 잘 보살펴 주시기를 기도한다.

//형편이 어려운 백성들을 위해 이자를 받지 않기로 서약하는데 앞장 선 느헤미야. 느헤미야는 12년 동안 백성들의 세금으로 마련되는 총독의 급여도 받아지 않았다. 오히려 수하 관리들의 식탁까지 책임졌다. //총독의 급여를 받는 것과 총독의 수하들이 백성들을 착취하는 것은 일종의 관행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가난한 자들의 사정을 알아주었다. (잠29:7)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듯, 느헤미야는 자기의 착한 행실에 대한 보상도 하나님께 맡겼다. 느헤미야는 개인적인 보상보다, 성벽재건이라는 사명 완수가 보상이기를 바란 것 같다. //은혜의 구원 외에 바랄 보상이 무엇인가? 없다.

느헤미야 5:1-13

느헤미야 5:1-13 (공동번역)

한 손에 무기를 다른 한 손에 공구를 들고 일을 해도 유다인 공동체에는 불평이 생긴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공동체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신세 한탄에 느헤미야는 매우 화가 났지만 마음을 억누르고 유지들과 관리들을 소집해서 동족간에 돈놀이 하는 것을 호되게 꾸짖었다. 동족간의 돈놀이는 겨레를 팔아먹는 일이라고 책망하자 유다 유지들과 관리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느헤이먀는 이건 다른 나라 사람들로부터도 욕먹을 짓이며, 하느님을 두려운 줄 알고 산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느헤미야는 자기도 자기 일가와 수하에서도 비록 장리변을 놓는 돈놀이를 하고 있지만 변리를 포기하기로 했다고 솔선수범했다. 그리고 유지들과 관리들도 토지를 당장 돌려주고 이자를 받은 것은 돌려주라고 명령했다. 유지들과 관리들은 느헤이먀의 말대로 이자를 받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느헤미야는 사제들 앞에서 변리를 받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았다. 그리고 이 서약을 지키지 않으면 옷자락을 털듯이 하느님께서 털어버리실 것이라고 말했다. 성전에 참여하지 못하고 빈털털이로 떠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온 회중은 아멘으로 화답하며 야훼를 찬양했다. 백성은 서약한 대로 하였다.

//외환이 잠잠해지면, 내우가 꿈틀거린다. 성벽 재건을 위해 유다 공동체가 일치 단결한 것 같았는데, 유다 공동체 내에는 빈곤이라는 내우가 터져버렸다. 그것도 동족간의 돈놀이로 입에 풀칠도 못할 지경이 된 겨레가 있었다. 이들에게는 성벽 재건보다 당장 입에 풀칠하는 문제가 더 컸다. 느헤미야가 자신과 자기 일가와 수하 사람들도 돈놀이를 하고 있다고 고백했듯이 돈놀이 자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돈놀이가 가난한 자들의 착취로 이어지면 율법을 범하는 것이다. 느헤미야는 가난한 자들의 형편을 알고 이자를 받지 않기로 했고, 다른 채권자들에게도 동참하라고 솔선수범했다. 유다 공동체는 아멘으로 화답하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착한 사람이 세력을 펴면 백성이 기뻐하지만 나쁜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백성이 한숨짓는다. 착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돌보지만 나쁜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잠29:2,7 공동번역) 우리 말에 ‘착하다’는 말처럼 두루뭉실한 말이 또 있을까 싶다. 잠언에서 착한 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의롭다’ 라고 번역되는 단어다. 착하든 의롭든 이 성품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느헤미야처럼 솔선수범해야 할 이유다. 혼자 착하고 혼자 의로울 수는 없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진력한다고 일상의 착함/의로움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 물리적 성벽재건보다 보이지 않는 무너진 공동체 울타리를 쌓아 올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교회 공동체에서도 새로운 교회당을 건축하는 것보다 성도간에 바른 교제를 회복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느헤미야 4:15-23

느헤미야 4:15-23 (공동번역)

성벽재건을 방해하려는 원수들은 느헤미야와 유다사람들이 자신들의 공격을 눈치채고 대비를 갖추었다 소식에 물러갔다. (느헤미야는 하느님께서 원수들의 계획을 뒤엎으셨다고 기록한다.) 느헤미야와 유다 사람들은 성으로 돌아가 모두 저마다 맡은 일을 다시했다. 그래도 원수들의 재공격에 대한 방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느헤미야는 젊은이들을 반으로 나눠 반은 일을 하고 반은 싸움에 대비하게 했다. 한 손에는 무기를 다른 손에는 공구를 잡고 일을 했다. 느헤미야는 나팔수를 두어 언제든지 사이렌을 울릴 수 있게 했다. 나팔소리가 나면 힘을 합해 원수들과 싸울 수 있도록 했다. 느헤미야는 하느님께서 자신들의 편이 되어 싸워주실 것이라고 격려했다. 성벽재건에 참여한 사람들은 동틀 때부터 별이 보일 때까지 일을 했다. 집에도 가지 않고 성 안에 묵으면서 한편으로는 파수를 서고 한편으로 성벽을 재건했다. 느헤미야와 느헤미야의 수하들도 솔선수범하여 자신들의 옷을 벗는 일이 없었고 손에서 무기를 놓는 일이 없었다.

//하나님은 원수들의 계획을 뒤엎으신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 것도 안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주님이 뭔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주님의 뜻을 기대하고 실천하는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환난이 따르기 때문이다. 사실 기도는 주님의 뜻을 기대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꼭 해야 하는 것이다. 환난에 대한 도우심은 주님의 뜻을 기대하고 실천하는 기도에 뒤따르는 기도요, 주님을 뜻을 실천할 능력을 구하는 자연스러운 기도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자신들의 편이 되어 싸워주실 것이라고 확신하면서도 한 손에는 무기를 다른 손에는 공구를 잡으라고 명령한다. (하나님이 미덥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느헤미야와 측근들이 솔선수범한다. 게으름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는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연약해도 우리가 가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계획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손을 사용하시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의의 병기로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기를 간구한다.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있는 깨끗한 그릇이 되기를 원한다.

느헤미야 4:7-14

느헤미야 4:7-14(공동번역)

성벽 재건 소리에 비아냥 거렸던 산발랏과 토비야와 아랍인들과 암몬인들과 아스돗인들은 성벽재건이 반쯤 진행되자 화가 나서 성벽 재건을 혼란에 삐뜨리려고 예루살렘을 치기로 동맹을 맺었다. 느헤미야를 비롯한 성벽 재건에 참여한 사람들은 하느님께 기도하는 한편, 보초를 세워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유다인들 사이에서는 성벽재건에 대한 의지가 꺾이는듯한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원수들이 언제 쳐들어와 자신들을 죽이고 성벽재건을 중단시킬지 걱정했다. 원수들은 여남은 번이나 공격하려고 했다. 느헤미야는 무장한 수비대를 성 밖 아래 평원에 배치하여 대비했다. 느헤미야는 수비대에게 원수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높이 계시고 마땅히 경외해야할 주님을 잊지말라고 독려했다. 그리고 일가 친척과 처자들을 위해 싸우라고 사기를 붇돋우었다.

//성벽재건을 방해하는 공격에 느헤미야와 사람들은 선기도 후대비를 했다. 자신들의 대비에 부족한 부분을 메꾸기 위해 기도 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기도에 합당한 행실을 한 것이다. 이들의 기도는 성벽재건을 방해하는 자들에 대한 대비가 우선 순위가 아니라, 성벽재건의 완수가 우선이었다. //우리의 기도는 어떤가? 내가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 부분을 채워 달라고 기도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사명에 충실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주님의 뜻을 따르는데 방해되는 요소들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모든 일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주님의 뜻을 기대하는 인내와 연단에는 환난이 따르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마지막에 일가 친척과 처자들을 위해 싸우라고 결연히 말한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행하는 일은 가족과 공동체를 위한 일이다. …

느헤미야 4:1-6

느헤미야 4:1-6 (공동번역)

느헤미야(우리)가 돌아와 성을 쌓고 있다는 소식에 유다인들을 우습게 보고 있었던 산발랏은 화가 났다. 산발랏은 자기 일족들과 사마리아 세력가들에게 성벽을 보수하는 사람들을 ‘유다 놈들’이라고 부르며 빈정거렸다. 암몬 사람 토비야도 ‘여우만 올라가도 무너질 성을 쌓는다’ 하고 맞장구쳤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조롱받고 있다고 (우리) 하느님께 토로(기도) 했다. 그들의 악담을 그들에게 도로 쏟아달라고 기도했다. 그들이 남의 나라에 끌려가서 수모를 받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성을 쌓는 자신들을 약만 올리는 그들의 못된 죄를 덮어주지 마시길 기도했다.
유다사람들은 기어이 해내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성벽 보수를 계속했다. 성벽은 허물어지는 일 없이 반쯤 올라갔다.

https://quietwaters.blog/2019/03/04/

//성벽 보수에 대한 반대와 빈정대는 소리를 들은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기도한다. 성벽보수는 개인의 사명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이뤄가야 할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짧은 본문에서 느헤미야는 ‘우리’라는 단어를 여러번 반복한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도 우리가 우리 아버지께 드리는 공동체적 기도다. //나의 기도생활에는 과연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차지하는지? 나의 기도만, 개인적인 기도만 하지는 않는지 돌아본다. ‘우리’의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공동체를 향한 우리 아버지의 뜻을 알아가야 한다. ‘우리’를 위해 내 뜻으로만 기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족을 넘어, 다락방과 교회 공동체와 국가와 열방을 품는 기도가 절실하다. //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도록 말씀과 성령으로 가르쳐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