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16:14-21

오늘 아침에는 쳐박아 놓았던 묵은 커피를 가져와서 갈았다. 사무실에 커피 향이 가득하니 좋다. 묵은 커피라 내려 마시기는 뭐하지만 향기는 찌든것 같지 않다.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출애굽, 포로지에서의 귀환만 아니라 우리 행위에 대한 분명한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만이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신다. 심지어 (악한 백성을 벌하시기 위해 도구로 사용하신) 열방도  이 일로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하나님 앞에 나올것이다.

백성의 회복과 열방의 회개. 백성의 회복도 회개의 열매고 열방의 회개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로 회복하는 것이니 다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낸다. 다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낸다.

 

 

 

렘 16:1-13

인생사에 잔치와 (출생과 결혼) 장례식 만큼 중요한 것이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서양에서 천주교 신자들은 평생에 딱 세번 출생신고 결혼신고 사망신고하러 교회간다는 농담이 생겼을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것들을 하지 말라고 하신다. 결혼하지 말라. 초상집에 가지 말라. 잔치집에 가지 말라. 한마디로 재앙의 날이다. 재앙이란 무엇인가? 독한 병, 칼과 기근으로 대표되는 심판이 곧 재앙이지만, 핵심은 고통의 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평강과 인자와 사랑을 우리에게서 거두시는 것이다 [렘 16:5]. 본문 마지막절에서는 알지 못하는 땅으로 끌려가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13] 이라고 말씀한다.

다시 말하면 재앙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는 것 그 자체다. 그결과 하나님나라에서 쫓겨 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를 받지 못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재앙중의 재앙이다.

악한 마음 완악함을 버리고 오늘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렘 15:10-21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물이 마르다가도 흐르고 흐르다가고 마르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도랑같이 되었다고 항변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으면 기쁘고 즐거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사람들은 깔깔대고 비웃는 것을 경험한다. 하나님 말씀의 권위가 말라버린 것을 느낀 것이다. 오늘날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사람들 앞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라고 하신다. 사람들 편에 서서 하나님을 상대로 이러쿵 저러쿵하지 말고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선포하라고 하신다. 사람들 편에 서서는 안된다.

놋쇠로 만든 성벽이 된다고 철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다. 예레미야가 견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15:20]”라는 뒷부분에 답이 있다.

예레미야보다 더 불쌍하고 비참할 수 있을까?

내가 너와 함께 하여. 임마누엘!  그래도 이런 약속을 받았으니…

렘13:20-27

새벽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 악에 익숙한 세상을 씻어주려는 하나님의 열심일까요? 얼마나 비를 맞으면 깨끗해 질까요?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죄씻음 받기를 원하네 내 죄를 씻으신 주 이름 찬송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라고 하십니다. [렘13:23]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가 뜨겁게 달궈진 대지를 식힐 수는 있지만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떠오른 구절이 이사야 1:18 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아멘

그런데 여기서도 죄씻음이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고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을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라는 구체적인 삶의 실천과 연결되어 있네요. 그냥 속죄제사를 드린다고 깨끗해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나의 수치를 드러내십니다. 학교 구석 구석에 있던 먼지 쌓인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든 생각과 같습니다. 귀한 말씀을 듣고, 묵상하기도 하고, 이렇게 적어보기도 한들 실천하지 않으면 먼지 쌓여 망가진 물건들과 다를게 없구나. 그냥 버려야 하는 구나. 그나마 먼지를 살짝 툭툭 털기만 하면 되는 물건들은 건졌습니다만, 저도 그것으로 사는 것 같습니다. 정말 별거없네요.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냐?”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예레미야에게는 유다백성에게 소망이 전혀 없는 투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하나님의 도에 익숙해 지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제게 소망을 두시고 물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렘 13:12-19

대관식 vs폐위

대관식은 전제 군주가 왕위에 오를 때, 왕관을 받는 예식이다. 서양에서는 보통 왕위 계승자가 성직자 앞에 꿇어 앉으면 왕관을 씌움받음으로 왕이 된다. 대관식의 핵심이 바로 꿇어 앉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꿇어앉는 것 못지않게 하나님 앞에 겸비한 것이 중요하다. 영국의 대관식도 마찬가지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도 “하나님께서 저를 도우시기를 바랍니다”라는 간구로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사실 대관식이 좀 더 자주 거행되어야 하나님께서 대관식의 주관자이심이 선포될 수 있는데 엘리자베스 2세는 너무 오래 왕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하나.

“너는 왕과 왕후에게 전하기를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관 곧 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졌다 하라” [렘 13:18]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끊임없이 청종하라고 하신다. 교만하지말라고 하신다. 교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다.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 구절은 화관 대신 재를, 희락 대신 슬픔을, 찬송 대신 근심을 자초한다. 교만해서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낮추어 앉은 (겸손한 ) 왕과 왕후에게 왕관을 씌워주시는 것이 아니라 (교만한 왕과 왕후에게 강제로)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고 명하신 후 왕관을 벗기신다고 하신다. 대관식 잔치가 되어야 할 자리가 폐위 당하는 자리가 된것이다.

하루를 대관식 잔치로 마치느냐 아니면 폐위의 수치로 마칠지는 겸손과 교만이 결정한다.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