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13-25

고린도전서 14:13-25 (공동번역)

그러므로 이상한 언어로 말하는 사람은 그것을 해석하는 능력까지 얻으려고 기도하십시오. 만일 내가 이상한 언어로 기도한다면, 기도하는 것은 내 심령뿐이고 내 이성은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나는 심령으로 기도하는 동시에 이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심령으로 찬미의 노래를 부르는 동시에 이성으로도 찬미의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심령으로만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면 그 집회에 참석한 보통 교인들은 당신이 말하는 것을 알아듣지 못할 터이니 어떻게 그 감사의 기도 끝에 “아멘” 하고 응답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훌륭하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만 남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나는 여러분 중 어느 누구보다도 이상한 언어를 더 많이 말할 수 있다는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이상한 언어로 일만 마디의 말을 하느니보다는 차라리 내 이성으로 다섯 마디의 말을 하고 싶습니다. 형제 여러분, 생각하는 데는 어린아이가 되지 마십시오. 악한 일에는 어린아이가 되고, 생각하는 데는 어른이 되십시오. 율법서에 “‘내가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자들의 혀와 외국인의 입술을 빌려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은 끝내 내 말에 귀담아듣지 않으리라.’ 주께서 말씀하신다.”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상한 언어는 믿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능력의 표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능력의 표입니다. 만일 온 교회가 모여서 저마다 이상한 언어로 말하고 있을 때 보통 교인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들어온다면 그들은 여러분을 보고 미쳤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모두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고 있을 때, 믿지 않는 사람이나 보통 교인이 그 자리에 들어온다면 그 사람은 모든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마음에 가책을 받아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고 마침내 자기 마음에 품은 비밀이 폭로될 것입니다. 그러면 엎드려 하느님을 경배하며 “진정으로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하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고전 14:13-25
//공동번역에서는 본문의 방언을 ‘이상한 언어’라고 번역한다. 본문의 내용을 살펴본다면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라는 뜻이다. 곧 누군가 해석해 주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인 셈이다. 사도행전 2장에서는 방언을 외국어와 지방어라고 번역한다. 곧 그 지역 출신이라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다. //사도행전의 방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보통 교인들이 듣고 마음에 가책을 받아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한 말이고, 고전의 방언은 개인의 경건에 유익을 위한 말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고전의 방언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의 표로 사용될 수도 있다. //14장 앞부분에서 적용했듯이 성령의 은사는 개인의 유익보다 교회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방언보다 예언이 중요하다고 교훈한다. 바울은 심령뿐만 아니라 이성으로도 기도하라고 하신다. 영적 예배란 심령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이성으로 드려져야 한다. 심령은 거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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