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9:1-24 읽기

1-3 사울은 이제 속마음이 아니라, 아들 요나단과 신하들이 있는 자리에서 대놓고 다윗을 죽이겠다고 말했다. 요나단은 다윗을 매우 좋아해 다윗에게 이 사실을 귀뜸해 주고 외진 곳으로 가서 숨어 있으라고 말했다. 요나단이 사울의 마음을 확인하고 다윗에게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4-7 요나단은 사울에게 다윗의 좋은 점들을 얘기 했다. 그리고 다윗을 해치는 죄를 지으시면 안된다고 말했다. 왜 이유도 없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시는지 물었다. 사울은 요나단에게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사울에게 데리고 가서 전처럼 사울을 모시게 했다.

8 또 블레셋과의 전쟁이 일어났다. 다윗이 나가 블레셋을 크게 무찔렀다.

9-10 사울이 창을 들고 궁궐에 있을 때, 주님께서 보내신 악한 영이 사울을 강하게 사로 잡았다. 사울은 수금을 타고 있는 다윗을 창으로 죽이려고 했으나 다윗이 피해 목숨을 건졌다. 그날 밤에,

11-18 사울은 다윗의 집에 부하들을 보내 다윗을 아침에 죽이라고 시켰다. 다윗의 아내 미갈이 다윗에게 오늘 밤에 피하라고 경고하고 다윗을 창문으로 내려 보냈다. 다윗은 달아나서 목숨을 건졌다. 미갈은 집에 있는 우상으로 다윗을 만들어 침상에 뉘였다. 아침에 사울의 부하들이 다윗을 잡으러 오자 다윗이 병들어 누워있다고 말했다. 사울은 다윗이 정말 아픈지 침대째 들고 오라고 부하들에게 말했다. 부하들이 와서 확인하니 침대에는 다윗이 아니라 우상이 누워있었다. 사울은 미갈에게 호통쳤지만, 미갈은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거짓 대답을 했다. 다윗은 도망쳐서 라마에 있는 사무엘을 찾아갔다. 다윗의 말을 들은 사무엘은 다윗을 데리고 나욧으로 가서 살았다. 

 19-24 다윗이 라마의 나욧에 있다는 소식이 사울에게 들어갔다.  사울은 다윗을 잡으려고 부하들을 보냈다. 그곳에서는 예언자들의 무리가 사무엘 앞에서 춤추고 소리치며 예언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사울이 보낸 부하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내려서 그들도 춤추고 소리치며 예언을 했다. 사람들이 이 소식을 사울에게 알렸다. 사울이 두번 세번째로 보낸 부하들에게도 마찬가지 였다. 결국 사울이 직접 라마로 갔다. 사울은 사무엘과 다윗이 있는 라마의 나욧으로 가는데 그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내려서 나욧에 이르기까지 춤추고 소리치며 영광상태에서 예언을 하며 갔다. 사무엘 앞에 도착한 사울은 옷까지 벗어 버리고 춤추고 소리치면서 예언을 하고 난 후, 사울은 그날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쓰러져 있었다. (“사울도 예언자가 되었는가?” 하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아꼈다. 그래서 사울에게 충언을 했고 사울은 잠시나마 악한 영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윗이 승승장구 할 수록 악한 영이 사울을 더욱더 강하게 사로잡았다. 이번에는 다윗의 아내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의 피난을 돕고 사울에게 거짓 대답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사울에게 기름부었던 사무엘이 자신을 찾아 온 다윗을 지켜주었다. 사무엘을 찾아간 사울의 부하들도, 그리고 마침내 사울도 예언자가 되었다. //악한 영에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살인을 도모하고,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은 예언을 한다. 악한 영을 덮을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영이다. 사울이 옷까지 벗어 버리고 춤추고 소리치며 영광상태에서 예언을 했다. 하나님의 영에 완전히 사로잡힌 모습이다.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 올 때, 다윗도 하나님 앞에 이런 모습으로 선 적이 있다. 다윗은 자신을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하나님 앞에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뛰놀았다고 말한다. 더 낮아지고 천하게 보여도 괜찮다고…) 사실 사울이 처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일어났던 일이다. 사울은 처음을 생각하고 겸손해야 했다. 그러나 왕권에 집착한 사울은 진정한 왕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의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친구/아내(가족)/종교지도자로부터 아낌을 받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은 친구 가족 신앙공동체 식구들을 아껴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이 사랑은 신앙공동체 바깥 사람들에게도 확장되어야 한다. ////정결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정직한 영을 사모해야 한다. 그래야 성령께서 떠나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항상 간직해야 한다.

사무엘상 18:17-30 읽기

17-19 사울은 다윗을 자기 손이 아니라 블레셋과의 전장에서 죽게 하려고 마음 먹었다. 사울은 다윗에게 맏딸 메랍을 아내로 줄 터이니 먼저 ‘주님의 싸움’을 싸워서 용사인 것을 증명하라고 말했다. 다윗은 감히 임금님의 사위가 될 수 없다며 사양했지만, 사울은 다윗을 사위로 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때가 되자 사울은 메랍을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과 결혼시켰다.

20-29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했다. 사울은 이 사실을 알자 미갈을 다윗에게 주기로 했다. 다윗을 블레셋과의 전장에서 죽게 하겠다는 사울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사울은 다윗을 사위로 삼기로 했다. 이번에도 다윗은 임금님의 사위 자리를 사양했다. 사울은 신하들을 시켜 결혼 지참금으로 블레셋 남자의 포피 백개면 충분하다고 다윗에게 전했다. 사울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할 셈이었다. 이번에는 다윗이 왕의 사위가 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윗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블레셋 남자 이백명을 쳐죽이고 그들의 포피를 가져다가 요구한 수대로 사울에게 바쳤다. 사울은 미갈을 다윗의 아내로 주었다. 사울은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는 것과 미갈도 다윗을 사랑하는 것을 보고, 다윗을 점점 더 두려워하게 되어, 마침내 평생 원수가 되었다.

30 블레셋 사람들은 틈틈히 이스라엘을 침입했지만, 그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장군들 보다 더 큰 전과를 올렸다. 다윗은 아주 큰 명성을 얻었다.

//사울이 악령에 씌인게 분명하다. 거짓과 (약속을 어기고) 다윗을 죽이려는 생각으로 꽉 차 있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그에 반하여 다윗에게는 주님의 영이 함께 한다. 부마 자리를 사양하는 겸손이 그 증거다. 다윗이 마침내 왕의 사위가 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좋다는 것은 좌우로 치우치지 않은 옳은 결정이라는 뜻이다. 주님은 이런 다윗의 생각을 이스라엘의 원수 블레셋 사람들을 벌하시는 데 사용하셨다. 그리고 다윗은 승승장구로 백성의 마음도 샀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왕도 무서워할 수 밖에 없다. 왕이 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사무엘상 18:1-16 읽기

1-5 [다윗은 사울에게 자신을 이새의 아들이라고 대답한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마음이 끌려, 다윗을 제 목숨처럼 아끼는 마음이 생겼다. 사울은 다윗을 자기와 함께 머무르게 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했다. 요나단은 다윗을 아끼어 가까운 친구로 지내기로 굳게 언약을 맺었다. 요나단은 자신의 겉옷을 벗어서 다윗에게 주고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모두 다윗에게 주었다. 다윗은 사울이 어떤 임무를 주어도 맡은 일을 잘 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을 장군으로 임명했다. 온 백성과 사울의 신하들까지도 다윗을 장군으로 임명한 것을 마땅하게 여겼다.

6-16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 죽이고 개선할 때,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여인들이 북치고 장구치고 노래하고 춤추며 사울 왕을 환영했다. 여인들은 “사울은 수천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명을 죽였다” 하고 노래했다. 이 말에 사울은 몹시 언짢았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사울은 사람들이 다윗에게 왕의 자리를 돌릴 것이라고 투덜거렸다. 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사울에게 하나님이 보내신 악한 영이 내리자, 사울은 미쳤고, 다윗은 수금을 탔다. 그때 사울은 가지고 있던 창을 다윗에게 던졌다. 다윗은 사울 앞에서 두번이나 몸을 피했다. 사울도 주님께서 자기를 떠나 다윗과 함께 하심을 알고 다윗을 두려워했다. 사울은 다윗을 천부장으로 임명하여 전방으로 보내버렸다.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셔서 다윗은 어디를 가든지 항상 이겼다. 다윗의 승승장구에 사울은 더욱 더 다윗을 매우 두려워했다. 그러나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늘 앞장서서 싸움터에 나가는 다윗을 좋아했다.

//저자는 요나단이 다윗을 아끼었다고 반복한다. 개역개정에서는 요나단이 자기 생명 같이 다윗을 사랑했다고 번역한다. 이 ‘사랑’은 분명 ‘동성애’다. ‘동성성애’ 곧 ‘homosexuality’ 와 굳이 구분한다면 ‘형제애’ (brotherhood)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사랑을 love 보다 sexual relationship 에 국한하여 이해한다. 그래서 건전한 (sexless) ‘동성애’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요나단과 다윗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물론 오늘날 ‘동성애’는 ‘동성성애’와 동일시 하는 단어다. //다윗이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치솟자, 사울은 다윗을 시기한다.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늘 앞장 서서 싸움터에 나가는 다윗을 좋아했으나 사울은 다윗을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이 구절에 쓰인 ‘좋아하다(새번역)/사랑하다(개역개정)’는 요나단이 다윗을 아끼고 사랑했다는 그 단어와 같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이타적이다. 희생적이다. 자신의 성적욕구를 만족시키는 행위가 결코 아니다. 성애와 관계없는 사랑이 더 많다. //성경은 혼외 성관계는 이성성애든 동성성애든 차별없이 죄라고 가르친다. 대신 성애가 아닌 애(사랑)은 그 어떤 관계에서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다. 선하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는 사랑으로 시작하고 절제로 마무리 된다. 사랑은 아끼는 것이요, 그것도 자기 생명처럼 아끼는 것이다. 모성애와 부성애가 그렇고 부부애도 그렇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다. 

사무엘상 17:41-58 읽기

41-44 골리앗은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 점점 다가왔다. 골리앗은 홍안의 소년 다윗을 보고, 다윗을 우습게 여겼다. 골리앗은 다윗에게 “막대기를 들고 나아오다니, 네가 나를 개로 여기느냐?” 말하곤,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했다. 골리앗은 다윗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말했다.

45-47 다윗은 골리앗에게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주님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 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 또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 이기고 지는 것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 하고 말했다.

48-53 골리앗이 점점 다가오자, 다윗은 재빠르게 골리앗이 서있는 대열 쪽으로 달려가면서 주머니에서 돌을 하나 꺼내, 그 돌을 무릿매로 던져서, 골리앗의 이마를 맞혔다. 골리앗이 이마에 돌을 맞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다윗이 칼도 들지 않고 골리앗을 죽였다. 다윗이 달려가서 골리앗을 밟고 골리앗의 칼집에서 칼을 빼어 골리앗의 목을 잘랐다. 불레셋 군인들은 자기들의 장수가 죽는 것을 보자 모두 달아났다.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 함성을 지르며 블레셋 사람을 쫓아서 가이를 지나 에그론 성문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죽였다. 이스라엘 자손은 블레셋 군대를 쫓다가 돌아와서 블레섹 군대의 진을 약탈했다.

54 다윗은 골리앗의 머리를 예루살렘에 가지고 갔으나, 골리앗의 무기들은 자기 집에 간직했다.

55-58 사울은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 군사령관 아브넬에게 저 소년이 누구의 아들인지 물었다. 아브넬이 자신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사울은 다윗이 누구의 아들인지 아브넬에게 직접 알아오라고 명령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오자 아브넬이 다윗을 사울 앞으로 데리고 갔다. 다윗은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었다. 사울이 다윗에게 누구의 아들이냐고 물었다. 다윗은 “베들레헴 사람, 임금님의 종 이새의 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골리앗이 홍안의 다윗을 우습게 보고 (앞세우던 방패잡이 뒤로하고) 다윗에게 다가왔다. 다윗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무릿매로 돌을 던져서 골리앗 이마를 정통으로 맞혔다. (코미디 영화처럼 덩치만 믿고 덤빈 골리앗에게 다윗이 권총을 쏜 셈이다.) 골리앗의 육중한 몸은 그대로 땅에 꼬꾸라졌고, 다윗은 골리앗이 차고 있던 칼로 골리앗의 머리를 베었다. 장수를 잃은 블레셋은 풍비박산이 났다. //사울은 다윗이 누구의 아들인지 몰랐다. 악령이 임할 때 와서 수금을 타 주고 돌아가는 수금쟁이의 출신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신하들이 다윗을 사울에게 추천했었건만 군대장관 아브넬에게도 다윗의 존재감은 없었다. 따라서 사울이 다윗을 자신의 무기드는 수행비서로 세우는 16장 21절은 이 사건 이후의 기록일 것이다. //사울은 출정하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를 축복했음에도, 승전 후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는 대신 골리앗을 죽인 용사 다윗에게 관심을 가졌다. 사관은 14장 51절에서 용사들과 힘 센 사람을 모으는 것이 사울의 치적?이라고 이미 기록했었다. 약속대로 다윗을 부마로 삼아야 하고, 다윗의 아버지 집안에 면세도 해줘야하니 급하게 다윗이 누구의 아들인지 물었을 것이다.//그러나 정작 다윗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골리앗을 상대하지 않았다. 다윗이 대적한 것은 전장에 모인 사람들 (아군을 포함한) 전부였다. 다윗은 이번 싸움으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다윗은 하나님이 칼과 창이 아닌 것으로 구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라는 것을 온 세상이 알기를 원했다. 골리앗이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대적했던 것처럼,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성도가 가지고 던져야 할 무릿돌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도가 가지고 다녀야 할 무릿매는 성령이다. 말씀을 읽지 않으면 던질 말씀도 없고, 무릿매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말씀을 제대로 깨달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성도가 세상에서 무기력한 이유는 그리스도로 옷입지 않고, 몸에 맞지 않는, 성도에게 익숙하지 않은 세상 갑옷을 입으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ㅠㅠ

사무엘상 17:24-40 읽기

24-27 골리앗의 등장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달아났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또 올라와서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있어. 임금님은 누구든지 저 자를 죽이면 많은 상을 내리시고 사위로 삼으시고 그 집안에는 모든 세금을 면제해 주신다고 하셨네” 하고 서로 수군 거렸다. 다윗이 곁에 선 사람에게 “저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이스라엘이 받은 치욕을 씻어내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준다구요? 저 할례도 받지 않은 블레셋 녀석이 무엇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군인들을 이렇게 모욕하는 것입니까?” 군인들은 골리앗을 죽이는 사람에게는 이러이러한 상이 내릴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28-30 다윗의 맏형 엘리압이 다윗에게 “너는 어쩌자고 여기까지 내려왔니? 양은 누구에게 맡겼니? 건방지고 고집 센 녀석아, 넌 전쟁이 구경거리인줄 아니?” 하고 꾸짖었다. 다윗은 뭘 잘못했느냐며 엘리압에게 대들었다. 그리고 형을 떠나 다른 군인들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그들도 똑같은 말을 다윗에게 해주었다.

31-37 다윗이 한 말이 군이들에게 알려지고 누군가 사울에게 보고했다. 사울은 다윗을 데려오게 했다. 다윗은 사울에게 골리앗 때문에 사기를 잃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임금님의 종인 자신이 블레셋 사람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말했다. 사울은 다윗을 말렸다. 어린 소년이 어떻게 군인으로 뼈가 굵은 사람과 싸울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다윗은 굽히지 않고, 자신은 아버지의 양 떼를 사자나 곰으로부터 지켜냈다고 사울에게 말했다. 사자나 곰이라도 덤벼들면 죽였으니, 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도 그 꼴로 만들어 놓겠다고 말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자를 어떻게 그대로 두겠느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다윗은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자신을 살려주신 주님께서 골리앗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자신을 살려 주실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제서야 사울이 다윗에게 허락했다. 사울은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길 바란다고 축복했다.

38-40 사울은 자기의 군장비로 다윗을 무장시켜 주었다. 다윗은 머리에 놋투구, 몸에는 갑옷을 입고, 허리에 사울의 칼을찼다. 다윗은 시험삼아 몇걸음 걸었지만 익숙하지 않았다.제대로 걷지 못했다. 결국 다 무장을 다 벗어 버렸다. 자기에게 익숙한 목동 지팡이를 들고 시냇가에서 돌 다섯개를 골라서 자기가 메고 다니던 목동의 도구주머니에 넣은 후, 자기가 쓰던 무릿매를 손에 들과 블레셋 사람에게 가까이 나아갔다.

//맏형 엘리압에게 대들고, 사울 왕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다윗. 그의 자신감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사울도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길 축복했다. 그럼에도 사울은 자신의 갑옷으로 다윗을 무장시켜 주었다. 만약 다윗이 사울의 놋투구를 쓰고 몸에는 갑옷을 입고 허리에 사울의 칼까지 차고 나고 싸워 이겼다면 군인들이 다윗을 사울로 착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깨 하나가 큰 사울의 군장이 다윗에게 맞을 리 없었다. 익숙하지 않았다. 다윗은 마침내 자기에게 익숙한 목동으로 무장하고 골리앗에게 가까이 나아갔다. ////자기가 메고 다니던, 자기가 쓰던…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 평소의 삶이 중요하다. 다윗이 골리앗에서 맞설 수 있었던 이유는 맏형 엘리압에게도 임금 사울 앞에서도 굽힐 줄 모르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주님의 영이 다윗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득권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마음, 세상 가치관을 거스리는 마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다. 바울이 오직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권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