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2:4-21

열왕기하 12:4-21 (공동번역)

요아스가 사제들에게 지시하였다. “사람들이 야훼의 성전을 위하여 의무적으로 바치는 헌금이나 자원하여 바치는 헌금이나 간에 야훼의 전에 바치는 모든 거룩한 헌금은 사제들이 각기 담당 회계에게서 받아두었다가 야훼의 전을 수리할 곳이 있으면 그 돈으로 모두 수리하여라.” 그러나 요아스 왕 제이십삼년, 그 때까지 사제들이 성전을 수리하지 않고 있었으므로 요아스 왕은 여호야다를 비록하여 다른 사제들을 불러놓고 일렀다. “어찌하여 그대들은 성전을 수리하지 않고 있소? 이제부터 그대들은 회계원들에게서 돈을 받아두지 말고 성전을 수리하는데 쓰도록 직접 내어주시오.” 사제들은 백성들로부터 돈을 받지도 않으려니와 성전을 수리하는 일도 맡지 않겠다고 하였다. 사제 여호야다는 큰 궤짝 하나를 가져다가 뚜껑에 구멍을 내어, 야훼의 전 입구 오른쪽에 있는 기둥 옆에 놓아두어 문을 지키는 사제들로 하여금 야훼의 성전에 들어오는 모든 돈을 그 궤짝에 넣게 하였다. 궤짝 안에 돈이 많이 든 듯싶으면 왕의 비서와 대사제가 와서 야훼의 전에 있는 은을 쏟아내어 세었다. 계산이 끝나면 그들은 그 돈을 야웨의 전 공사를 맡은 감독들에게 주었다. 다시 그 돈은 야훼의 전에서 일하는 목수와 돌 쌓는 사람들에게 돌아갔고, 미장이와 석수들에게도 배당되었으며, 야훼의 전을 수리하는데 쓸 재목과 석재를 사거나 그 밖에 성전을 수리하는 모든 비용에 충당되었다.
그러나 야훼의 전에 들어온 그 은은 은대야나 가위나 물뿌리개나 나팔 등, 각종 금은 기구들을 만드는 데 쓰지 않고 다만 일꾼들에게 주어 야훼의 전을 수리하는 비용으로만 썼다. 일꾼들에게 줄 돈을 감독들에게 맡기고는 회계 감사를 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이 정직하게 일했던 것이다. 보상제와 속죄제 대신 바친 돈은 아훼의 전 수입으로 계산하지 않고 사제들의 몫으로 돌렸다.
그 무렵, 시리아 왕 하자엘이 쳐들어와 갓을 점령하고 나서 예루살렘을 치려고 발길을 돌렸다. 유다왕 요아스는 자기보다 앞서 유다를 다스린 여호사밧 왕과 여호람 왕과 아하지야 왕이 성별하여 바친 것들과 자기 자신이 야훼께 성별하여 바친 모든 것에다가 성전 창고와 왕실창고에 있는 금까지 합하여 모두 시리아 왕 하자엘에게 보냈다. 그것을 받고 하자엘은 예루살렘을 치지 않고 떠나갔다. 요아스의 나머지 업적과 행적은 유다 왕조실록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그의 신하들이 반역 음모를 꾸며 실라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는 벳밀로에서 요아스를 죽였다. 그 때 왕을 쳐죽인 사람은 그의 신하인 시므앗의 아들 요자갈과 소멜의 아들 여호자밧이었다. 그는 다윗 성에 있는 그의 조상들 곁에 안장되었다. 그의 뒤를 이어 아마지야가 왕이 되었다.

왕하11:1-12
//저자는 요아스가 하나님보시기에 바른 정치를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적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아스는 백성이 산당에서 제사지내는 것을 폐하지는 못했다. //아마도 성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성전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수리를 명했지만 재위 사십년의 반이 지난 이십삼년째가 되어서야 수리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성전 수리 기금은 제대로 관리되지도 않았던 것이다. 성전 수리 기금을 사용하는 절차와 투명성을 확보한 후에야 성전이 수리되기 시작했다. 눈먼 돈 없이 자재비와 공임으로 지불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헌금을 성전수리비로 돌리지 않았다. 제사장 몫은 제사장들에게 돌아가도록 했다. //그런데 시리아가 쳐들어 왔다. 요아스 왕은 왕실과 성전의 모든 금까지 시리아 왕 하사엘에게 바쳐 화평을 맺었다. 요아스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고 돈으로 잠시의 평화를 샀다. 아마도 여호야다가 죽은 후 더이상 가르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서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역대하 24장에 보면 여호야다가 죽은후,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의 가르침도 받아야 했으나 요아스는 스가랴를 죽이고 하나님을 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 시리아 하사엘 왕에게 조공이라는 굴욕을 당하고, 결국 암살당하고 말았다. //요아스는 다윗성에 장사되었지만 왕실묘역에는 묻히지 못했다. 그래서 묘실 곁이라고 기록되었다. 반면 여호야다는 다윗성 열왕의 묘실에 묻혔다. 여호야다가 실질적인 왕이었던 셈이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정치를 했다는 평가가 무색하게 요아스의 말년은 우상숭배로 무너지고 말았다. 믿음의 교제가 없으면 쉽게 무너지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다.

열왕기하 11:13-12:3

열왕기하 11:13-12:3 (공동번역)

아달리야가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백성이 모인 야훼의 전으로 가보니, 왕이 관례를 따라 기둥 옆에 서 있고 그 곁에서 사람들이 나팔을 불며 노래하고 있었다.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온 지방민이 기뻐 뛰는 것을 보고 아달리야는 옷을 찢으며 “반역이다, 반역이다!” 하고 외쳤다. 그 때 사제 여호야다가 백인대장들에게 명령하였다. “저 계집을 울 밖으로 끌어내어라. 따르는 자가 있거든 칼로 쳐죽여라. 그를 야훼의 전 안에서 죽여서는 안 된다.” 그러자 군인들이 그 여자를 붙잡아 군마가 출입하는 문으로 해서 궁궐에 들어가 거기에서 죽였다.
그런다음 여호야디는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의 백성이 되는 계약을 야훼와 왕과 백성들 사이에서 맺고 또 왕과 백성들 사이에도 계약을 맺었다. 온 지방민들이 몰려가 바알 신전을 허물고 그 제단과 우상을 산산조각으로 부수었다. 그리고 바알의 사제 마딴을 제단 앞에서 죽였다. 여호야다 사제는 야훼의 전에 경비병을 세우고 백인대장들과 가리 외인부대와 근위대와 온 지방민을 이끌고 왕을 호위하여 야훼의 전에서 나와 근위대 문을 통과하여 왕궁으로 갔다. 거기에서 왕이 옥좌에 오르자, 온 지방민들은 기뻐서 뛰는데 수도 시민들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아달리야는 대궐에서 칼에 맞아 죽었다. 요아스가 왕위에 오른 것은 일곱살 때 일이었다.
요아스가 왕이 된 것은 예후 제칠년의 일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간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는 브엘세바 출신으로 이름을 지비야라고 하였다. 요아스는 사제 여호야다의 가르침을 받아 평생 야훼의 눈에 드는 바른 정치를 폈다. 그러나 산당만은 없애지 않았으므로 백성들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물을 사르고 향을 피웠다.

왕하 11:12-12:3
//지방민과 수도시민. 저자는 남 유다의 백성을 지방민과 수도시민으로 구별한다. 지방민들은 요아스의 왕위 등극을 기뻐했지만 수도시민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이것은 수도시민은 아달랴에 붙어 기득권을 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불의에 침묵했던 사람들은 복음에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이제 아달랴는 죽었다. //일곱살 요아스가 왕위에 올랐다. 사십년간 다스린 것은 요아스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바른 정치를 폈다는 증거다. 저자는 요아스가 하나님보시기에 바른 정치를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적시한다. 요아스가 하나님의 말씀에 성의를 다해 순종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아스의 개인적 경건은 국가적 경건으로 온전히 승화되지는 못했다. 산당을 없애지 않아 백성들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지냈다. ////내가 수도권에 살기에 누리는 기득권도 엄청날 것이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복음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위정자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정치를 하기를 기도도 해야겠지만, 나부터 하나님의 가르침에 성의를 다해 순종하라고 명하신다.

열왕기하 11:1-12

열왕기하 11:1-12

//아달리야(아달랴)는 아들이 죽자 왕족을 모두 죽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왕위를 차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때 모든 왕자들이 살해되었으나 막내 젖먹이 요아스만 그의 고모인 여호세바가 몰래 빼내어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아달랴가 다스리는 육 년 동안 요아스는 고모(여호세바)와 함께 성전에 숨어 살았다. – 성전은 왕인 아달랴라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성전은 요아스에게 피난처였다. 제사장 고모부 여호야다가 이들을 먹여 살렸을 것이다. //아달리야가 다스린지 칠년째 되던 해애 제사장 여호야다가 철저한 준비를 마치고 왕자 요시아를 성전에서 데리고 나와 면류관을 씌우고 왕으로서 지킬 법을 주면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다. 그러자 백성들은 손뼉을 치며 “임금님 만세!”를 외쳤다. – 아달랴가 선한 왕이 아니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잠언 29:2 착한 사람이 세력을 펴면 백성이 기뻐하지만 나쁜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백성이 한숨짓는다.) 이렇게 아달랴의 폭정은 끝났다. ////여호야가가 요시아에게 기름붓은 장면이 인상적이다. 여호야다는 요시아에게 면류관을 씌우고 왕으로서 지킬 법을 주었다. 왕은 면류관(왕관)을 쓰고 최고 높은 자리에 앉는 사람이 아니다. 왕도 지켜야 할 법 아래에 있는 사람이다. 반역? 이라는 분초를 다투는 상황에서도 왕으로서 지킬 법을 주면서 기름을 부었다. 왕이 백성 위에 군림한다는 것보다, 왕이라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특권)을 받은 사람이다(요1:12). 이 특권은 군림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라고 주어졌다.

열왕기하 10:30-36

열왕기하 10:30-36 (공동번역)

야훼께서 예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마음에 들도록 일을 잘하였다. 나의 뜻대로 아합 가문을 잘 처치하였다. 그러므로 네 후손이 사 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왕위에 오르리라.” 그러나 예후는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의 법을 준수하는데 성의를 다하지 못하였다. 그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린 여로보암의 죄를 버리지 못하였다.
이때부터 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적에게 찢기게 하시니 하자엘이 이스라엘 국경을 사방에서 공격해 왔다. 그는 요르단 강 동쪽 길르앗과 가드와 르우벤과 므나쎄 전지역, 아르논 계곡에 인접한 아로엘, 길르앗과 바산 지방을 공격하였다. 예후가 용맹을 떨치며 무슨 일을 했는지 그 나머지 역사는 이스라엘 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예후는 세상을 떠나 선조들에게로 돌아가 사마리아에 안장되었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즈가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예후는 사마리아에서 이십팔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왕하10:30-36
//하나님의 마음에 들도록 일을 잘하였다고 한 번 인정 받는 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완전히 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면 계속 하나님의 마음 안에 거해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 안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하는데 성의를 다한다는 것이다. 예후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데 실패했는데 우리는 이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인생을 마무리할 때, 용맹을 떨치며 무슨 일을 했는지 남기는 것보다,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법을 준수하는데 성의를 다했다고 인정받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주여 주여 부르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했하였어도 그들을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이라고 평가하시며 그들을 물리치신다. 그런 사람들을 모른다고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준수하기 위해 성의를 다하지 않는다면 수치를 당할 뿐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신나게 뽐내며 살았는데 예수께서 모른다 하시면 이보다 더 불쌍한 일이 또 있을까?

열왕기하 10:15-29

열왕기하 10:15-29 (공동번역)

그리고 다시 떠나가는데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이 그를 맞으러 나왔다. 예후는 그를 만나 인사를 나눈 다음, “나는 그대를 진정으로 믿는데, 그대도 나를 그처럼 믿어주겠소?” 하고 물었다. 여호나답이 그러겠다고 대답하자 예후는 “그대 생각이 그러하다면 손을 내미시오.”하고 말하였다. 여호나답이 손을 내밀자 예후는 그를 자기의 병거에 끌어올리며 말하였다. “함께 갑시다. 내가 얼마나 야훼께 열성을 품고 있는지 보여주겠소.” 그리고 그를 자기의 병거에 태워 사마리아에 이르러 아합의 잔당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죽였다. 이렇게 예후는 야훼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대로 하였다.
그리고 나서 예후는모든 백성을 모아놓고 말하였다. “아합은 바알을 조금밖에 섬기지 않았지만, 예후는 바알을 열성으로 섬길 것이다. 이제 바알을 섬기는 예언자들과 사제들을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불러오너라. 내가 곧 바알에게 성대한 제사를 드리리라. 무릇 이 제사에 빠지는 자는 살아 남지 못하리라.” 예후는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박멸하려고 이런 계략을 썼던 것이다. 성회를 열어 바알을 예배하도록 하라는 예후의 지시를 따라 마침내 성회가 선포되었다. 예후는 이스라엘 각지에 사람을 보냈다.
바알을 섬기는 자들이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모여들어 바알의 신전으로 들어가니, 이쪽 벽에서 저쪽 벽까지 가득차게 되었다. 예후는 의상 맡은 자에게 바알으 섬기는 자들이 입을 예복을 가져오라고 명하였다. 그가 그들의 이입을 예복을 가져오자 예후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함께 바알의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모든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말하였다. “여기 이 자리에 당신들과 함께 야훼의 종이 한 사람이라도 있지 않은가 잘들 살펴보시오. 다만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만 있도록 하시오.” 이렇게 해서 그들은 희생제와 번제를 드리려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예후는 신전 밖에 군인 팔십 명을 배치하고 일렀다. “이 바알의 무리들을 너희에게 맡긴다. 한 놈이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 하나라도 놓치면 그 놓친자가 대신 죽으리라.” 번제를 다 드리고 나자 예후는 근위대와 장교들에게 명하였다. “안으로 들어가서 한 놈도 놓치지 말고 다 죽여라.” 그리하여 근위대와 장교들이 들어가 무리를모두 칼로 쳐죽였다. 이윽고 그들은 바알 신전의 지성소에까지 들어가 바알 신전에 있던 목상들을 밖으로 꺼내다가 불에 태우고 바알 제단을 부수며 신전을 헐허 변소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오늘까지 그냥 남아 있다. 이렇게 하여 예후는 이스라엘에서 바알 숭배를 뿌리뽑았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린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만은 버리지 못하여 베델과 단에 세운 금송아지를 그대로 섬겼다.

왕하10:15-29
//죄를 짓게 하는 환경을 뿌리째 뽑는 것은 차라리 쉽다. 그러나 마음의 죄를 버리는 것은 어렵고도 어렵다. 예후가 그 덫에 걸렸다. 저자는 예후가 바알 숭배를 뿌리뽑았으나 여로보암의 죄만은 버리지 못하여 금송아지를 그대로 섬겼다고 못박았다.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은 누구지? 예후가 여호나답에게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말한 것으로 보아 요호나답은 하나님께 열심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을 위한 나의 열심!’ 하나님을 위한 예후의 열심과 여호나답의 열심을 비교한다면, 여호나답의 열심은 예후가 이미 알고 있을 정도로 일상적 열심이었다면 , 예후의 열심은 보여주기식 이벤트성 열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후의 열심이 이벤트성이었다는 것은 예후가 여로보암의 길을 걸었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다. 한편 여호나답의 열심이 일상적 삶(열심)이라는 것은 그의 열심(삶)이 유언으로 이어져 250여 년이 지난 후대에 자손들까지도 여전히 신실하게 지키고 있다는 예레미야 35장의 기록에서 알 수 있다. ////누구나 몇 번의 특별한 열심을 내볼수는 있겠지만, 아무나 일상적 열심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는 나의 열심은 금방 퇴색되고 말 것이다. 밥먹듯 호흡하듯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