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32:34-52

모세의 노래 마지막은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심판하실 때 당신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 아마도 노래 전체의 결론일 것이다. 주님이 당신의 종들은 불쌍히 여기시고 불순종으로  주님의 백성에서 ‘그들’이 되어 그들의 신을 찾고, 그들의 신을 반석으로 삼는 원수들은 보복하신다. 이렇게 주님나라를 깨끗하게 하신다.

결국 모세의 노래는  ‘broken hallelujah’ 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함께 백성에게 이 노래를 모두 다 들려주였다. 우리 인생은  broken 을 뺀  할렐루야로만 장식되어질 수 없다. 우리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생을 할렐루야로 결말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세는 노래를 마친 후 이 노래를 마음에 간직해 두고, 자녀들에게 가르쳐,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키게 하라고 당부한다. 이 율법이 생명이라고 강조한다. 이 율법을 순종해야 할렐루야를  오래오래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결국은 땅이 아니라 마음이다. 노래를 가르친 후 주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약속의 땅을 바라보아라. 그러나 약속의 땅에는 못들어 간다. 눈으로만 바라보기만 해라. 땅에 집착하면 모세는 실패자다. 그러나 모세는 주님과 동행하며 살았다. 주님을 대면하며 살았다. 마음에 할례를 받고 살았다. 약속의 땅을 온전히 맛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broken hallelujah 를 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할렐루야를 부를 수 있다면) 그 삶은 성공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모세는 성공했다. 육적 약속의 땅 가나안에는 못들어 가지만 (살아 있는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주님과의 교제가 이어진다는 뜻이다. (막 12:26,27)

사족: 요즘 즐겨부르는  Leonard Cohen  이 작사한 hallelujah 가 차디차고 상처뿐인 할렐루야를 노래한다. 처음에는 무슨 이런 할렐루야가 있을까하여 가사 없이 멜로디만 읍조렸다. 그러다 가사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우리말로 된 시도 읽기 어려운데 영어 가사라 직역도 안되고 행간을 읽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간음과 살인을 한 다윗왕도, 여색에 빠져 머리카락이 잘렸던 삼손도 결국은 할렐루야를 부를 수 밖에 없다고 노래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과거의 아픈 추억이나 잘나가던 순간들, 실연의 아픔 등 이런 모든 상황에서도 할렐루야를 불러야 한다. 하나님께서 저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져도, 신자들 마져도 이웃 사랑보다는 이웃을 정죄하는 것만 배운 것 같아도, 기도조차 할 수 없는 밤이라 해도, 차디 찬 곳에 버려졌어도, 그래서 상처뿐인 삶을 살아도 할렐루야를 부를 수 있다면… 할렐루야를 부를 수 있다면 참 신앙이 아닌가? 난 코헨이 어떤 의미로 시를 썼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삶을 돌아보면 내가 온전해서 할렐루야를 부르는 게 아니다. 주님이 온전하셔서 할렐루야를 부르며 산다.

 

신명기 32:15-33

(노래가 이어진다.)

발로 차고, 버리고, 업신여기고. 기름지고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해지자 이스라엘이 창조주 하나님에게 취한 행동이다.

다른 신을 섬겨 주 하나님을 격노케 한다. 주 하나님 대신 목석의 우상, 알지 못하던 귀신들에게 제사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따른다. 창조주를 잊어버렸다.

주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은 미워하신다. 부모를 격노케하는 자녀라고 하신다. 패역하고 진실없는 자녀로 인해 (창피하여) 차마 얼굴을 들고 다니실 수 없다.

백성들이 주 하나님 대신 우상으로 주님을 질투하고 격노케 했듯이 주님은 백성 아닌자로, 어리석은 민족으로 백성들의 분노를 일으키실 것이다.

반석을 주 하나님이 아닌, 주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말씀이 아닌 다른 것, 다른 곳에서 찾은 결과다. 백성에서 그냥 ‘그들’ 이 된다. 지혜없고 분별력 없는 민족이 된다. 다른 반석들도 주님보다 못한 것을 스스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저들이(다른 반석, 원수들) 자고할까하여 주 하나님은 주의 백성을 완전히 끊어지게 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종말을 향한 저주가 이어지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백성. 한명에게 천명이 쫓기고 두명에게 만명이 쫓길 정도로 이스라엘은 ‘택한 백성’에서 ‘그들’로 쇠락할 것이다. 천명 만명이 떠든들 (행함과 진실함이 없으면 ) 한두명의 주장을 감당할 수 없는 사회가 된다.

불순종의 ‘그들’은 원수와 다를게 없다. 그들은 독주에 취해 비틀거리며 (세상 가치관에 휘둘려) 망할 날을 향해 달린다.

신명기 31:30-32:14

모세는 이 노래의 가사를 (말씀을) 끝까지 읽어서 백성들에게 들려준다. (마치 잠자리에 드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분위기가 연상될까? 이렇듯 읽는 사람은 끝까지 읽어주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듣다가 잠이드는 아이가 되었던 것일까?)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늘과 땅에, 온 세상은 노래를 들어라.

온 세상에 주님의 교훈이 비처럼 내렸다.

주님의 이름을 전파하고 주님을 경외하라.

주님은 반석이시고 완전하시고 정의롭고 진실하시며 거짓이 없으시며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향하여 악을 행한다.주님의 자녀가 아닌 것처럼 삐뚤어지게 행한다.

어리석고 지혜없는 백성이 되어 주님께 배은망덕했다. 주 하나님은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창조주다.

옛날을 기억하라. 부모세대에게 물어보아라. 그들은 네게 대답할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주님이 이스라엘을 백성으로 삼으셨다.

주님이 남겨 주실 것은 주님의 백성이다. 이스라엘이 바로 주님의 백성이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황무지에서, 광야에서 만나주셨고 지켜주셨고 보호하셨다.

마치 독수리가 새끼를 보호하는 것같이

주 하나님만이 백성들을 인도하셨다. 다른 신이 없었다.

주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먹여주셨다.

6절 상반절 “어리석고 지혜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가 모세가 들려준 노래 첫부분의 핵심이 아닐까? 예수님도 주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은 자들을 어리석다 하셨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로 하셨다. 듣는 귀만 가졌다면 어리석은 것이다. 말과 혀로는 그럴싸하게 포장할 수 있지만 행함과 진실함이 없기 때문이다. 모세는 듣기만 하는, 말과 혀로만 노래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배은망덕이라고  노래한다.

모세가 읽어주는 노래는 마음으로 불러야 하는 노래다.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 노래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 3:16)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엡5:19)

우리도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다. 개인적이지 않고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서로 화답하며 불러내야, 살아내야 할 노래다.

 

 

신명기 31:14-30

주 하나님께서 죽을 기한이 가까운 모세를 불러 말씀하신다. 여호수아를 함께 불러 인수인계를 하게 하신다. 여호수아도 주 하나님 임재 앞에 선다.

주 하나님은 모세는 죽고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 다른 신을 섬겨 주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길 것이라고 하신다.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를 꿈꾸는데, 주님이 앞서가시고 주님이 함께 하시고 주님이 백성을 떠나시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이 무슨 저주란 말인가?

백성들이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면 주님은 얼굴을 숨기신다고 하신다. 주의 백성들이 악인의 꾀를 좇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것을 차마 보고 계실 수 없을 것이다.

주님은 모세에게 여호수아에게 이것을 노래하라고 한다. 유행가처럼 누구나 부르는 노래가 되어 약속의 땅에서 다른 신을 섬기고 주님을 멸시하고 언약을 어겨 저주를 받을 때, 노래가 (언약의 말씀이) 저주의 이유, 저주에 대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은 백성들이 어떻게 할지 미리 아신다. 그래서 삼가라고 율법을 주신 것이다.

주님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언약궤에 두라고 하신다. 모세가 살아있을 때에도 원망과 불평으로 반역을 꾀한 백성들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모세는 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부패해져 주 하나님 목전에서 악을 행할 것임을. 이것을 노래처럼 암송하고 부르라고 하였건만 백성들은 새(세상) 노래만 찾는다.

감사하게도 새노래에 취해 우리 자신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던 우리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주셨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신 30:6)

마음에 할례를 베풀어 주시기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기를 간구한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신명기 31:1-13

“또 모세가 가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전하여” (1)

모세는 분주하다. 은퇴?를 앞두고 고별 설교를 한다. 고별 심방을 하는 듯하다. 한집 한집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만큼 모세의 발걸음은 급하다.

그러나 일백이십세. 신명기 말미에 보면 모세는 죽을 때까지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본문에서 모세는 더 이상 출입하기 힘들다고 한다. 육신의 기력과 다르게 영적으로 지쳤을 수 있다. (반대일까?)

모세는 주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신 것과 주 하나님이 아모리 두왕을 물리치신 것처럼 약속의 땅도 멸하시겠다는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율법을 지켜 행하라고 명령한다.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주 하나님께서 앞서가시고, 함께하시고, 떠나지 않으신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놀라지 말아라.

그리고 다시 반복한다. 주 하나님께서 백성들 앞서 가시고,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 백성들을 떠나지 않으시는 이유는 언약에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성들도 신실해야 한다.

온 나라에 율법을 낭독하는 소리가 넘치고 온 백성이 율법을 듣는다. 자녀들에게는 율법울 가르친다. 객으로 머무는 이방인들에게도 율법을 가르친다. 한마디로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다. 주 하나님의 율법을 듣고 행하고 가르침으로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순환이 지속되는 나라. 주 하나님을 경외함이 삶으로 배워지는 나라. 모세가 상상하는 약속의 땅의 모습이다.

오늘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세상 가치를 존중하도록 가르치고 배우고 그렇게 살아간다.

씁쓸한 토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