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3:19-24:9

신명기 15장 면제의 규례에서는 가난한 형제에게 넉넉히 꾸어주라고 명한다. 본문은 한 발 더 나아가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한다. 이 명령에서 가장 핵심은 ‘형제’라는 단어가 아닐까? 공동체가 형제의식을 가지고 실천한다는 것은 곧 복이다. (19-20)

주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미루지 말고 갚으라고 하신다. 주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는 분명하다. 백성 스스로 이랬다 저랬다 해서는 안된다. 입으로 약속한대로 행해야 한다.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고 하여도 주 하나님 앞에 내 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21-23)

가난한 자가 부한 자의 포도원이나 곡식 밭에 들어가 허기를 채우기 위해 배불리 먹는 것은 허락되었으나 따가지고 나오는 것, 허기 채우는 것 이상으로 다른 사람의 곡식밭에서 추수하는 것은 금지 되었다. 가난한 자의 필요도 채우시며, 부한 자의 재산도 지켜주신다. 좋기는 부한 자가 가난한 자의 필요를 따라 넉넉하게 챙겨주는 것이 아닐까? (24-25)

아내가 수치스러운 일을 하였을 경우 이혼증서를 써주고 집에서 내보내도 된다고 한다. 그 여자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혼했던 전 여자를 다시 아내로 맞이하지는 말라고 하신다.  음. 어렵다. 이럴 때는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바로 가자. “모세는 너희의 완악한 마음 때문에, 이 계명을 써서 너희에게 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된다.”(막10) 예수님은 이 규례가 합법을 가장한 간음의 통로로 악용된다고 보셨다.  신혼을 즐기게 하여라. 성관계는 부부관계에서만 허락하신 것이다. (1-5)

맷돌을 전당잡지 말아라. 형제를 종으로 삼거나 팔지말아라. 나병환자에 대해서도 제사장들이 가르치는 대로 해야 한다. 거룩한 백성으로 사는 원리다. 악을 제거하는 방법이다.(6-9)

// 문화와 환경이 다르니 사회법을 오늘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원리는 분명하다. 수직적으로으로 주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지켜야 하고, 수평적으로 형제의 필요를 채워야 한다. 나병에 대해 말하면서 미리암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하라고 한다. 다시말해 율법의 적용에는 빈부귀천의 차이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법망을 피해 교묘히 악을 행하지 말라고 하신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착취하지 말라고 하신다. 형제 관계를 주종관계로 만들지 말라고 하신다….

// 하루 쉬었더니 리듬이 깨졌다.

 

신명기 22:13-30

그리스도인에게 결혼 서약은 세례문답과 더불어 주 하나님 앞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약속이다. 원칙적으로 물릴 수 없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고 하시는데 어찌 한몸된 배우자에 대하여 거짓 증거할 수 있을까? 아내를 비방하여 쫓아 내려고 해서는 안된다.

만약 남편이 거짓으로 아내를 비방한 것이 드러나면 성읍 장로들은 그 남편을 때리고 은 일백 세겔을 벌금으로 받아 장인에게 주고 아내를 평생 버리지 못하게 하렸다. 만약 아내를 비방한 내용이 사실로 밝혀지면 그 아내를 돌로 쳐 죽였다. 이렇게 해서라도 악을 제하여야 했다.

성경은 부부관계에서만의 성관계만 인정한다. 이외는 가정을 파괴하는 악이라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가정을 파괴하는 관계를 갖은 남녀는 죽어야 했다. 정혼단계부터 지켜야 할 법이다. 물론 정혼한 여자가 불가항력적으로 강간을 당한 경우에는 남자만 처벌했다.

만약 정혼하기 전 남녀라면 성관계는 사실혼 관계가 된다. 남자는 처녀의 부모에게 댓가를 지불하고 그 처녀를 반드시 아내로 맞아야 한다. 당연히 이혼을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아비의 아내를 취하는 것을 금한다.

반복하지만 성관계는 부부간에만 주어진 것이다. 이성애라도 부부관계를 벗어난 성관계는 제거해야할 악이다.

오늘날은 좌우로 너무 치우쳤다.

신명기 22:1-12

1-4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를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규례다. 이웃이 잃어버린 것, 누가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르는 것이라도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가축만 아니라 의복도, 아니 그 어떤 것이라도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것을 얻었다면 못 본 체하지 말고 돌려주어야 한다. 네 이웃을 탐내지 말라는 명령을 더 적극적으로 적용한다면 형제의 어려움을 못 본 체하지 않고 그 형제를 도와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촌이 땅을 사면 배아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뻐해 주어야 한다.)

5 정체성을 확립하라. 여자가 남자인 체하거나 혹은 남자가 여자인 체하는 것은 주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신다. 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름다움을 훼손하는 것이다.

6 -7 자연 소산물을 아껴라. 탐욕스러운 어부들과 달리 지혜로운 어부는 치어들을 잡지 않는다. 새의 경우 어미새는 놓아주고 새끼는 취해도 된다고 한다. 동식물 멸절을 막는 지혜다. 이를 통해 생명을 주시는 주 하나님의 섭리를 배울 수 있고, 그 섭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이다.

8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생각하라. 집을 지을 때도 안전을 고려해야 한다. 안전사고가 나면 그 책임은 집 주인에게 있다. 음. 다른 사람의 안전을 무시해가며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9 -11 섞지 말아라. 두 종자을 함께 뿌리면 이도 저도 아닌 (상품가치가 없는) 소산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힘쎈 소와 약한 나귀에게 한 멍에를 매어 밭을 갈면 소와 나귀도 나름대로 힘들도 밭을 가는 농부도 힘들게 뻔하다. 양털고 베실로 섞어 짠 옷은 쉽게 뒤틀어질 것이다. 주 하나님과 다른 신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는 것과 같다.

12 기억하라. 옷에 술을 달아서 주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나는 무엇을 달고 있는가?

 

신명기 21

약속에 땅에서 지켜야 할 법을 주신 이유는 잘못을 하면 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를 없애기 위해서다.  “너희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9) 누구의 잘못인지도 모르는 살인죄, 그 죄값도 치르게 하시면서 까지 주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약속의 땅에서 죄를 없애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리품으로 얻은 아리따운 여자를 아내로 삼은 경우에는 그 여자를 더이상 종으로 여겨서는 안된다고 하신다. 여자이자 이방인인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읽을 수 있다. ‘아리따운’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여자를 성적 노리개로 아내를 취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장자의 권리는 외모로 취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장자는 하나님께서 정하시기 때문이다. 출산의 순서는 주 하나님게서 정하시기 때문이다. 굳이 장자권을 바꿔야 한다면 그때는 주 하나님께서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같이 친히 간섭하신다. 사람이 차별해서는 안된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계명을 순종하지 않는 자녀는 부모의 징계를 받아야 하고, 부모의 징계를 달게 받지 않는 경우 공동체가 투석하여 죽여야 한다. 이것이 악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모세는 굳이 부모에 대한 불순종을 방탕하여 술에 잠긴 자라고 예를 들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계명을 어기는 것은 주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요, 성령 충만하지 못하다는 것은 세상 술에 (세상 가치관에) 빠졌다는 것이다. 부모에게 순종한다는 것은 곧 주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다. 두려워해야 할 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십자가형을 당한 시체도 밤새도록 나무에 두어 약속의 땅을 더럽히지 말라고 하신다. 시체가 널려 있는 죽음의 땅으로 내버려 두지 말라고 하신다. 그날에 장사하여 약속의 땅, 생명의 땅으로 살라고 하신다.

신명기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는 일벌백계(一罰百戒)의 ‘벌’이 아니라 ‘계’를 중시한다.

 

 

신명기 20

전쟁은 병거나 병사의 숫자놀음이 아니라고 한다. 누가 대장인지가 중요하다. 이스라엘의 대장은 출애굽의 주 하나님, 홍해에서 애굽군대를 수장시키신 주 하나님, 아모리 두왕 시혼과 옥을 물리치신 주 하나님 이시다. 이 대장 주 하나님이 지금도 함께 하신다고 가르친다.

전장에 가까이 가면 제사장은 주 하나님께서 함게 하시고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고  백성들에게 용기를 붇돋아 주는 것으로 전쟁을 준비한다. 대장 주님은 싸움에 다음과 같은 사람들은 면제해 주신다. 집을 지었는데 집들이를 하지 못한자. 포도원을 지었는데 수확을 못한자, 약혼을 하였는데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자. 심지어 마음이 허약한자.

// 전쟁은 잔치가 아니다. 주님의 잔치에는 집들이와, 농사일과, 결혼으로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핑계거리가 될 수 없지만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전리품을 나누는데는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사는 우리는 주님의 승전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그 어떤 일도 핑계거리가 될 수 없다.

전쟁의 목적은 상대방을 진멸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진멸하는 것이다. 그래서 악의 만렙이 아닌 가나안 주변 민족에 대해서는 우선 화평을 선언하라고 하신다. 상대방이 화평으로 회답하면 그 주민에게 조공을 바치게 하고 이스라엘을 섬기게 하며, 만약 화평을 거부하면 싸워 그 안의 남자를 다 쳐죽여야 한다. 그래도 여자와 유아와 가축과 탈취물은 전리품으로 취할 수 있었다.

// 화평으로 회답한 족속의 댓가는 생명이다. 대신 세금(조공)을 내야하고 소작농(종)이 되어 일해야 한다. 과연 이스라엘은 과연 주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있는 것이 악인의 장막에 거하는 것보다 좋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 주님의 백성들이 그렇게 산다면  조공을 내는 종이 되어도 감사할 것이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인자를 베푸는 것에 실패한다면 누구나 독립을 꿈꾸지 않을까?

그러나 헷, (기르가스는 어디로)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족속은 호흡있는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명하신다. 왜냐하면 악이 ‘만렙’이기 때문이다. 가증한 일을 행하는 저들을 본받아 주 하나님께 범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한편 성읍을 공격할 때라도 주변 수목에 대해서도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한다. 수목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신다. 과목은 보존해야 하고 과목이 아닌 나무들은 성읍 함락기구를 만드는데 사용해도 된다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