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33:38-56

민 33:38-56

이스라엘의 광야 노정이 계속되다가 아론의 죽음을 언급한다. 아론의 나이 123세. 아론은 호르산에서 죽었다. 노정을 언급하면서 구체적 사건을 기록한 것은 이곳 호르산이다. 아론의 죽음과 함께 가나안 남방 아랏 왕 이스라엘 자손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언급이 추가되었다. (아마도 1세대를 대표하는 아론의 죽음으로 지도자을 잃은 두려움을 상쇄시키기 위해 아랏 왕을 언급했을 것이다.)

지명을 들을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억했을 것이다. 그리고 원망과 불평의 광야길을 마치고 이제 여리고 맞은 편 모압평지에서 요단을 건너는 것만 남겨두었다. 모세는 마지막 당부를 한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곳 주민을 ‘다’ 몰아내고 우상을 ‘다’ 깨뜨리고 산당을 ‘다’ 헐고 그 땅을 점령하여 거기 거주하라. 그리고 그곳에서 땅를 분배하여라. 만약 그 땅의 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 눈의 가시와 너희 옆구리를 찌르는 것이 되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경고의 마지막은 “나는 (하나님은) 그들 (가나안 거민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행하리라.” 였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거민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은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 내는 것이었다.

민 32:28-42

그러나 만일 그들이 너희와 함께 무장하고 건너지 아니하면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너희와 함께 땅을 소유할 것이니라. [민 32:30]

읽고 또 읽었다. 르우벤과 갓 자손들이 요단 동편 땅을 얻기 위한 서원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으면 가나안에서 땅을 함께 분배 받는다고 하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원을 성실히 이해 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자손에서 끊어지는 것도 아니고.  읽고 또 읽고.

29, 30절을 또 다시 읽었다. 르우벤과 갓 자손이 서원을 성실히 이행하면 길르앗으로 대표되는 요단 동편 땅을 소유로 얻을 것이다. 그러나 성실히 이행하지 않으면 가나안 땅을 분배 받는다. 결과적으로는 성실히 이행하지 않으면 요단 동편 땅을 받을 수 없고 가나안 땅을 분배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성실하심이라고 해야 하나. 서원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범죄함이나 이스라엘백성에서 끊어짐을 당할만큼 중대하지는 않은 것 같다. 서원은 근본적으로 악을 행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선한 일을 도모하는 것이기에, 서원의 불이행은 선에 대한 불성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불성실의 댓가는 있다. 사람이나 제물이나 가옥(집) 등에 대해서는 20% (1/5) 덧붙여 서원을 어긴 값을 지불해야 한다. 이번 경우는?

31절에서 르우벤과 갓 자손은 이것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의 요단 동편 땅에 대한 소유욕은 대단했다. 그리고 므낫세 지파의 절반이 르우벤과 갓 자손과 합세하여 요단 동편 땅을 분배받았다.  반지파만 더해졌다. 모세의 강력한 경고가 없었다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눌러 앉으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민 32:16-27

그 땅이 여호와 앞에 복종하게 하시기까지 싸우면 여호와 앞에서나 이스라엘 앞에서나 무죄하여 돌아오겠고 이 땅은 여호와 앞에서 너희의 소유가 되리라마는 [민 32:22]

모세의 책망에도 요단 동편을 차지하고픈 르우벤과 갓 자손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대신 이스라엘 다른 지파들에 앞장서서 가나안정복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가나안정복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겠다는 배수의 진을 쳤다. 모세는 르우벤과 갓 자손이 내놓은 타협안을 서원/서약형태로 되풀이 해서 인정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하게 한 것이다. 르우벤과 갓 자손들은 모세의 명령대로 행할 것을 약속했다. 여호와 앞에서 싸우겠다고.

여호와 앞에서 싸우겠다는 것은 건성으로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참여하겠다는 의미다. ‘코람데오’다. 하나님께서 지켜보시는 것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서원/약의 준행을 의미한다.

오늘 본문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르우벤과 갓 자손의 요구를 승인하셨다는 직접적인 표현이 없다. 요단동편의 땅은 가나안 정복 후 이루어질 부수적 땅이다. 르우벤과 갓 자손은 빵의 부스러기를 두고 서원/약을 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나라’ 대신 ‘주변경계’들에 대해 서원/약을 한다. 서원/약을 성실하게 지켜도 얻게 될 것은 ‘하나님나라’가 아니라 주변 것들이다. 돈과 명예와 권력과 성공 등등 주변 것들을 하나님나라’보다 큰 것인양 자랑하는 간증이 난무한다. 음.

르우벤과 갓 자손이 나중에 차지하게 된 요단 동편은 모압과 암몬 영향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한 땅이다. 이스라엘 왕국에서도 결국은 변방지역이었다. 당장 눈에 보이기에 좋아도 (자녀들을 양육하기도, 가축들을 기르기에도) 약속의 땅은 아닌 것이다.

민 32:1-15

민 32:1-15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가축들을 전리품으로 나누었다. 각 지파에서 천명씩 군사를 보내었으니 르우벤과 갓 지파가 다른 지파에 비하여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가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광야 생활을 하면서 르우벤과 갓 지파가 가축을 다루는 전문 지파의 역할을 했을까?

하여간 르우벤과 갓 자손들은 심히 많은 가축을 이유로 요단 동편에 남기를 모세와 엘르아살, 그리고 지휘관들에게 요청한다. 가축을 치는 전문가 지파의 눈으로 볼 때 요단 동편 땅은 목축할 만한 장소였다. 르우벤과 갓 자손들은 요단 동편에 남는 것을 은혜 입는 것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모세는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을 책망했다. 온 민족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나아가는데 어찌 요단 동편에 머물고자 하여 다른 지파 자손들을 낙담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건너가게 하는 것은 막고자 하느냐가 책망의 요지였다.

모세는 사십년전 출애굽 1세대들이 가데스바네아에서 했던 것과 같은 태도라고 재차 책망하였다. 약속의 땅으로 나가는 것을 낙심하게 한 출애굽 1세대들이 하나니님께 악을 행하여 사십년동안 광야에서 방황한 역사를 상기시킨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노를 더욱 심하게 하는 일이라고 책망의 강도를 높였다. 동편에 머무르는 것을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버리시고, 이스라엘은 멸망당할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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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동체의 경우 더욱 그렇다.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는 상황을 통한 인도다. 르우벤과 갓 자손들의 경우가 그렇다. 가축 떼가 늘었다. 요단 동편 땅은 목축하기 좋은 곳이다. 르우벤 자손의 입장에서는 자신들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갓 자손들도 같은 생각을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지도자의 허락이다.

그러나 르우벤과 갓 자손들이 놓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상황의 변화나 주변 사람의 인정이나 지도자의 허락이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이다. 바울을 예를 들면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바울 앞에 펼쳐진 상황은 막막했다. 믿음의 사람들도 예루살렘에 가면 잡힐 것이라며 이미 경고 했었다. 로마를 보아야 하는데 예루살렘에 잡혀있어야 했다. 로마로 가는 뱃길도 순탄치 않았다. 충분히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약속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니지 않은가!

 

 

민 31:25-54

민 31:25-54

전리품 분배는 정결의식 후에 이루어졌다. 즉 일주일이 후딱 지나갔다. 전리품 분배는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이 절반, 나머지 회중들이 절반을 차지했다. 전리품중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의 비율도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은 오백분의 일, 그러니깐 거의 드리지 않아도 되었다. 이에 반하여 회중은 전리품의 오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 예를 들면 포로 사람의 경우 총 삼만이천명중 군인들이 만육천, 회중이 만육천씩 분배 받았지만 하나님께 드려야 할 몫은 군인들이 32명, 회중이 320명으로 열배가 많았다.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은 백만명중에 일만이천명이라고 했다. 그러니 군인이 거의 십분의 일 수준이니, 군인들이 열배정도 더 전리품을 분배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전리품을 군인이나 회중이나 나눠 갖는 것은 마땅하나 전쟁에 직접 참여한 군인을 배려한 분배였다.

그러나 전쟁에서 더 중요한 것은 전리품이 아니다.

“군지휘관들, 곧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이 모세에게 와서 보고하였다. “소관들이 이끄는 부하들을 세어 보았는데, 우리 쪽에서는 한 사람도 실종되지 않았기에,”[48,49]

바로 아군의 희생정도다. 죽은 군인이나 실종된 군인이 한 명도 없이 일만이천명이 ‘다’ 복귀한 것이다. 군지휘관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았다. 그래서 전리품에서 분배받은 패물 즉 금붙이들과 사사로이 전장에서 탈취한 금붙이를 하나님께 드렸다. 그리고 이것을 기념했다.

// 궁금한 것은 ‘십분의 일’은 어디 갔을까? 그러니 특별한 소득에 대한 ‘십분의 일’이 당연시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군지휘관들이 금붙이를 드린 것 같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자발적 드림이 있어야 한다. 특별히 치열한 삶 속에서 얻은 은혜에 대한 감사는 따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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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에게 말하되 당신의 종들이 이끈 군인을 계수한즉 우리 중 한 사람도 축나지 아니하였기로 우리 각 사람이 받은 바 금 패물 곧 발목 고리, 손목 고리, 인장 반지, 귀 고리, 목걸이들을 여호와께 헌금으로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려고 가져왔나이다.”[민 31:49,50]

전쟁에서 승리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전리품이 아닌 바로 아군의 희생정도다. 전리품을 분배한 후 군지휘관들이 모세에게 죽은 군인이나 실종 된 군인이 한명도 없이 일만이천명이 ‘다’ 복귀하였다고 보고했다. 전장에서 지휘한 군지휘관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전리품분배와 그에 따른 하나님께 드릴 헌물 (제사장과 레위인 몫으로 돌릴)외에 자신들이 받은 전리품 중 금붙이 패물과, 전장에서 군인들이 사사로이 탈취한 금붙이를 모아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드렸다. 군지휘관들은 이것을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라고 밝힘으로써 한명의 희생도 없었음이 하나님의 주권에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자신들의 생명값을 드린 것이었다.

나의 헌물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득에 대한 감사인가? 건강에 대한 감사인가? 자녀에 대한 감사인가? 근본적으로 나의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감사여야 한다.

//속전은 한명당 5세겔이었으나 실제로 지휘관들이 일만이천명의 군인들을 대표해서 일만 육천 칠백 오십세겔의 금붙이를 드렸으니 한세겔 조금 더되는 속전을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