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3:14-18

베드로후서 3:14-18 (공동번역)

베드로는 사랑하는 수신자들에게, 마지막날을 기다리는 사람은 티와 흠이 없이 살면서 하느님과 화목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권한다. (이 땅에서 하느님과 화목하는 것에 완전할 수는 없겠지만 화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주님께서도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기회를 주시기 위해 오래 참으신다. 기다림과 화목은 바울로의 편지에서도 나타나는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지혜다. 바울로는 어느 편지에서나 이런 말을 하는데, 이해하기 어렵다고, 무식하고 마음이 들떠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왜곡하여 파멸을 자초하는 속임수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한다. 우리는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입고, 또 주님을 앎으로써 계속 자라나야 한다. 우리가 이 영생을 누릴 때, 삼위 하느님께서 영원토록 영광을 받으신다.

https://quietwaters.blog/2020/12/26/

//성도는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완벽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베드로는 마지막 때를 사는 사람은 티와 흠이 없이 살면서 하나님과 화목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라고 권한다.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완벽하게 순종하지는 못해도 순종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순종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 신앙이 자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입었다고, 곧 소위 ‘구원’을 받았다고 끝이 아니다. 우리의 신앙이 멈춰 서서는 안 된다. 여전히 (무궁하신) 주님을 알아가는 과정이 남아 있다. 이 과정이 영생이다.  //그렇다면 거짓 예언자들과 사탄의 전략은 확실하다.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구원의 기쁨에서 멈추게 하는 것이다. 태아가 모태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면 사산과 다름없다. 빛 가운데 행하지 못하고 사산되는 믿음의 생명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ㅠㅠ //자라지 못하게 하기 위해 사탄은 오늘도 거짓 메세지를 전한다.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야말로 파멸을 자초하는 것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경을 읽어야 하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공동체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베드로후서 3:1-13

베드로후서 3:1-13 (공동번역)

베드로가 편지를 쓰는 이유는 성도들의 기억을 새롭게 하여 순수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다. 베르로는 성도들이 거룩한 예언자들이 이미 예언한 말씀과 주님이신 구세주께서 사도들에게 주신 계명을 되새기길 원한다. 이것을 방해하는 것이 자기들의 욕정을 따라 사는 자들의 조롱과 유혹이다. 자기 욕정에 따라 사는 자들은 그리스도가 다시 온다는 약속을 부정한다. 그들은 심지어 하느님이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사실도 외면한다. 베드로는 하느님이 행하신 천지창조와 노아홍수를 상기시킨다. 사실 지금도 하느님이 섭리로 다스리신다. 하느님을 배반하는 자들은 심판의 날까지 보존되지만 천지와 함께 멸망당할 것이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미루시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를 위해 참고 기다리시는 것이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의 날을 도둑처럼 갑자기 올 것이다. 그날에 천지도 없어지고 모든 것이 다 파괴 될 것이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면 답은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의 심판날을 기다리며, 그날이 속히 오도록 힘써야 한다. 성도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정의가 깃들여 있다.

https://quietwaters.blog/2020/12/26/

//주의 재림이 미뤄지는 것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미루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참고 기다리시는 것이라고 베드로는 가르친다. 따라서 마지막 때까지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라고 권면한다. 성도들에게는 새하늘과 새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천지개벽의 새하늘과 새땅에 정의가 깃들여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의 나라다. 역으로 말하면,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정의롭게 살면 하나님나라의 맛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정의(의)다. 개인의 욕정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절제하고 나누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정의)다. 오직 성령의 도움심 안에서만 가능한 삶이다.

베드로후서 2:10b-22

베드로후서 2:10b-22 (공동번역)

하느님의 권위를 멸시하는 자들은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런 자들은 당돌하고 거만해서 영광스러운 천사들에게도 거침없이 욕설을 퍼붓는다. 그러나 천사들은 그들보다 더 큰 힘과 권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님 앞에서 그들을 헐뜯어 고발하지 않는다. 천사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그들은 악인이다.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아서 알지도 못하는 일들을 헐뜯다가 멸망을 당하고 말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불의의 값으로 벌을 받게 된다. 그들은 대낮에 흥청거리며 노는 것을 낙으로 삼고 성찬의 자리에서도 방탕한 짓을 즐기며 티와 흠을 남기는 자들이다. 음욕이 가득한 눈으로 끊임없이 죄만 짓고, 다른 사람들도 죄를 짓도록 유혹한다. 그들은 욕심을 채우는 데만 잘 훈련되어 있어 하느님의 저주를 받기에 알맞는 자들이다. 바른 길을 버리고 그릇된 길로 간 사람들이다. 부정한 소득을 좋아한 발라암(발람)의 길을 따른 사람들이다. 발라암은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음성으로 책망해서야 미친행동을 멈췄었다. 발라암은 물없는 샘이요 폭풍에 밀려가는 안개와 같은 예언자였다. 이런 자들에게는 깊은 암흑이 마련되어 있다. 이들은 허풍을 떨며 그릇된 생활에서 가까스로 빠 나온 사람들을 다시 육체의 방탕한 정욕으로 유혹한다. 이들은 자유를 약속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부패의 노예다. 부패에게 정복되어 부패의 종으로 산다. 우리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어 세상의 더러운 것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라도 부패에 다시 말려 들어가서 정복당할 수 있다. 이보다 더 나쁜 경우는 없다. 올바른 길을 알았다가 거룩한 계명을 저버린다면 차라리 올바른 길을 알지 못했던 편이 더 낫다. 개가 토한 것을 도로 먹고, 목욕 시킨 돼지가 다시 진창에 뒹구는 꼴이다.

https://quietwaters.blog/2020/12/24/

//천사들에게 욕설을 퍼붓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손종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입맛대로 이해하고 적용하여 전한다는 뜻이 아닐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도 자기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다.ㅠㅠ
//올바른 길을 알았다면,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좌우로 치우치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이다. 세상 유혹에 몸이 휘청일 수는 있어도 우리의 발걸음은 궤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우리의 무게 중심을 잡아 주는 것이 말씀과 성령의 깨닫게 하심이다.
//그리스도로 옷입었으면서 진창에 뒹굴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우리가 진창에 뒹굴게 되는 것은 우리의 욕망 때문이다.

베드로후서 2:1-10a

베드로후서 2:1-10a (공동번역)

베드로는 말씀과 성령에 집중해야 할 이유를 설명한다. 거짓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거짓 예언자들과 교사들은 파멸을 가져오는 이단들이다. 그들은 피흘려 성도들을 구원하신 주님을 부인하며 자신들의 멸망을 재촉하는 자들이다. 그들을 따르면 방종하게 되고 진리의 가르침은 비방받게 된다. 그들은 탐욕을 채우려고 감언이설로 성도들을 착취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오래전에 이미 그들을 단죄하셨고, 그들은 파멸당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죄지은 천사들을 깊른 구렁텅이에 가두셨고, 옛적에 사람들이 하느님을 배반했을 때 홍수로 벌하시고 노아 가족 여덟 사람만 살려주셨다. 소돔과 고모라 두 도시도 잿더미로 만드셨다. 하느님을 배반할 자들의 본보기로 삼으셨다. 그러나 방종에 빠진 자들에게 시달리던 착한 롯은 구원하셨다. 착한 롯은 무도한 행실을 보고 듣게 되어 착한 마음에 큰 괴로움을 당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유혹에서 건져내시고 악인들는 심판날까지 계속 벌을 받게 하실 수 있다. 특히 육체의 더러운 욕망에 빠져 사는 사람들과 하느님의 권위를 멸시하는 자들을 벌하실 것이다.

//거짓 예언자들과 교사들로부터 뿐만 아니라 성경을 문자적으로 지키려는 근본주의자들로부터 우리의 믿음을 지키시 위해서는 말씀과 성령에 집중해야 한다. 솔직히 오늘날 문자주의자들의 잘못된 고집으로 진리의 가르침이 비방받고 있다. 한편으로 복음을 감언이설로 둔갑시켜 탐욕을 부추기는 설교와 가르침도 적지 않다. 소돔과 고모라에서의 롯처럼 세상사람들의 무도한 행실을 보고 듣는 심정이 괴롭다. 무도하다는 것은 말씀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씀은 예수의 도, 말씀이신 예수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려고 했던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던 예수의 가르침인 도를 버리고, 문자적으로 성경말씀 지키려는 율법주의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하고 돌이켜야 한다. 우리는 더러운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 말씀(예수의 가르침)과 성령의 깨닫게 하심에 순종하게 하소서.

베드로후서 1:12-21

베드로후서 1:12-21 (공동번역)

베드로는 성도라면 이런 것들, 곧 삼위 하나님을 알아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게 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베드로는 성도들이 이 진리를 굳게 간직하라고 언제나 일깨워 주려고 편지한다. 우리도 서로 일깨워 주어야 마땅하다.
베드로는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가 멀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죽은 뒤에도 성도들이 이 진리를 되새길 수 있도록 힘써 일깨워 주려고 한다.
베드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권능으로 다시 오심은 사람들이 꾸며낸 신화가 아니라, 베드로와 사도들이 눈으로 친히 본 이야기라고 증언한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영예와 영광을 받으셨음을 변화산에서 직접 들었었다. 베드로는 이것을 예수님의 부활을 미리 본 것으로 적용하는 것 같다. 그래서 예언의 말씀이 확실해 졌다고 말한다. 그래서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겠다고 권면한다. 베드로는 이와 같이 성서의 어떤 예언도 임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예언은 인간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하느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아 전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https://quietwaters.blog/2020/12/22/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일깨워 주는 베드로.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구원받음’이라고 이해하자. 구원받음은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영원한 나라는 하늘나라다. 하나님나라다. 하나님의 다스림이다. 따라서 구원이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것이요, 성도는 이것을 항상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것은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일상에서 말씀의 성취를 맛보는 것이다. 아전인수적으로 말씀을 해석해는 안 된다. 성령의 깨닫게 하심이 있어야 한다. 말씀이 성령에 이끌려서 기록되었듯이 성령에 이끌려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것이 삼위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영생이다. 영원한 나라에서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