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31:1-13

“또 모세가 가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전하여” (1)

모세는 분주하다. 은퇴?를 앞두고 고별 설교를 한다. 고별 심방을 하는 듯하다. 한집 한집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만큼 모세의 발걸음은 급하다.

그러나 일백이십세. 신명기 말미에 보면 모세는 죽을 때까지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본문에서 모세는 더 이상 출입하기 힘들다고 한다. 육신의 기력과 다르게 영적으로 지쳤을 수 있다. (반대일까?)

모세는 주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신 것과 주 하나님이 아모리 두왕을 물리치신 것처럼 약속의 땅도 멸하시겠다는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율법을 지켜 행하라고 명령한다.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주 하나님께서 앞서가시고, 함께하시고, 떠나지 않으신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놀라지 말아라.

그리고 다시 반복한다. 주 하나님께서 백성들 앞서 가시고,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 백성들을 떠나지 않으시는 이유는 언약에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성들도 신실해야 한다.

온 나라에 율법을 낭독하는 소리가 넘치고 온 백성이 율법을 듣는다. 자녀들에게는 율법울 가르친다. 객으로 머무는 이방인들에게도 율법을 가르친다. 한마디로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다. 주 하나님의 율법을 듣고 행하고 가르침으로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순환이 지속되는 나라. 주 하나님을 경외함이 삶으로 배워지는 나라. 모세가 상상하는 약속의 땅의 모습이다.

오늘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세상 가치를 존중하도록 가르치고 배우고 그렇게 살아간다.

씁쓸한 토욜 아침이다.

신명기 30

저주는 영원한 형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언약을 기억하고 주 하나님께 돌아와 다시 명령에 순종하면, 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청종하면 복으로 회복된다. 주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신다. 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들을 긍휼이 여기시고 (저주로 흩어진 백성을) 하나님나라에 다시 모으신다. 아무리 멀리 흩어진 백성이라도 순종하는 백성을 그곳으로부터 이끌어 내실 것이라고 하신다.

약속의 땅을 다시 차지 하게 하시며, 주의 백성들에게 선을 행하사 다시 번성하게 하실 것이다. 심지어 다시는 불순종하지 않도록 순종하는 자와 그 자손들 대대로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셔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다. 대신 주님의 백성들의 대적에게 저주를 내리실 것이다.

“그러니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8)

주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은 결국 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여, 율법에 기록된 명령과 규례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지킨다는 것이다. 마음과 뜻을 다하여 순종할 때, 자손의 번성과 풍성한 토지소산의 복을 누리게 된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기쁨이 된다. 주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을까?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11)

청종하라!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은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하늘의 별을 따는 것도 아니요) 바다에 있는 것도 (망망대해를 건너가서 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가까이 있다고 하신다. 암송해서 말할 수 있고 마음에 새겨 언제든지 기억할 수 있다. (육법전서를 억지로 외워야 하는 것이 아니다.) 밥 먹듯, 숨 쉬듯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주 하나님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아니시다.

선택은 백성들의 몫이다. 생명이냐 사망이냐? 복이냐 화냐?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면 생존하고 번성할 것이요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복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마음을 (주 하나님으로부터) 돌이켜 불순종하면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섬기면) 사망할 것이다. 약속의 땅을 차지한다고 하여도 그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다.

생명이냐 사망이냐? 복이냐 화냐?

주 하나님은 친절하게 답을 가르쳐 주신다. 생명을 택하라. 생명을 택해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라. 주 하나님을 의지하라. 주 하나님만이 우리 생명이시요, 장수이시다. 생명을 택하는 것이 하나님나라 (약속의 땅)에서 사는 길이다.

 

 

신명기 29:14-29

주 하나님의 언약은 모압 땅에서 주 하나님 앞에 서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앞으로 올 세대에도 유효하다. (오늘 우리와 같이 주님 앞에 서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 된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는 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이적과 기사를) 볼뿐 아니라 세상 가치(목석과 은금의 우상)와도 맞닥뜨린다. 세상 가치를 좇아 주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 목석과 은금의 우상을 섬기는 것을 저주(독초와 쑥)의 뿌리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믿음의 조상에서 저주의 조상이 되는 것이라는 뜻이다. 목석과 은금의 우상을 섬기는 것이 (세상 가치를 따라 사는 것이) 저주의 뿌리가 된다는 말을 듣고도 자신에게는 해당사항이 없겠지 나는 괜찮겠지라며 평안하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는 것이며, 주 하나님의 분노와 질투를 쌓는 것이며, 율법에 기록된 저주를 뒤집어 쓰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 하나님의 출석부에서 그 이름을 지워버리신다고 하신다. 주 하나님이과 백성사이의 언약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큰 저주가 어디 있으랴.

주 하나님 앞에 서야하는 것은 자자손손 이어져야 하고, 멀리서 오는 객, 여러나라 사람들에게도 유효하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저주받는 것이 어찜이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뻔하지 않은가? 주 하나님의 백성들이 출애굽때 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절했기 때문이다. 신명기가 기록된 이유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저주를 받는 이유는 성경에 기록된대로다. 이것이 나타난 일이다.  감추어진 일은 주 하나님께 속했다. 이 감추어진 일에 대해 자신의 소견대로 평안하다를 외치면 저주의 뿌리가 된다. 주 하나님께서 숨기시는 일에 대해서는 그 일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순종이다. 이미 주신 (나타난)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

(아마도 감추어진 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감추어진 일이 이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만 남았다.  서로 사랑하며 살자.

 

신명기 29:1-13

호렙에서 출애굽 1세대 백성과 맺은 언약을 모압 땅에서 그들의 자손과 갱신하시는 주 하나님. 언약의 갑(주체)이신 주 하나님은 호렙 언약을 맺으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출애굽의 여정에서 행하신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주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없었다고 말씀하신다.

이제 출애굽 2세대들에게는 부모에게로부터 보고 들은 출애굽의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의 이야기에 지난 40년 동안 광야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더해졌다. 광야 사십년동안 옷이 낡아지지 않았고, 신발이 해어지지 않았다. 정착하여 포도농사를 지어 포도주를 마시며 곡식을 추수해 떡을 만들어 먹지 못했지만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의 물을 마시며 살았다. 주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해 주셨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이 땅. 아모리의 두 왕,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물리쳐서 전쟁은 주 하나님께 속한 것임도 보여주셨다.

그런즉 너희는 새로 갱신한 이 언약을 지켜 행하라고 하신다. 언약이행이 만사형통의 통로라고 하신다. 언약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 참여해야 한다. 심지어 진중에 있는 객과, 종들까지 다 언약에 참여하라고 하신다.

언약은 참 간단하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주 하나님 앞에 서있는 모든 남녀노소를 세워, 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주 하나님은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신다. 이 관계는 백성들이 주 하나님 앞에 서있을 때 유효하다. 주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켜 행해야 한다.

주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 언약에 참여하는 방법이다.

신명기 28:58-68

율법의 모든 말씀을 순종하는 이유는 주님의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불순종은 경외하지 않는다는 뜻일게다.

주님은 주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재앙을 내리신다. 후대에까지 재앙을 극렬하게 하신다. 율법책에 다 기록될 수 없는 재앙의 나락에 떨어뜨리신다. 불순종하는 백성이 멸망하기까지 재앙을 내리신다.

아무리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여도 주님을 청종하지 않으면 멸망하기까지 재앙의 벌을 받아야 한다. 이 심판에서 살아 남을 자는 얼마 안될 것이다. 주님은 주님의 백성들에게 선을 행하시고 주님의 백성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기를 기뻐하셨다. 그러나 불순종의 백성들은 멸망하시길 기뻐하실 것이라고 한다. 약속의 땅에서 뽑히게 하실 것이라고 한다. 약속의 땅에서 뽑아 만민중에 흩으실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만민처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살아계신 주 하나님 대신) 목석 우상을 섬길 것이라고 하신다. ( 일이 잘되면 목석우상 탓이요, 안되면 내 지성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면 된다. 목석우상이 명령할 일도 없을 것이요, 그러니 순종 불순종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주님 없는 평안이란 있을 수 없다. 평안 없는 생명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목석 우상을 섬기는 삶에는 평안과 안식이 없다. 먹고 마시는 삶이다. (그러나 하나님나라는 의와 희락과 화평이다.) 불순종의 결과는 먹고 마시기에 급급한 삶, 평화와 안식이 없는 삶, 죽음만을 바라는 삶이다. 목석 우상을 섬기는 삶은 애굽에서 노예를 부리는 사람들 밑에서 일하던 것보다도 못한 삶이다. (관계가 없다.) 악한 /사/람/ 밑에서 일할 기회라도 찾으나 받아 줄 사람이 없다. 생명없는 목석 우상을 섬겨야 한다.  목석 우상처럼 죽은 자로 살아야 한다. 멸망의 나락에서.

율법이 멸망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잘못(불순종)하면 멸망시키겠다는 협박이 아니다. ‘남은 자’에 대한 기대, 적은 무리에게나마 하나님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눅 12:31,32)

먹고 마시는 일을 염려하는 대신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순종하며 살라고 하시는 것이다. 완벽하게 순종할 수 없겠지만 주님의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며 살라고 하시는 것이다. 목석 우상을 섬겨서 목석 우상과 같이 생명이 없는 존재가 되지 말라고 교훈하는 것이다. 살아계신 주님을 섬겨서 살아계신 주님과 같이 생명 있는 존재로 살아가라고 교훈하는 것이다. 적은 무리에 속한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