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7:1-7

이사야 37:1-7 (공동번역)

히즈키야 왕은 그들의 보고를 듣고 (앗수르 산헤립이 보낸 시종무관의 도발을 듣고 온 엘리아김, 셉나 요아 세사람) 그들처럼 입고 있던 옷을 찢고 삼베옷을 걸치고 야훼의 성전에 들어가, 그들과 고위 사제들도 삼베옷을 입혀 예언자 이사야에게 가서 자신의 말을 전하게 했다. 히즈키야 왕은 아시리아 왕이 보낸 시종무관이 살아계신 하느님을 조롱하여 한 말을 이사야에게 전하게 하고 하느님을 조롱한 시종무관에 대한 심판뿐만 아니라 아직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히즈키야 왕의 전갈을 받은 이사야는 야훼의 대답을 전했다. 주님은 아시리아 왕의 아첨배들이 자신을 비방하여 한 말에 놀라지 말라고 하셨다. 주님은 아시리아 왕을 귀신에 사로잡히게 하여 뜬 소문을 듣고 자기나라로 철수하게 하시겠으며 그 후에 거기에서 (아시리아 시종무관이) 칼에 맞아 죽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앗수르에 포위 당한 유다의 운명은 풍전등화였다. 앗수르의 시종무관 랍사게는 하나님을 조롱까지 했다. 히스기야는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알았다. 그는 앗수르의 시종무관에게 대꾸하는 대신 하나님께 이 문제를 돌렸다. 이사야에게 기도를 요청했다. 하나님은 중재자 이사야를 통해 유다의 운명을 연장시켜 주시겠다고 답하셨다. 한편으로 앗수르의 시종무과 랍사게는 칼에 맞아 죽게 하시겠다고 답하셨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기도요청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강했다. 모양새는 히스기야의 바람대로 이루어진 것 같으나 실상은 하나님을 조롱한 앗수르 시종무관에 대한 정당한 심판/벌과 살아 남은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다. //히스기야는 이런 하나님의 성품/속성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도 이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도록 성결해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성결과 겸손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시편 106:32-48

모세는 개인적인 성깔로 함부로 말해 화?를 입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야훼의 분부를 어기어 뭇 이교도들을 멸하지 않고 그들의 우상을 섬겨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이스라엘 자손이 포로로 잡혀가고 원수들의 지배를 받게 된 이유다. 주님은 그래도 그들을 멸하지 않으셨으나 그들은 주님께 항거하면서 죄악으로 빠져들었다. 이때도 언약에 신실하신 주님은 그들의 신음에 그들에게 눈길을 돌리시고 그들이 포로지에서 동정을 받게 하셨다. 시인은 이런 하느님께 구원을 바라는 노래를 부른다.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찬미할 때, 온 겨레가 아멘으로 화답하기를 바라며 노래한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시편 106:13-31

시편 106:13-31 (공동번역)

시인은 주님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는 이유를 주님이 구원해주신 일들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라고 노래한다. 광야에서 주의 백성이라도 투정하고 하느님을 시험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주님은 주의백성의 필요를 챙겨주시면서도 불순종에 대한 벌을 내리신다. 지도자를 시기하고 투기한 다단과 아비람의 무리를 지진으로 묻어버리고 불길로 살라버리셨다. 주의 백성은 호렙에서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예배함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그들의 영광을 우상과 바꾸어 버렸다. 구원자 하느님을 잊어버린 결과다. 이집트에서 홍해에서의 일을 모두 잊어버렸다. 주님이 이런 백성을 없애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모세 홀로 주님이 진노를 거두시게 했다.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약속의 땅을 마다했을 때, 주님은 결국 사막에서 이들을 없애겠다고 말씀하였다. 그리고 그 자손들을 이방인들 사이에 낮추시고 여러나라에 흩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주의 백성은 브올에서 바알신에게 굴종하고 우상에 바친 제물을 먹는 못된 짓으로 하느님을 진노케 했을 때에는 비느하스가 나서서 법으로 다르지자 비로소 재앙이 물러갔다. 이 일로 비느하스 가문은 대대로 은덕을 입게 되었다.

//시인의 노래를 적용하자. 우리가 만약 아침마다 주님의 말씀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주님의 구원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잊어버린다. 주님의 구원을 잊어버렸다면, 시기하고 투기한 자들을 벌하신 주님을 기억해야 한다. 우상에게 굴종하고 우상에 바친 제물을 먹는 못된 짓을 한 자들을 벌하신 주님이라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은 구원을 잊어버리고 우상에게 굴종한 자들을 그냥 두지 않으신다. 주님은 자비로우시면서도 잘못에 대한 벌을 달게 받게 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받아야 할 벌을 대신 담당하신 주님을 기억합니다. 아침마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습니다.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주님을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시편 106:1-12

시편 106:1-12 (공동번역)

시인은 할렐루야!로 노래를 시작한다. 주님의 영원한 어짐과 사랑에 감사하며 노래를 시작한다. 주님에 대한 찬양은 끝이 없을 것이다.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주님 앞에 선 시인은 항상 바로 살고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노래한다. 주님은 항상 바로 살고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을 어여삐 여기신다. 시인도 의인의 회중에 들기를 간절이 노래한다. 바로 살고 옳은 일을 한다는 것은 정의와 공의를 행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복도 개인적인 복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복이다. 시인은 택하신 백성과 함께 복을 누리고 택하신 백성의 기쁨을 자신의 기쁨으로 누리길 원한다. 이 공동체적 복이 곧 하나님나라를 상속받는 것으로 노래한다.
물론 시인은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다. 조상들처럼 범죄하고 빗나가고 거역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언약에 의지한다. 조상들은 원수들의 손에서 건짐을 받았을 때야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찬양했지만, 시인은 주님의 영원한 어짐과 사랑에 감사하며 노래를 한다. 주님을 잊지 않기 위한 자구책이랄까? – 항상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는 삶이야 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다. 삶의 원동력이다. 혼자만이 아닌 공동체와 함께 누리는 복이다. (둘째가 영국으로 돌아가는 날)

시편 105:24-45

시편 105:24-45 (공동번역)

주님은 이집트에서 야곱의 자손들이 크게 불어나게 하셨다. 원수들보다 더 강하게 만드셨다. 그러자 원수들은 이스라엘 자손을 미워하고 속인수를 썼다. 하느님은 모세와 아론을 보내어 함족의 나라 이집트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을 미워하는 이집트에 열가지 재앙으로 내리셨다. 마지막으로 이집트이 맏이들을 치시고 주의 백성들이 금과 은을 가지고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셨다.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이 떠나 것을 기뻐할 정도였다. 광야에서 하느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 만나를 주시고 메추라기를 주시고 바위를 열어서 물도 주셨다.
이렇게 주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거룩한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셨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빼앗아 이스라엘 자손에게 물려주셨다. 이스라엘 자손은 땅값으로 하느님이 주신 법규를 따르고 하느님이 가르쳐주신 법을 지켜야 했다. 할렐루야!

//45절에서 (공동번역) 시인은 주의 백성이 하느님의 법을 따르고 하느님이 가르쳐주신 법을 지키는 것을 약속의 땅에 들어간 땅값이라고 노래한다. //성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주님의 법을 따르고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도 구원에 대한 값을 치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받은 것에 대한 댓가를 치른다는 의미다. 구원은 댓가를 치르고 받는 것은 아니지만 받으면 댓가를 치러야 한다. 이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에 충성하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이유다. //하느님은 착취와 억압에서 건져내시고, 발걸음이 가볍도록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원망과 불평과 배반에도 먹여주시면서까지 하느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셨다. 주의 백성은 땅값을 치러야 한다. -우리도 하나님나라의 땅값을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함으로 매일매일 갚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