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5:12-23

시편 105:12-23 (공동번역)

야훼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한 언약 백성은 적은 수효요 하찮은 사람들이요 떠돌이였다. 그러나 언약에 신실하신 주님은 아무도 떠돌이 신세의 언약백성을 억누르지 못하도록 세상 임금들에게 경고까지 하시며 언약백성을 지키셨다. 기근으로부터 언약 백성을 지키시기 위하여 요셉을 종으로 팔리게 하시고, 종으로 팔린 요셉을 여러나라를 다스리는 이집트의 모든 살림을 주관하고 이집트 왕의 신하들을 교육하고 지혜를 가르치는 자가 되게 하셨다. //평안만 구하는 가치관으로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이해하기가 더 어렵다. 아브라함은 늦둥이 하나만 보았다. 약속의 땅도 받지 못했다. 기근으로 이집트로 내려가야 했다. 그러나 적은 수요요 하찮아 보이는 떠돌이였지만 주님은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을 따르는 사람들을 그 땅의 권세자들로부터 돌보셨다. 언약에 신실하셨다. //야곱의 때에는 더 비참하다. 야곱은 열 두 아들을 거느리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아브라함에 비해 많은 수라고 할 수 없다. 아브라함은 자식은 없었어도 사병을 318명이나 거느린 그래도 부족장이었다. 야곱은 형 에서와 나뉘었고 하란으로 피난갔다 돌아왔으니 족장으로서 거느린 무리가 오히려 줄었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야곱을 이집트로 보내셔서 큰 무리를 이루게 하셨다. 종으로 팔린 요셉을 통하여 주님은 야곱의 후손을 지켜주셨다. 언약에 신실하셨다. //시인은 언약에 신실하신 주님을 노래한다. 추상적인 주님이 아니라 역사 속에 행하신 주님을 소환한다. 주님께서 함께 하심이 언약의 핵심이다. 주님은 장소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으신다.

시편 105:1-11

시편 105:1-11 (공동번역)

야훼, 주님에 대한 감사와 주님을 찾는 기쁨은 언약에 근거한다. 시인이 감사로 주님의 이름을 노래하는 이유다.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자랑하는 이유다. 시인은 주님의 힘을 빌리라고 명령한다. 잠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말라고 권면한다. 이렇게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을 찾는 기쁨을 노래하는 자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주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의 자손이라고 선언한다. 이들이야말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겠다고 서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시인 이 계약을 주님이 친히 작성하셨으며, 우리는 지켜야하고 어길 수 없다고 노래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자주 계약을 어긴다. 시인의 노래처럼 주님의 힘을 빌리고 주님의 곁을 떠나지 말아야 하는데… 시인은 이 노래를 만방을 향해 부른다. 아브라함의 후손과 이스라엘 자손은 혈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의 다스림을 받은 사람들이 이어받는다. 이들에게 주님의 언약은 여전히 유효하다. 내가 감사하는 이유요, 내가 주님을 찾으며 기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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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51:54-64

예레미야 51:54-64

바빌론의 파멸은 기정사실이다. 주님께서 바빌론을 파괴하시기로 정하셨기 때문이다. 바빌론은 마지막까지 술에 취해 영영 깨어날 수 없는 잠에 빠지고 만다. 왕이신 주님이 말씀하신다. 성벽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에 타 없어진다. 바빌론이 쌓은 명성이 헛된 일이요 잿더미가 된다. 예레미야는 바빌로니아의 멸망에 관한 주님의 신탁을 한권의 책으로 기록해서 왕의 수석보좌관 스라야 편에 바빌론으로 보낸다. 예레미야는 스라야에게 두루마리를 읽은 후, 두루마리에 돌 하나를 달아 유프라테스 강 물에 던지라고 했다. 주님이 내리신 재앙으로 바빌로니아도 이렇게 가라앉아 다시는 떠오르지 못하고 쇠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돌을 달아 유프라테스 강에 던진 두루마리처럼 바빌론은 가라앉아 다시는 떠오르지 못한다. 바빌론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말씀을 덮어버리고 읽지 않는 사람도 말씀을 불에 태우거나 강에 던져버린 사람과 마찬가지다. 술에 취에 영영 깨어날 수 없다. 영벌이다. //반면 말씀을 읽고 행하는 자는 성령 충만을 받게 된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더불어 산다. 영생이다. //말씀을 읽고 행한다는 것은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산다는 것이다. 곧 하나님나라의 삶이다. 잿더미가 될 제국의 가치관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신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정의와 공의를 따라 살라고 하신다.

예레미야 51:45-53

예레미야 51:45-53

주님은 주의 백성에게 바빌로니아에서 탈출하여 목숨을 건지라고 명령하신다. 바빌로니아에 있다가는 주의 무서운 분노 앞에서 함께 망할 것이라고 하신다. 바빌로니아에는 흉흉한 소문과 함께 폭력과 통치자들의 다툼이 판을 친다. 주님이 바빌론의 신상들에게 벌을 내리시기 때문이다. 생명없는 신상들에게 자신들의 탐욕을 구하는 사회는 수치를 당하고 살육을 당할 것이다. 주님은 더 큰 세력을 세워 바빌론을 멸망시키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바빌로니아는 세상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을 칼로 죽인 죄로 죽을 것이다. 주님은 주의 백성에게 서성거리리 말고 바빌로니아를 떠나라고 하신다.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주님을 생각하고 예루살렘을 마음속에 두라고 명하신다. 이방 사람들이 주님 성전의 거룩한 곳들을 짓밟아 주님을 욕하고 주님을 조롱해서 주님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고 하신다. 그러나 이제 주님이 바빌론의 신상들에게 벌을 내리신다. 바빌론이 자고하여도 주님은 파괴자를 보내어 높아진 바빌론을 부수겠다고 말씀하신다.

//바빌로니아에서 서성거리지 말고 떠나라. 주님을 생각하고 예루살렘을 마음 속에 두어라. 우리가 떠나야 할 곳은 바빌로니아로 상징되는 세상가치들이다. 하나님 아는 것에 대적하여 높아진 것들이다. 단순히 지리적 바빌론이 아니다. //바빌로니아를 떠나는 것은 주님을 생각하고 예루살렘을 마음 속에 두는 것이다. 여기서 예루살렘이란 주님과 동일시 되며, 곧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이 나오는 곳이 예루살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루살렘을 마음 속에 두라는 명령은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라는 뜻이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라고 하신다. //세상가치는 망하는 가치다. 폭력과 탐욕을 따르게 한다. 주님은 폭력과 탐욕을 부추기는 종교적 열심에도 벌을 내리실 것이다. 폭력과 탐욕이 가득한 교회의 모습에 주님은 부끄러워 하신다. 말씀이 짓밟힌 교회는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성거려서는 안 된다.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의 말씀을 마음 속에 두고 살아야 한다.

예레미야 51:33-44

예레미야 51:33-44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바빌로니아를 심판하신다.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은 그에게 멸망당하고 빈그릇처럼 되어버리고 버림받고 폭행당한 사람들로부터 고발당한다. 시온의 백성도 피는 피로 갚아 달라고 주님께 호소한다.
주님은 그들의 호소를 들으신다. 주님은 그들의 원수 바빌로니아를 주님의 원수로 삼으시고 갚아주시겠다고 하신다. 바빌로니아는 굶주린 사자처럼 으르렁 거리겠지만, 주님은 그들을 술에 빠벼 취해 영영 깨어날 수 없는 잠에 빠지게 하실 것이라고 하신다. 그들은 그대로 도살장으로 끌려갈 것이다.
세상의 자랑거리였던 바릴론이 어쩌다가 함락되고 정복되고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무지가 되었을까? 주님이 바빌로니아의 신 벨에게 벌을 내리셨기 때문이다.

//바빌론이 심판받는 이유를 멸망당하고 빈그릇이 되어버리고 버림받고 폭행당한 자들이, 바빌론이 행한 그대로 갚아달라고 주님께 고발했기 때문이다. 주님은 마치 자신이 당한 일처럼 여기시며 그들의 호소를 들어주신다. //주님께서는 바빌론을 벌하시면서 바빌론의 신 벨을 벌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벨은 하나님보다 높아진 바빌론의 신들을 의미한다. 결국 바빌론의 신들도 만군의 주이신 초월적 하나님(신) 아래에 있는 조무라기 신들에 불과하다고 하신다. 바빌론 신들은 약육강생을 주창했을 것이다. 주님은 이들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