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27-36

요한복음 12:27-36 (공동번역)

예수께서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다고 하신다. 아버지께 이 시간을 면하게 해달라고 기원해야 할까? 그러나 이 고난의 시간을 겪으러 오셨다고 마음을 다잡으신다. 그리고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시라고 기도한다. 그 때에 하늘에서 내가 이미 내 영광을 드러냈고 앞으로도 드러내시겠다는 음성이 들려왔다. 군중들은 하늘 음성을 천둥소리로 혹은 천사가 예수께 말하는 소리로 들었다. 예수께서는 하늘 음성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를 위해서 들려왔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지금은 이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라고 하셨다.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나게 되었다고 하셨다.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나 높이 들리게 될 때에는 모든 사람을 이끌어 자신에게 오게 할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자신이 어떻게 죽으실 것을 암시하신 말씀이다.
그때 군중이 율법서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사시리라는 말을 들었는데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높이 들려야 한다고 하시니 무슨 뜻이며, 그 사람의 아들이란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지 물었다. 예수께서는 빛이 그들과 잠시 같이 있으니 빛이 있는 동안 걸으라고 하셨다. 그래야 어둠이 그들을 덮치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고 하셨다. 그러니 빛이 있는 동안 빛을 믿고 빛의 자녀가 되라고 하셨다. 그리고 몸을 숨기셨다. 예수께서 그렇게도 많은 기적을 사람들 앞에서 행하셨건만 그들은 예수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요12:27-36
//사람의 아들이 큰 영광을 받을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신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내용이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고난의 때를 면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시간을 감내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받을 큰 영광이란 결국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내가 영광를 받아야 삼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제 살폈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높임을) 받으신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자 아버지께서 영광을 드러내셨고 또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라고 하늘 음성을 들려주신다. 예수께서 왕으로 추대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여 고난의 길을 걸으시는 것이 아버지의 영광이라고 확인시켜주신다.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나는 것은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 높이 들리게 될 때라고 하신다. 이 세상 임금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 보좌에서 만왕의 왕이 되실 때다. (우리가 세상의 통치자를 쫓아내기 위해서도 혁명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삼위 하나님께 순종할 때 이룰 수 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이땅에서 영원히 왕 되신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높이 들리실 것을 말씀하신다. (높이 들리신다는 것이 십자가에 달리심을 의미하는지, 부활 승천하여 만왕의 왕이 되신다는 것인지, 혹은 중의적인지 상관 없다.) 이 땅에서 빛으로 사신 예수를 따르는 삶이 곧 빛 가운데 사는 것이다. 그래야 어둠이 덮치지 못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둠 가운데 사는 것이다. 우리 역시 예수를 따라 빛 가운데 살지 않는다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다.

요한복음 12:20-26

요한복음 12:20-26(공동번역)

명절 때 예배를 드리러 올라왔던 사람들 중 그리스 사람도 몇이 있었다. 그들은 갈릴래아 베싸이다에서 온 필립보에게 예수를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필립보는 안드레아에게 먼저 의논한 후 둘이 함께 예수께 그리스 사람들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예수께서 ‘사람의 아들이 큰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고 하시면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같이 있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실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요12:20-26

//사람의 아들이 큰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예수께서 받으실 큰 영광이란 무엇인가? 2024년 작가 한강 씨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때 가장 큰 영광을 받은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해보자. 물론 한강 씨가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받았다. 그러나 더 큰 영광을 받은 사람은 노벨이다. 노벨의 이름이 온 세계로부터 영광을 받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받을 큰 영광이란, 실상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열방으로부터 받으실 영광이다. 아들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이다. 예수의 영광은 부활승천으로 뒤따라 왔을뿐이다. 삼위 하나님으로 받으실 영광이다. //출애굽도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의 노예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제일 목적일지 모르나 애굽사람들에게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홍해의 갈라짐도 애굽과 열방에게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신)이 참 신(하나님)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 큰 영광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심으로 드러난다. //예수께서는 큰 영광을 열매 맺는 것으로 풀어가신다. 자신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신다. 제자의 길도 예수를 따라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 삶이다. 우리가 예수를 따를 때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가 예수와 함께 할 때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실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고 주 예수를 섬길 때, 우리도 높임을 받는다.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있을까?

요한복음 12:12-19

요한복음 12:12-19 (공동번역)

명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에 와 있던 군중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다는 소식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를 맞으러 나가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이스라엘의 왕 찬미받으소서!’ 하고 외쳤다. 예수께서는 새끼 나귀를 타고 오셨다. 이것은 성서에 ‘시온의 딸아, 두려워하지 마라. 네 임금이 너에게로 오신다.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신다’ 하신 말씀 그대로였다. 예수의 제자들도 그당시에는 이것을 깨닫지 못했으나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다음에야 이것이 모두 예수를 두고 기록된 것이며 또 이런 일들이 그대로 예수께 일어났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께서 라자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실 때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 일을 증언했다. 군중들이 예수를 마중 나간 이유도 예수게서 기적을 보여주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다 예수를 따라간다며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가 수포로 돌아갈 것을 걱정했다.

요12:12-19
//왕으로 오시는 분과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시는 분. 두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는다. 군중들은 왕을 기대했지만 정작 예수께서는 성서대로(슥9:9)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요한은 제자들도 당시에는 이 성서말씀을 깨닫지 못했다고 기록한다. 제자들도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왕으로 오시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을 본 사람들은 예수가 왕이 될 자격이 있음을 증언했을 것이다. 이미 오천명을 먹이신 사건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예수를 왕으로 추대하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죽이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며 걱정한 이유도 백성들이 예수를 왕으로 삼고자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스가랴 9:9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의 왕은 정복자 왕으로 오시지 않는다. 정의를 세우고 겸비한 왕으로 오신다. 병거와 군마를 없애고 활을 꺾으시고 평화를 선포하시는 왕으로 오신다. 그래서 말이나 병거가 아니라 새깨 나귀를 타고 오신다. 개선장군을 맞이하려는 백성들의 기대와는 사뭇 차이가 있는 셈이다. //우리가 기대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도 정의와 평화로 다스림을 받는 나라다. 내가, 혹은 우리만 복 받는 나라가 아니다. 모두가 (온 세상이) 복받는 나라다. 그렇다면 내가 그리고 우리 교회가 높아져서는 안 된다. 평탄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우리 교회가 예수님처럼 겸비해야 한다. 더 낮아져야 한다.

요한복음 12:1-12

요한복음 12:1-12 (공동번역)

예수께서 과월절 엿새 앞두고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베다니아로 가셨다. 예수를 영접하는 만찬회가 열렸다. 라자로는 손님들과 예수의 식탁에 앉아 있었고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때 마리아가 매우 값지 순 나르드 향유 한 근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아드렸다. 온 집안이 향유 냄새로 가득했다. 예수의 제자로 장차 예수를 배반할 가리웃 사람 유다가 이 향유를 팔았다면 삼백 데나리온은 받았을 것이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었는데 무슨 낭비냐고 투덜거렸다. 유다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가 도둑이어서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유다는 회계를 맡아 공금을 늘 꺼내 쓰곤 했다. 예수께서는 마리아가 기름을 부은 것은 자신의 장례일을 위하여 한 일이니 참견하지 말라고 하셨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함께 있겠지만 예수께서는 언제나 함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베다니에 머문다는 소식에 많은 유다인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예수도 보고 예수께서 살리신 라자로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작정했다. 라자로 때문에 수많은 유다인들이 종교지도자들의 가르침을 버리고 예수를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요12:1-12

//잔치집인가 초상집인가?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 집에 예수를 영접하는 만찬이 베풀어졌다. 만찬회는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것을 기념하는 잔치 분위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십자가를 앞둔 예수의 장례를 미리 치루는 초상집이어야 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마리아뿐이었다. //마리아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임박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 현상수배범이 되었을 때 이미 알아봤을까? 그동안 예수께서 베푸신 기적/표적을 보아왔다면 예수의 죽음을 직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직 예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만 가능한 생각이다. //제자들도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십자가의 길을 마음에 새기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막판까지 누가 더 크냐며 다퉜었다. 나사로는 소생한 기쁨에 도취해 있었고 마르다도 손님치레에 바쁘기만 했다. 예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던 사람은 마리아뿐이었다. 그녀는 향유옥합을 깨어 예수의 장례를 미리 기릴 수 있었던 이유다. //예수도 보고 나사로도 보고. 물론 이렇게 구경꾼으로 시작해서 믿음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살지 않으면 믿음에 머무르기 쉽지 않고, 오히려 종교지도자들처럼 살의를 가지게 될 수도 있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한다. ‘예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세상조류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요한복음 11:45-57

요한복음 11:45-57 (공동번역)

마리아를 찾아왔다가 예수께서 하신 (나사로를 살리신) 일을 본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일러바친 사람도 있었다.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의회를 소집하고 예수의 많은 기적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했다. 그대로 두면 누구나 다 예수를 믿을 것이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로마인들이 성전과 백성들을 짓밟을 것이라고 의논했다. 실무 대사제인 가야파가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이 말은 가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해의 대사제로서 예언을 한 셈이다. 예수께서 유다 민족을 대신해서 죽게 되리라는 것과 자기 민족뿐만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서 죽는다는 뜻이었다. 그날부터 그들은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유다지방에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광야 근처에 있는 지방으로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머무셨다. 과월절이 다가오자 많은 유다인들이 몸을 정결하게 하려고 미리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예수를 찾아다녔다. 그들은 예수께서 명절에 참례할지 수군거렸다.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를 붙잡으려고 예수의 거처를 아는 자는 신고하라는 명령을 내려 두었다.

요11:45-57
//예수를 죽이려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그들은 로마에 핑계를 댄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로마인들이 성전과 백성을 짓밟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차라리 예수 한 명을 죽이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다. 로마의 속국으로 종교적 자유를 누리는 것이 메시아의 다스림을 받다가 로마에 짓밟히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메시아의 다스림이 로마에 짓밟히는 원인이 된다는 생각은 핑계이고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서 예수를 죽이고자 했다. //예수를 찾는 사람들. 한편으로 유월절이 가깝자 몸을 정결하게 하려고 미리 예루살렘에 올라 온 사람들는 예수를 찾았다. 이들의 관심도 예수의 메시아되심 보다, 예수의 목에 걸린 현상금을 누가 타갈 것인가에 쏠린 것 같다. //종교지도자들이든, 일반 백성이든 그들은 모두 여전히 어둠 가운데 다닌다.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소경들이다. 그들의 마음에 살의가 가득하다는 것이 그 증거다. ㅠㅠ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마무리 하시면서 이미 이들을 정죄하셨다. (요3:19,20)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악을 행하는 자들은 빛을 (예수를) 미워하여 빛으로 (예수께로) 오지 않는다. 자기들의 행위를 감추기 위해서 어둠을 더 사랑한다. 명절이라고 몸을 성결하게 한다고 마음까지 정결해 지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 진리의 말씀을 따라 빛이신 예수께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