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8:12-28

이사야 48:12-28

시작이요 마감이신 주님은 한결 같으신 분이시다. 이 땅의 기초를 놓으신 창조주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모두 나와서 들어야 한다. 이 주님이 이스라엘을 야곱이라 부르시며, 바빌론(갈대아)를 벌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 일을 미리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은 주님 밖에 없으시다. 주님은 새로운 친구를 세우셔서 바빌론을 멸하실 것이다. 주님은 수군거리지 않으시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이사야는 현장에서 이 말씀을 듣고 야훼의 영에 감동되어 말씀을 전한다. 본문의 청자는 확실하지 않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야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나 야훼가 너의 하느님이다. 네가 잘되도록 가르치는 스승이요 네가 걸어햐 할 길로 인도하는 길잡이다. 네가 만일 나의 명령을 마음에 두었으면, 너의 평화는 강물처럼 넘쳐 흐르고, 너의 정의는 바다 물결처럼 넘실 거렸으리라. 너의 자손은 모래 벌판과 같고 너의 자녀들은 모래알만큼 많아졌으리라. 네 이름이 내 앞에서 꺼지지도 없어지지도 아니하였으리라. 바빌론에서 빠져 나오너라 갈대아 사람들을 뿌리치로 도망쳐라.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 선포하여라 세상 끝까지 퍼뜨려랴. 야훼께서 당신의 종 야곱을 구원하신다. 사람들은 그들 따라 사막을 지나가면서도 목마르지 않았다. 그가 그들을 위하여 바위에서 샘이 솟게 하셨다.]
야훼께서 불의한 자에게 ‘잘되려니 생각마라’ 하고 이르신다.

이사야 48:12-22
//우리가 믿는 창조주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바빌론을 심판할 도구로 사용하실(신) 고레스 왕을 친구라고 부르신다. 주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는 스승과 인도자가 되어 주신다. 친구, 스승, 인도자 모두 함께 하는 인격적 관계다. 이런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때 평화와 정의가 넘치게 된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때 평화와 정의가 넘친다니 기쁜 소식이요, 복음이다. //주님은 한결 같으시다. 순종하는 (최소한 순종하려는) 자에게 평화와 정의를 베푸시고, 불순종 하는 (불의한) 자를 망하게 하신다. 주님이 베푸시는 복이 평화와 정의라는 것에 주목하자. 주님이 베푸시는 복은 결코 개인의 풍요가 아니다. 평화와 정의라는 복은 모두 관계적이며 공동체가 누리는 복이다. 누가 더 잘되는 것이 복이 아니라, 사막을 지나면서도 공동체 모두가 목마르지 않는 것이 복이다.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은 사람은 잘되려니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형통하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들어야 한다. 불순종하면서 형통하려는 것은 헛된 욕심이다. 주의 영에 감동되어 말씀을 깨닫고 순종해야 한다. ///주의 성령을 제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이사야 48:1-11

이사야 48:1-11

야훼 하느님이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유다의 혈통을 이어받고 야훼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야훼를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 부르지만 마음은 거짓으로 가득차 있고 생활은 비뚤어져 있다고 책망하신다. 이스라엘 스스로는 거룩한 도시의 시민으로 자처하고 말로만 만군의 야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의지하면,역사를 주관하시고 말씀을 이루시는 하느님 앞에 여전히 고집불통으로 목이 곧고 청동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하신다. 이스라엘이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우상에게 돌리는 엉뚱한 소리를 못하게 하시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고 말씀대로 일을 이루셨다. 이스라엘은 이 일의 증인이어야 했다.
이제 주님은 새로운 일을 이스라엘에게 들려주신다. ‘진작부터 이럴 줄 알았다’ 라는 말을 할 수 없는 비밀을 들려주시겠다고 하신다.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은 배신자인 이스라엘이지만, 주님은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주님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노여움을 참으셨고 분노를 억제하셨고 이스라엘을 멸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이제 이스라엘을 은처럼 불 속에서 녹여내고 고생의 도가니 속에서 단련시켰다. 주님이 이렇게 하신것은 ‘언약을 지키지 않는 변절자’ 라는 욕이 주님께 돌아오게 버려둘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언약에 신실하신) 주님의 영광을 스스로 버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이사야 48:1-11
//마음은 거짓으로 가득하고 생활은 비뚤어진 이스라엘.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자손에게 새로운 일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성실하지 못한 이스라엘, 고난과 시험으로도 연단되지 않은 이스라엘을 향한 새 일은 무엇일까? (바벨론은 자비 없는 자에게 일어날 일을 생각하지 못해서 교만으로 망했다.) 주님의 새 일이란 불성실한 이스라엘 자손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난 이스라엘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을 가족으로, 자녀로 부르셔서 (구원하셔서) 공의를 베푸는 삶을 살게 하신다. 자비 없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자비를 베푸는 삶을 살게 하시는 것이 주님의 새 일이요, 성도가 참여해야 할 새 삶이다.

이사야 46:1-13

이사야 46:1-13

창조주 야훼 앞에서 벨 신이 엎드러지고 느보 신이 거꾸러진다. 우상들은 무거운 짐짝에 불과하다. 야훼께서는 살아남은 이스라엘 후손에게 말씀하신다. 야훼께서는 수레에 실려다니는 무거운 짐짝에 불과한 우상과 달리 이스라엘 후손을 업고 다니고 안고 다니신 분이시다. 이스라엘 후손은 늙어가도 야훼께서는 한결같은 분이시다. 야훼께서는 백발이 성성한 이스라엘 후손도 업고 다니시며 살려내시는 분이시다. 이런 하나님을 우상과 비교할 수 없다. 사람이 만들어서 메어다가 자리에 안치해 놓아 움직이지도 못하는 우상의 신상들과 다르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못하는 우상, 곤경에서 구해주지도 못하는 우상과 야훼는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야훼도 우상시 하는 자들에게 부끄러운줄 알라고 말씀하신다. 이들 반역자들에게 야훼가 다르시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두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처음부터 생각해 본다면 야훼가 신이시고 야훼 밖에 다른 하느님이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처음부터 장차 있을 일을 일러주시는 분, 장래 일 알려 주시는 분이시요, 말씀을 성취하는 분이라고 주장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오직 야훼 하느님만이 말씀하신 대로 계획 세우신 대로 그대로 이루시는 분이시다. 이 주님이 승리를 선포하신다. 승리가 멀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즉시 구원을 베푸시겠다고 하신다. 야훼께서 시온에 구원을 베풀고 이스라엘에게 주님의 영광을 입혀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사야 46:1-13
//벨 신과 느보 신! 바벨론의 신이다. 벨 신과 느보 신 역시 사람들이 만들어 세운 우상에 불과하다. 웅장하게 만들어 세웠어도 무거운 짐짝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운반해야 움직이며 말도 못하며 사람들을 곤경에서 구원하지 못한다. 반면 여호와 하나님은 주의 백성을 업고 안고 다니시며 살려내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는 이스라엘 백성의 출바벨론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계획(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이루신다. //주의 백성은 출애굽에서 이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배웠어야 했다. 이제라도 야훼께서 출바벨론을 통해 시온에 구원을 베풀고 이스라엘에게 주님의 영광을 입혀주시겠다는 약속을 기대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도 승리다. 예수께서 이미 승리를 선포하셨다. 요한복음 16:33b에서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하고 말씀하신다. 용기를 내어 주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 때 이땅에서도 임마누엘을 누린다. 영생이다.

이사야 45:18-25

이사야 45:18-25

창조주 하나님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자신이 야훼라고 말씀하신다. 야훼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이가 없다고 하신다. 야훼께서는 은밀하게 수군거리지 않으시고 옳은 말을 하시며 하신 말씀을 성취하신다. 생명있는 자들을 불러모으시고, 살려줄 힘도 없는 우상에게 기도하는 바보들에게 야훼 이외에 말을 하는 우상이 있으면 증거를 대라고 말씀하신다. 야훼께서는 정의를 세워 구원을 이루는 하느님으로 자신 밖에 다른 신은 없다고 선언하신다. 그러니 하느님께로 돌이켜 와서 구원을 받으라고 하신다. 야훼만이 유일한 하느님이요 다른 신은 없다고 하신다. 야훼의 입에서 나가는 말은 틀림이 없으며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 진다고 선언 하신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야훼께 무릎 꿇고 모든 민족이 자기 방언으로 야훼께 신앙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정의를 세울 힘이 야훼께만 있다. 야훼께 대적하는 자들은 무안을 당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후예는 승리를 베푸시는 야훼를 자랑스레 모실 것이다.

이사야 45:18-25

//정의를 세워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 구원이란 무엇인가? 정의를 세우는 것이라고 하신다. 정의는 개인적이지 않고 공동체적이다. 따라서 우리의 구원 역시 개인적이지 않고 공동체적이다. 우리는 개개인의 신앙 고백으로 구원받은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구원을 완성한다.  하나님께로 돌이켜 구원받은 성도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지어져 가야 한다.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부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교회 공동체다. 이런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가 임마누엘이요 영생이다. 하나님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공동체에서 개인적인 복을 구할 수 있을까? 우리가 구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  뿐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다는 것은 우리가 정의를 세우는 도구로 온전히 쓰임받기를 구하는 것이 아닐까 적용해 본다. 구체적인 적용은…

이사야 45:9-17

이사야 45:9-17

분위기가 다시 반전된다. 자신을 들어 쓰시는 야훼께 순종하면 행복하지만 불순종하면 불행이다. 비참하게 된다. 불순종을 자기를 빚어낸 이와 다투는 옹기그릇에 비유하신다. 피조물은 창조주에게 불평할 수 없다. 자식이 부모에게 왜 이모양으로 낳았냐고 할 수 없듯이. 이렇듯 이스라엘은 거룩한 야훼께서 만드셨다. 이스라엘 후손들이 야훼께 따질 수 없다고 하신다. 천지도 사람도 야훼께서 만드셨다. 우주의 운행도 야훼께서 주관하신다. 이런 주님께서 포로된 백성을 해방시키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값없이 해방시켜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이집트, 에디오피아, 스바와 같은 대국도 굴복하게 될 것이고 하느님께 빌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에게만 하느님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신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선언하신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몰래 보살피신 결과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세주가 되셨다. 이스라엘에게 달려드는 자들은 창피를 당할 것이고 우상을 조각하는 자들도 창피를 당해 꽁무니를 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야훼의 구원을 얻는다. 영원한 구원이다. 영원히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 45:9-17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불행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께 등을 돌린 결과다. 불순종이 불행이다. 하나님은 택한 종 이스라엘의 죄를 날려보내시기까지 자비를 베풀며 돌아오라고 하시는데 이스라엘은 주께 돌이키는데 번번히 실패한다. 왜 이모양으로 만들었느냐고 오히려 따져든다. //이스라엘은 대국 이집트로부터 이미 구원받은 역사가 있다.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하신 역사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세주가 되셔서 보살피신 결과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고야 말았다. //하나님은 이번에는 제국 바벨론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로 하셨다. 이스라엘에게 달려드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포로기 이후의 역사를 담은 성경에서 우리는 이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영원한 구원이기를 바라지만 육적 이스라엘은 또다시 모욕과 수모의 길로 떨어졌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는 어떤가? 순종과 불순종의 줄타기를 넘나들고 있다. 순종의 길을 가지 못한다. 행복한 길을 가지 않는다. 행복을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아니 다른 곳에서 찾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