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9:1-14

얼마되지 않은 포로기간이었지만 벌써 이국에서 죽음을 맞이한 유다 장로들도 있었다. 그만큼 이민, 그것도 포로생활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에게 가장 간절한 소식은 무엇이었을까? 포로로부터의 귀환에 관련된 소식이었을 것이다. 고향땅에 묻히는 것이 소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포로기간이 짧지 않을 것이라고 포로로 잡혀간 유다백성에게 편지하게 하신다.

포로지에서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그곳에서 농사짓고 그 소산물을 먹으라고 하신다. 그곳에서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으며 번성하라고 하신다. 심지어 자신들을 포로로 잡아온 사람들과 성읍의 평안을 구하라고 하신다. 포로지가 평안해야 유다 백성들도 평안할 것이라고 하신다. 혹여 (거짓) 선지자와 점쟁이, 꿈쟁이들이 하는 말을 듣게 되면 그것을 믿지말라고 경고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서의 포로기간을 칠십년이라고 하신다. 칠십년이 차야 유다 백성들을 유다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포로기간이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고 하신다.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계시지 않는다. 포로지에서도 하나님은 내게 부르짖으라고 하신다. 내게 와서 기도하면 기도를 들어주시고 온맘으로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어디서든) 하나님은 우리들을 만나길 원하신다. 결국은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 하나님을 만나는 자들로 하나님나라를 이루게 하신다.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다시 부르신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 세상에 항복하는 것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다. 하나님은 예배당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시다. 세상 한복판에서도 우리를 만나주신다. 천하 어디에서든지 우리가 온맘으로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만날 수 있다. 세상 한복판에도 하나님께서는 편지를  보내주신다. 읽고 지켜야할 명령을 주신다.

우리는 세상에 산다. 이제는 세상의 포로다.  하나님께서는 포로지에서도 일상생활을 하라고 하신다. 종교적 열심을 강조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을 종교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집을 짓고 농사짓고 가정을 꾸리라는 것은 다분히 일상생활이다. 일상에서 하나님을 찾고 만나지 못한다면 결국은 죽은 종교다. 신앙이 아니다.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로 사랑을 행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길이다.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이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미래와 희망을 갖는다.

예레미야 28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 하나냐의 이야기를 말해준다. 시드기야 왕 사년 다섯째 달에 일어난 일이다. 하나냐는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으시고 바벨론 왕이 탈취한 성전의 모든 기구를 이년안에 되돌리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거기다가 바벨론으로 잡혀간 여호야긴과 모든 포로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예레미야는 ‘아멘’으로 화답했다. 하나냐의 예언이 성취되면 얼마나 좋으랴! 예레미야 또한 이것을 바라는 바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선지자들은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한다.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선지자는 그 예언의 말이 응한 후에야 참 선지자로 인정 받게 된다.

하나냐는 예레미야가 메고 있던 멍에를 빼앗아 꺾어버렸다. 그리고 다시한번 이년안에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멍에를 꺾어 버리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예레미야는 자기 길을 갔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하나냐에게 가서 바벨론의 멍에가 나무에서 쇠로 바뀔 것이라고 전하라고 하셨다. 모든 나라가 바벨론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심지어 들짐승도 바벨론에게 주셨다고 전하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냐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지 않았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하나냐가 금년 안에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선지자 하나냐는 그해 일곱째 달에 죽었다.

//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 받게 되리다 (9)”

‘바벨론에 항복하라 그리하면 살리라’가 예레미야의 주제다. 그리고 나의 묵상은 ‘세상에 항복하라 그리하면 교회가 살리라’로 적용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는 끊임없이 나로 고민하게 한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5)

예수님의 마지막 가르치심은 평화를 예언하시는 것인지 환난을 예언하시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아 보인다.(분명한가?) 확실한 것은 주님이 세상이 이기셨다는 것이다. 문제는 주님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평화를 당연시 하는 교회의 태도다. 주님의 가르침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한다는 것이다.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를 ‘평안하다 평안하다’로 대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교회가 주류문화인 세상에서 (혹은 교회가 주류인줄 알고) 한동안 살아왔다. 그러나 서구 교회는 이미 주류문화의 자리을 잃고 말았다. 한국도 마찬가지고 (피)선교지에서는 당연하다. 환난을 당하고 있다. 주님은 싸우라고 하지 않으시고 담대하라고 하셨다. 소수자가 된 교회는 이제 심판자의 능력을 잃었다. 옳고 그름을 제시해도 듣는 이가 없다. 소명도 사명도 없는 사역자가 떠들면 더 그렇다.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은 옳은 것을 담대하게 행하는 것 뿐이다. 교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낼만큼 교회가 옳게 행하고 있는가?) 옳은 일을 성실하게 정직하게 (담대하게) 하는 수 밖에 없다. 기한이 찰 때까지. 그러니 여전히 교회에 소망이 있다.

예레미야 27:12-22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전한다.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바벨론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사시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했다.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않으면 유다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이다. 바벨론을 섬기지 않게 될 것이라는 선지자들의 말은 거짓예언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하는 선지자들을 보내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멸망시키시겠다고 하신다. 제사장들과 백성에게 바벨론에게 빼앗긴 성전기구를 속히 돌려오리라라고 예언하는 선지자들도 거짓 예언을 하니 그들을 말도 듣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고 일관된다.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살리라.” 이것만이 예루살렘성이 황폐케 되는 길을 막는 방법이다. 거짓 선지자들이 성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기구를 바벨론으로 옮겨가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고 하신다. (저들이 기도해도 듣지 않으시겠다는 뜻이다. 저들이 거짓 선지자로 들어날 것이다.) 하나님은 남은 기구들 마져도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오래오래 바벨론에 있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기한이 차야 다시 되돌릴 것이라고 하신다.

// 세상에 항복하라 그리하면 살것이라. 항복하고 살라니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문구와 얼마나 대조적인가? 확실히 우리 정서와 맞지 않는다. 그런데 반복해서 읽고 또 읽고 묵상하면, ‘하나님께 순종하면 살리라’라는 예언의 말씀이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명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바벨론에 (세상에) 항복하라는 것은 그래서 복음이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종교로 포장된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안에서 살 수 있게 해 준다. 어쩌면 바벨론에 포로가 된 유다백성 처럼, 가나안 성도들은 세상에 포로가 된 성도들이지 않을까? 교회를 지킨다는 사람들은 멸절당하고 가나안 성도들 중에 남은 자들이 하나님나라를 , 교회를 이어가지 않을까? 물론 기도하기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정의와 공의, 곧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세상에 항복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공의, 곧 사랑을 실천하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예레미야 27:1-11

예레미야는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할 때부터 시드기야 왕 때까지 바벨론에 의한 유다의 패망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예언해왔다. 심지어 줄과 멍에를 만들어 목에 걸고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시드기야 왕에게 모인 에돔과 모압과 암몬과 두로와 시돈의 왕의 사신들 앞에 시연해 보이면서까지 이 모든 땅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주신다고 예언했다. (시드기야에게 모인 각 지방의 왕들은 아마도 반바벨론 연합을 결성하기 위해 모였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유다뿐 아니라 모인 모든 주변왕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의 예언을 전한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유다와 주변 국들은 바벨론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을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내 종이라고 부르셨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권세은 영권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간이 삼사대 정도라고 기한을 정해주셨다. 유다와 주변국들 뿐만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바벨론을 섬긴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라고 명령 하신다.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라고 하신다. 멍에를 메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면 오히려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 민족을 벌하시겠다고 선언하신다. (거짓) 선지자들이나 복술가나 꿈꾸는 자나 술사나 요술자들이 바벨론 왕을 섬기게 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을 듣지 말라고 하신다. 그것들은 거짓 예언이다. 거짓 예언을 따르면 포로로 잡혀가고 그 땅에서 쫓겨나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대신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바벨론을 섬기는 나라는, 그 백성들이 그 땅에 계속 머물며 밭을 갈며 거기서 살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요즘들어 부쩍 드는 생각. 세상을 섬겨야 하는 때인가보다. 말씀대신 교회의 전통과 전통에 집착한 가르침만을 붙잡고 고집하면  이땅에 교회가 설자리를 잃을 것이며, 성도들이 살 터전도 잃고 결국 멸망하지 않을까? 죽은 말씀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교회에 (예배당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세상으로 흩어져야 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든다. 이럴 때 교회의 역할을 무엇인가?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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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르드개와 에스더. 제국의 중심에 선 유대인. 이들은 유대인처럼 살았는가? 에스더서는 이들이 유대인이었지만 유대교적 삶을 살았다는 것을 기록하지 않았다. 금식이나 재옷을 입는 것도 유대교적 삶의 예라보기 힘들다. 이름도 바벨론식으로 짓고 살았다. 심지어 이방신의 이름을 따서. 그러면 이들은 어떻게 제국의 중심에서 살았을까? 하나님이 주신 보편적 원리를 따르지 않았을까? 정직과 성실 등등.  더 고민하고 공부하고 준비하고…. 무엇보다도 성령의 깨닫게 하심을 구해야 한다. 깨어있자.

예레미야 26:16-24

예레미야의 재판은 색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고관들과 백성들은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사형구형에, 예레미야의 변론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진실되므로 무죄라고 항변한 것이다.

그러자 장로 몇사람이 두 선지사 사건을 예로 든다. 히스기야 왕 때 모레셋 사람 미가 선지자와 여호야김 왕 때 기럇여아림 사람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 선지자다. 미가와 우리야도 예레미야와 비슷한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전했다.

미가의 예언을 들은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을 예언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여 하나님께 간구했고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대한 재앙의 뜻을 돌이키셨다. (따라서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지 않는 것은 국가적으로 자해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우리야에 대한 여호야김의 대응은 정반대였다. 여호야김은 우리야를 죽였다. 우리야가 두려워 애굽으로 도망가자 심지어 애굽에 사람을 보내 우리야를 잡아와서 죽였다. 우리야와 마찬가지로 예레미야는 지금 이 여호야김 시대에 예언하고 있는 중이다. (예레미야는 혼자가 아니었다.)

재판이 이렇게 양극으로 갈리면 결국은 여호야김 왕에게 (애굽파에게) 최종 판결이 넘어가게 될 운명이었지만,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아마도 바벨론파의) 도움으로 예레미야는 사형을 면하고 보호받는다. (아힘감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도구로 심판하시기도  보호하시기도 하신다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

// 같은 시대에 같은 예언을 한 우리야와 예레미야에 대한 운명이 달라보일 수 있다. 이생에서의 삶과 죽음만 생각하면 공평하지 않을 수 있다.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