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6:1-15

자꾸 필름을 앞으로 돌린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경고는 임박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임을 상기시킨다.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다.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자들을 악한 길에서 서있는 자들이라고 하신다. 그들이 악한 길, 악행에서 돌아오길 바라셔서 예레미야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라. 선지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순종하라고 가르쳤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던 실로처럼 성전이 있는 이 곳 예루살렘도 열방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시겠다고 하나님께서는 강조하신다.

예레미야가 하나님 말씀을 예언하자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예레미야를 붙잡아 사형선고를 내리고자 모여든다. 유다의 지도자들이 합세하여 심판한다. 죄목은 성전모독이다. 유다 백성들을 성전을 하나님과 동일시 했다. 그래서 신성모독이다.

예레미야는 자기변호를 한다. 아니 자기변호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전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성전과 예루살렘에 대해 예언하게 하셨다. 따라서 너희는 너희의 (악한) 길과 (악)행을 고치고 너희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래야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선언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실 것이다. 나에게는 내 목숨보다 하나님 말씀을 예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 개인에 대해서는 너희들 맘대로 해라. 그러나 나는 내가 하나님 앞에 무죄하다는 것을 안다. 내가 사형당한다면 무죄한 피를 흘리는 것이고 그 죄값은 너희 몫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이 모든 말을 예언하게 하신 것은 진실되다.

사무엘 시대에 언약궤가 있으면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이스라엘 장로들이나, 성전이 있어서 예루살렘성은 바벨론과의 싸움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유다의 고관과 제사장들과 백성들이나 다를게 없다. 하나님께서는 초지일관 순종을 강조하시는데  종교지도자들은 제사(예배)만 강조한다. 하나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이미 가르쳐주셨고, 바울은 순종을 우리 몸을 하나님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예배라고 적용했다. 예배당에 모여 영성이 풍부한 예배만 드리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나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종의 삶을 살라고 권면한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라고 하신다. 억지적용을 한다면 평생 주일성수나, 평생 성경일년일독이 나의 구원을 확증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다. 듣기만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다. 순종이 예배보다 낫다.

예레미야 25:30-38

세상 모든 주민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조용하거나 은밀하지 않다. 사자의 포효처럼, 포도수확의 잔치처럼 요란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민족,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육체도 없다. 악인들은 심판의 칼을 피할 수 없다.

세상 곳곳에서 심판의 재앙이 날 것이다. 모든 나라에 미칠 것이다. 심판의 죽음이 땅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이어질 것이다. 누가 누구를 위해 애곡하거나 시신을 거두거나 매장할 여력이 없다. 모두가 죽음의 심판을 받아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지도자라고 해서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귀하다 해도 떨어져 깨진 그릇에 불과하다. 지도자들도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심판을 피해 도망칠 수 없다.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고 백성들이 울며 기도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평화의 땅이 황폐하게 되고 침묵만 흐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사자의 포효로 호통치신다. 분노와 극렬한 진노로 세상 주민들의 땅을 심판하신다. 폐허로 만드신다고 하신다.

// 은혜의 여지가 없는 말씀이다. 그들은 지면에서 분토가 되리로다. 세상 모든 주민에 대한 심판이다. 귀한 그릇이라고 피할 수 없다. (위로부터 받은) 권세를 가진자들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선 백성들과 마찬가지다. 그 날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만 안전하다.

예레미야 25 :15-29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진노의 말씀을 유다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에게 전한다. 모든 나라가 피하지 못할 예언의 말씀이다. 먼저는 유다요 마지막으로 세상 모든 나라들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하나님이 아니시다. 창조주요 만군의 하나님이시다. 세상 모든 주민의 하나님이시다. 세상 모든 주민은 그들의 행함으로 그들의 손의 행위로 심판받는다.

교회는 재앙의 마지막이 아니다. 오히려 심판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백성부터 재앙을 받는다. 복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재앙의(사악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선지자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렘 23:15)]

복의 근원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사악의 근원이 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순종해야 한다.

예레미야 25:1-14

다시 여호야김 때로 돌아간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때부터 이십삼년 동안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을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예언했다.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말고도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그들은 순종은 고사하고 귀기울여 듣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했다. 악한 길(습관)과 악한 행동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약속의 땅에서 영원히 산다고 하신다. 다른 신을 좇아다니거나 섬기거나 경배하지 말라고 하신다. 다른 신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이다.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노엽게하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다백성은 순종하지 않고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다. 스스로를 해하는 짓이었다.

하나님은 불순종의 백성들을 벌하신다.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삼아 약속의 땅을 황폐하게 하시겠다고 선언하신다. 기쁨도 소망도 빛도 없는 땅, 폐허로 만드실 것이다. 유다민족은 칠십년동안 바벨론을 섬기기 될 것이다.

심판의 도구 바벨론도 (칠십년이 지나 심판의 임무가 끝나면) 그 자신들의 죄악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바벨론도 영원히 폐허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예언은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동과 다른사람에게 행한대로 심판하실 것이다.

// 하나님께 향한 불순종은 칠십년동안 세상을 섬기는 포로생활이다. 칠십년이 상징적 숫자라면 영원에 가까운 기간이다. 그 끝은 세상도 폐허가 되는 것이다.

// 백성이든 이방민족이든 그들의 행함과 그들의 손이 행한대로 심판 받는다. 차별이 없다.

// 은혜 안에 거하면서 순종해야할 이유다.

//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칠십년의 1/3에 해당하는 이십삼년를 꾸준히 하나님 말씀을 예언했지만 백성들은 순종은 고사하고 귀담아 듣지도 않았다. 다른 선지자들까지 포함하면 칠십년씩 일곱번에 가까운 기간(다윗부터 시드기야까지 사백 년 조금 넘는다) 동안 주님은 끊임없이 참고 참으시며 말씀을 계시해 주셨다. 그러니 말씀이 육신이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은 은혜다

예레미야 24

두 광주리의 무화과. 한 광주리에는 좋은 무화과가 다른 광주리에는 나쁜 무화과가 있다. 비유는 분명하다. 똑같은 무화과였는데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은 좋은 무화과로 보존되고, 유다땅에 남은 백성들은 나쁜 무화과로 버려진다.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이 좋은 무화과가 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그들의 하나님(신)이 되어 주셨다.

반면 예루살렘과 유다땅에 남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마음이 이미 주어졌으나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 시드기야 왕은 하나님 대신 애굽을 의지해서 결국 유다는 망한다. 나쁜 무화과처럼 버려졌다.

원래 좋아서 좋은 무화가가 된 것이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아 좋은 무화과로 보존된다. 원래 나빠서 나쁜 무화과로 버려진 것이 아니라 은혜에 참여하지 않고 자기 길(습관)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교훈은 확실하다. 하나님께 전심으로 돌아오는 자가 좋은 무화과다. 이 은혜에 머물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