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6:15-23

복음이란 법이 아니라 은혜다.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법 아래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은혜 아래서는 모든 죄가 가려진다. 그렇다고 일부러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 그럴 수 없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순종하는 자의 종이된다. 죄의 종이거나 순종의 종이거나. 죄의 종과 순종의 종이 대비된다. 결국 불순종이 사망에 이르는 죄다. 순종은 의에 이르는 생명이다.

죄의 종이었던 우리가 순종하여 죄의 통치에서 벗어나 의에게 종이 된 것이야 말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제목이다. 여기서는 순종과 의를 동격으로 사용한다.

육신이 연약한 우리는 죄의 종일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은혜 아래있는 육신은 다르다. 여전히 약하겠지만 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를 수 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 안에 살기 때문이다.

죄의 종이 었을 때는 의의 통치를 받지 않는다. 그런데 죄의 종이었을 때 은혜로 (선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맺은 열매가 부끄러운 죄의 삯인 사망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께 종이 되었다. 의도 하나님과 동격이다. (의의 종 =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종들이 맺을 열매는 거룩한 영생이다. 하나님과의 연합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죄의 종은 자신이 행한 댓가, 곧 죽음이라는 삯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수도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다. 하나님의 종은 자신이 행한 댓가가 아닌, 곧 영생이라는 선물(은사) 를 받는다.

역설적이게도 죄와 순종이 대비된다.

순종의 종 (16) = 의에게 종 (18,19) = 하나님께 종 (22)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이고
의는 믿음의 속성이고
순종은 믿음의 표현이다.

로마서 6:1-14

복음이란 죄로 죽은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마암아 누리는 영생, 풍성한 생명을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즐거워 하는) 것이다. 복음은 죽음과 생명 중에 생명에 있다.

그런즉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다시) 거할 수는 없다.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은혜는 더해지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은혜들은 반복되기도 하고 더해지기도 하겠지만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은혜는 가장 크고 무한한 은혜다. 무한대에 무한대를 더한들 무한대인 것과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죄에 대해 죽은 (이미 생명으로 옮겨진) 우리는 더 이상 죄 가운데 살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았으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었고, 연합하여 장사되었고 연합하여 부활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새 사람이 되어 새생명 가운데 행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었으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부활한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은 것은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죄의 몸이 죽은 것이다. 죄에게 종노릇 하던 몸이 죽은 것이다. 죽었으니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 할 수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부활했다. 부활은 죄에서 벗어나 새 사람,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한다. 죄에 대해서는 죽고 생명에 대해서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망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사망, 죽음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것은 죄에 대해서 살아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났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도 죄에 대해서는 죽은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죄가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라고 명한다. 의롭게 행하고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우리 삶을 내주기 말라고 명한다. 대신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한다. 은혜안에 거하면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복음이란 은혜로 말미암은 생명에 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하여 사는 것이다.

 

 

로마서 5:12-21

복음이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 구원을 받았다,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 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지를 먼저 설명한다.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3:23). 그러니 사망, 죽음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요, 하나님과 연합 (교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단절을 가져온 죄는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있었다. 그러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라고 여기지 않았을 뿐 아담부터 모세까지 사망이 인생의 왕노릇을 하였다.

한편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화평과 구원과 즐거움의 은사는 범죄처럼 사망을 가져오지 않는다.  이 은사는 하나님의 은혜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다. 이 은혜는 사망대신 선물을 많은 사람에게 넘치게 한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다. (요10:10b) 이 선물은 한 사람이 범죄하여 심판을 (유죄 선고를) 받은 것과 달리, 범죄한 많은 사람들을 의롭다고 (무죄라고) 선고한다.

한사람 아담을 통하여 사망이 왕노릇 하였으나 은혜와 은사 (의의 선물)은 한 분 예수 스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이 왕노릇하게 한다. 한 사람의 잘 못이 유죄를 가져왔는데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의롭다고 무죄선고를 받아 생명을 누리게 된다. 한 사람의 잘못은 불순종이요 많은 사람을 유죄판결을 받아 죄인되게 하나, 한 분의 의로운 행위는 순종하심이요 많은 사람을 무죄판결을 받게하여 의인이 되게 한다.

이렇듯 율법이 더해져 무엇이 죄인지 낱낱이 밝혀져서 은혜가 넘치게 필요하게 되었다. 죄는 사망이라는 왕의 종이 되게 한다. 하나님과의 단절이다. 그러나 은혜는 의가 왕이 되게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한다. 영생 풍성한 생명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교제, 영생,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위 (18절)가 나의 주목을 끈다. 행위! 결국 순종이다.

로마서 5:1-11

(어제 ‘믿음=하나님’ 이라고 이해하며 본문을 읽었다. 요즘들어 헬라어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부쩍든다. 35년전 쥬영흠 교수님이 특강때 대학생이면 헬라어로 신약을 읽어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하셨건만…ㅠㅠ)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우리는 ‘하나님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라는 뜻이다. 의롭다고 인정 받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없는 죄인들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여, 의로우신 하나님과 교제(화평)하게 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믿음의) 은혜를 누린다. 이 미쁘신 하나님과의 연합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가 행위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미쁘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 께서 미쁘시니 즐거울 수 밖에 없다.

이 즐거움은 환란이 빼앗아 갈 수 없다. 환난 중에도 미쁘신 하나님과 인내로 연합하게 한다. 인내는 불의와 경건치 않음을 태워 없애는 연단의 과정이다. 연단을 마치면 소망을 이룬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연합을 이룬다.

소망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연합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복음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음을 성령으로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자신의 허물과 죄로 죽어야 마땅한 자들을 위해 성자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 마음에 부어졌다. 의인을 위하여, 선인을 위하여 죽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그것도 우리가 죄인되었을때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9절은 참말로 어렵다.) 우리는 예수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1절과 비교하면 결국 ‘믿음’은 ‘예수의 피’다. 그래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의롭다는 새로운 신분에 합당하게 불의와 경건치 않음의 결과인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한다. 음. 개인적으로는 예수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즉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화목하게되었다. 다른 말로 구원을 받는다.

이게 다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니 (구원을 받았으니) 하나님 (믿음) 안에서 또한 즐거워 한다.

// 구원은 주님과의 연합이요, 믿음과 하나님은 같다.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 한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하나님과의 화평, 화목이다. 환난도 이 즐거움을 빼앗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