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5:7-11

야고보서 5:7-11

재물을 쌓는데 몰두할 것이 아니라 7-8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 농부가 추수 때까지 가을비와 봄비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하듯이.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해야 한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왔다. 9 서로 남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심판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심판주가 가까이 오셨다. 10 성경에는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의 본보기가 있다. 주님의 말씀을 받아 전한 예언자들이 좋은 예다. 11끈기 있게 끝까지 견디어낸 사람들이 행복하다. 욥이 좋은 예다. 이렇듯 주님께서 베푸시는 연민과 자비는 참으로 풍성하다.

야고보서5:7-11
//사람들이 재물을 쌓아두는 이유는 내일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들은 당장 오늘의 끼니 걱정에 내일을 염려할 여유도 없다. 부자들이 내일 일을 염려하여 재물을 쌓는다. 그러나 재물은 썩어질 것이다. 내일을 책임져주지 않은다. //내일을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사람이 씨를 뿌리고 물을 줘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농부가 할 것은 추수 때까지 하늘을 보며 기다리는 것이다. 수확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렸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왔다고 반복해서 언급한다. 마지막 때를 사는 지혜는 부를 쌓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쌓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남을 탓하지 말라고 하신다. 심판은 어차피 주님이 하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남을 탓하지 말고 오히려 세워주어야 한다. //고난을 끈기 있게 견디어 낸 사람들로 예언자들과 욥을 언급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복을 누렸다. 그들이 위대한 일을 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연민(위로)와 풍성한 자비를 입었기 때문에 그들이 행복했던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연민과 자비의 열매다. 이제 우리가 연민과 자비를 베풀어 자비를 입는 복을 영원토록 누려야 한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야고보서 5:1-6

야고보서 5:1-6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 야고보는 1 부자들에게 한 마디 한다. 부자들에게 닥쳐올 비참한 일들을 생가하고 울며 통곡하라고 권한다. 2 부자들의 재물은 썪었고 부자들의 옷은 좀먹어 버렸다. 3 부자들의 금과 은은 녹슬었고 녹슨 금붙이는 부자들의 삶을 삼켜버릴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런데도 부자들은 말세에도 재물을 쌓았다. 4 부자들은 일꾼에게 품삯을 제대로 주지 않고 가로채서 재물을 쌓았다. 일꾼들이 만군의 주님께 고발하는 아우성이 주님께 들렸다. 5 부자들은 사치와 쾌락을 누리느라 일꾼들의 품삯을 가로채고 마음에 욕심을 가득채웠다. 6 재물을 쌓기 위해 죄없는 사람을 단죄하고 그들이 대항하지도 않았는데 죽였다.

야고보서 5:1-6
//부자들에게 행함이 있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마땅히 해야 할 (착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야고보는 일꾼들에게 품삯을 제대로 주는 것이라고 적용한다. //사치와 쾌락을 누리기 위해서 품삯을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니 죄다. //심지어 재물을 쌓기 위해 죄 없는 사람들을 단죄하는 것, 거짓 증언을 하는 것, 뇌물을 받고 재판하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죄를 짓기도 한다. 심지어 부자들은 치부(致富)를 위해 자신들이 저지른 치부(恥部) 를 가리려고 살인도 서슴치 않는다. //우리도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부조리한 때를 살아가고 있다. 이럴 때 투쟁만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한 우리 자신부터 정의롭게 살아내야 한다. 주님께서 심판주로 오실 것을 참고 기다려야 한다. ///많은 부류의 사람들 중에 굳이 부자에게 한 마디 하는 야고보. 그만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예수께 나아왔다가 슬퍼하며 돌아간 부자청년이 좋은 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참고 기다리자. 마라나타! 마지막까지 재물을 쌓다가 죽으면, 재물과 같이 썩어질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면 주님과 같이 높아질 것이다.

야고보서 4:11-17

야고보서 4:11-17

11 서로 헐뜯지 말라고 권한다. 형제를 헐뜯거나 심판/판단하는 사람은 율법을 헐뜯고 율법을 심판하는 사람이다. 율법을 심판하면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심판자가 된다. 12그러나 율법을 만드시고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한분이시다. 그분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도 멸망시키실 수도 있으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심판할 자격이 없다.
13-16 아무 도시로 가서 일 년 동안 장사하여 돈을 벌어보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내일 자신들의 생명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생각이 아니라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이런저런 일을 해보겠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지금 허영에 들떠서 돈을 벌어보겠다고 장담하는데,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일은 모두 악한 것입니다. 17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착한 일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죄가 됩니다.

야고보서4:11-17
//믿음의 행위를 강조하는 야고보는 특별히 성도간의 다툼을 경고한다. 싸움뿐만 아니라 서로를 헐뜯고 판단하는 일도 경계한다. 심판자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잣대로 다른 사람의 구원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믿음의 행위는 나의 계획에 대한 추진력이 아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존재가 아닌가? 인생이라야 짧다. 그것도 안개와 같이 헛되다. 그러므로 자신의 계획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우리의 길을 맡겨야 한다. 모사재인이나 성사재천이다. 스스로의 계획에 집착하는 것은 허영이요 악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착한 일을 해야 한다. 우리가 구해야 할 지혜가 마땅히 해야 할 착한 일을 아는 것이요, 착한 일을 행할 힘과 능력이어야 한다. 이런 지혜/믿음을 구해야 한다. //나의 확신을 믿음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마땅히 행해야 할 착한 일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믿음이 없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없는 것이 죄다. (죄란 단순히 나쁜 짓을 의미하지 않는다. 믿음없이 하는 모든 일은 죄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야고보서 4:1-10

야고보서 4:1-10

1-3 싸움과 분쟁의 원인은 욕정에서 나온다. 욕심을 내다 얻지 못하면 살인하고, 시기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면 싸우고 분쟁을 일으킨다. 하느님께 (지혜)를 구하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 하느님께 (지혜)를 구했는데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욕정을 채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 4-5 절조 없는 사람들! 이 세상과 짝하면 하느님과 등지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 세상의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원수가 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질투하실 만큼 사랑하신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6 성서에는 또 하느님께서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총을 주신다는 말씀도 있다.7 그러므로 하느님께 복종하고 악마를 대항해야 한다. 악마를 대항하면 악마가 우리를 떠나 달아날 것이다. 8 하느님께 가까이 가야한다. 그 만큼 하느님이 우리에게 다가 오신다. 죄인이라면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하고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순결한 마음 가져야 한다. 9 (죄에 대해) 괴로워하고 슬퍼하며 울어야 한다. 웃음을 슬픔으로 기쁨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바꾸어야 한다. 10 주님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어야 한다. 그래야 주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신다.

야고보소 4:1-10
//야고보는 믿음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받은) 지혜를 동일시하며, 한편으로 싸움과 분쟁은 믿음/지혜와 대비 되는 것으로 언급한다. 싸움과 분쟁의 원인을 욕심이라고 하니 결국 욕심이 믿음/지혜의 상대어다. //따라서 하나님께 구해도 얻지 못하는 이유를 욕정으로 구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믿음/지혜 없이 구하는 것이 욕정/욕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간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뜻대로 구한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지혜/뜻대로 구하면, 곧 믿음으로 구하면 당연히 응답받는다. 말씀의 성취이기 때문이다. //욕정을 따라 기도한다면, 그것은 나의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바꾸려는 교만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교만을 싫어하신다. 하나님의 뜻보다 나의 뜻이 앞서는 것은 세상 가치관이 지향하는 바다. 그러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세상과 짝을 짓게 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총을 베푸신다. //세상 욕정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게 된다. 세상 욕정과 멀리할 수록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그 만큼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악마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절조 있는 삶이다. 그러나 우리 맘대로 쉽게 안 되니, 성도라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괴롭고 슬프고 애통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우리가 죄를 씻고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피가 필요하다는 것을 겸손이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께 나가는 유일한 길이 예수다. 예수 안에 거해야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하나님께만 나아갈 수 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과 같이 높여 주신다.

야고보서 3:13-18

야고보서 3:13-18

13 야고보는 믿음과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를 동일시 한다. 꾸짖지 않고 후히 주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온유한 마음과 착한 행실로 드러내야 한다. 14- 16 마음 속에 고약한 시기심과 이기적인 야심이 있어 공연히 잘난 체하고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하늘로부터 지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세속적이며 동물적이며 악마적이어서, 하는 행실도 시기와 이기심으로 공동체를 분란시키고 온갖 더러운 행실을 행하기 마련이다. 17 위에서 내려오는 지혜는 순결하고 평화롭고 점잖고 고분고분하고 자비와 착한 행실을 하며 편견과 위선이 없다. 18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평화를 심어서 정의의 열매를 거둔다.

야고보서3:13-18

//믿음과 하나님으로부터 받음 지혜는 같다. 믿음에 올바른 행함이 따르듯이, 지혜에도 온유한 마음과 착한 행실이 따른다. 따라서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를 대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기와 이기심으로 공동체를 분란시키고 온갖 더러운 행실을 행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의 산물이 아니며 믿음도 아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지혜는 순결하고 평화롭고 점잖고 고분고분하고 자비와 착한 행실을 하며 편견과 위선이 없다고 한다. 야고보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행복하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행복하고,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고,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말씀을 하나님의 지혜라고 적용한 것은 아닐까?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평화를 심어 정의의 열매를 거둔다는 구절에서도 정의를 구원의 열매로 보는 야고보의 시각을 확인하게 된다. ////믿음은 지혜,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드러나야 한다. 가장 확실한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가장 확실한 길도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