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6:1-14

열왕기상 16:1-14

여로보암의 길을 걸은 바아사에게 야훼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예후에게 내렸다. 바아사도 여로보암의 길을 걸어 같은 죄를 짓고 주의 백성을 죄의 길로 인도해 야훼의 분노를 샀다. 따라서 그 결국도 여로보암 가문과 마찬가지라고 하신다. 바아사가 여로보암을 몰살시켰듯이 바아사 가문도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다.
바아사가 죽고 그의 아들 엘라가 왕위를 이었다. 여로보암을 이은 나답이 이년만 다스리고 죽었듯이 엘라도 2년간 다스렸다. 엘라는 신하 가운데 병거의 절반을 지휘하는 지므리라는 장군이 엘라가 술에 취해 있을 때 엘라를 죽이고 왕위에 올라 바아사 가문을 몰살시켰다. 야훼께서 예후에게 하신 말씀의 성취다. 사관은 바아사와 엘라가 죄를 짓고 이스라엘을 죄의 길로 인도하고 우상을 만들어 하느님 야훼의 분노를 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한다.

열왕기상 16:1-14
//여로보암 가문이 몰살 당했다. 여로보암 가문을 몰살한 바아사 가문도 몰살 당했다. 사관은 두 가문 모두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다고 평가한다. 자기들만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백성을 죄의 길도 인도했기 때문이다. 바아사 가문은 심판의 도구로 쓰였지만 그들도 여로보암의 길을 걸었다. //심판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사관은 바아사에 대한 심판의 이유를 7절에서 바아사가 여로보암의 길을 걸었을 뿐만 아니라 여로보암 가문을 몰살시켰기 때문이라고 기록한다. 사관은 5:28에서 여로보암 가문을 몰살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라고 기록했었다. 그렇다면 여로보암 가문을 몰살시킨 것이 왜 바아사 가문에 대한 심판의 이유로 언급될까? 여로보암 가문을 몰살시켰으면서도 여로보암의 길을 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곧 언행불일치랄까? 여로보암 가문을 몰살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여로보암의 길을 가지 말았어야 했다. 몰살시킨 가문의 길을 따랐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말씀의 성취를 빙자한 자기 욕망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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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5:25-34

열왕기상 15:25-34

//선왕 여로보암의 길을 걸은 나답. 여로보암의 길은 하나님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고, 자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죄에 빠지게 하는 악한 길이다. 여로보암의 길은 멸망이다. 진멸이다. 하나님은 바아사로 하여금 나답 왕조에 반기를 들게 하시고, 나답을 치고 여로보암 가문을 씨도 남기지 않고 몰살시킴으로 말씀을 성취하셨다. //바아사는 이스라엘 왕위에 올라 이십사년 간 다스렸다. 바아사도 여로보암의 길을 걸어 이스라엘을 죄에 빠지게 했다. 바아사와 아사 사이에도 전쟁은 계속되었다. //남북이 힘을 합쳐도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기 어려운데, 다툼이 계속된다. 상대방을 이겨서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려는 구도에서는 샬롬(화평)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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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5:16-24

열왕기상 15:16-24

아사와 이스라엘 왕 바아사도 계속 전쟁을 했다.  바아사가 유다를 침략했기 때문이다. 바아사는 유다가 공격하지 못하도록 라마성을  튼튼하게 보수하기 시작했다. 아사는 야훼의 전과 왕실 창고에 남아 있던 은과 금을 모조리 모아 시리아 왕에게 예물로 주고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의 동맹을 파기해서 바아사로 하여금 유다 영토에서 철군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벤하닷은 아사왕의 청을 받아들여 이스라엘을 쳤다. 바아사 왕은 시리아의 침략 소식에 라마성 보수를 중단하고 철수했다. 아사왕은 바아사가 라마성 보수를 위해 준비한 돌과 목재를 옮겨와서 미스바와 베냐민 지방의 게바를 견고한 요새로 만들었다. 아사 왕은 나이 들어 다리에 병이 생겼다.  아사는 죽어 조상 다윗의 성에 있는 묘지에 묻혔다. 아사를 이어 여호사밧이 왕위를 계승했다. 

열왕기상 15:16-24

//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 된 뒤, 남북은 통일 왕국을이루려고 싸웠다. 무력으로 통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북이스라엘의 바아사가 유다를 침략하고 라마성을 보수해 유다의 회복 공격을 방어하려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 신실하다는 평가를 받은 아사 왕이 하나님 대신 시리아에 도움을 구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ㅠㅠ. //아사 왕은 시리아의 도움으로 북이스라엘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지만 발에 병이 나고 말았다. 주님을 떠나 다른데서 도움을 받으면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모사재인이라도 성사재천이기 때문이다. //평생 하나님께 신실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아사도 이처럼 불완전했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 성전에 자신의 재물을 드렸던 아사는 그것을 거두어 시리아 왕에게 예물로 바쳤다. 불완전 한 아사가 우리의 모범이 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 우리 마음에 모셔야 하고 우리가 거해야 할 곳이다.  

열왕기상 15:1-15

열왕기상 15:1-15

아비얌이 르호보암의 왕위를 계승했다. 아비얌은 압살롬의 딸인 마아가의 아들로 삼년을 다스렸다. 아비얌도 르호보암과 같은 죄를 지었다. 야훼 하느님께 신실하지 못했다. 다만 야훼께서는 다윗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의 뒤를 이을 아들을 세워주셨다. 다윗은 헷 사람 우리야 사건을 제외하고는 일생동안 야훼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만을 하였고 야훼의 명을 어기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르호보암은 일생을 마칠 때까지 여로보암과 전쟁하였다.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이어졌다. 아비얌이 죽어 다윗 성에 매장되자 그의 아들 아사가 왕위를 계승했다. 이 때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제 이십년이다.
아사는 예루살렘에서 사십일 년간 다스렸다. 그의 할머니는 압살롬의 딸인 마아가였다. 아사는 조상 다윗을 본받아 야훼께서 보시기에 올바는 일을 했다. 전국적으로 남창들을 소명하고 선왕들이 만든 우상을 없애버렸다. 아사는 할머니가 아세라 여신에게 바치는 음탕한 우상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대비의 자리에서 폐위시키고 그것을 토막내어 불살라 버렸다. 산당은 보존되었지만 아사는 일생동안 야훼께 한결같이 신실했다. 그는 자기 소유의 각종 금은 집기들을 야훼의 전에 바쳤다.

열왕기상 15:1-15

//르호보암과 아비얌은 끝까지 무력 통일을 시도했었다. 두 왕을 특정짓는 구절이 [르호보암은 일생을 마칠 때까지 여로보암과 전쟁하였다. 아비얌과 여로보암 사이에도 전쟁이 있었다] 6,7절이다. 하나님이 동족과 싸우러 올라가지 말라고 하셨건만, 이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잡을 곳이 없었다. //뒤를 이은 아사. 제위 기간이 사십일 년이다. 다윗, 솔로몬까지 통치기간이 사십년이었는데 일년을 더 다스렸다. 하나님 보시기 올바른 일을 한 왕이 누린 복이라고 해야하나. 하여간 상징성이 있는 숫자다. //사관은 아사의 경우 아비얌의 왕위를 계승했다는 표현에 앞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시어 (불순종한) 아비얌을 이을 아들을 주셔서 예루살렘을 거룩한 도성으로 보전시키셨다고 기록한다. 다윗 왕조의 연속성은 이렇듯 말씀/언약의 성취로 이해해야 한다. //아사가 할머니를 폐위시킨 사건은 하나님의 자녀는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여부에 달려 있음을 예시한다. 아사 때 산당이 보존 되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한결같이 신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마음에 말씀을 두고 살아야 한다. 인간적 연약함으로 우리는 우선순위를 둘 수는 있겠지만 하나씩 순종해 나가야 한다. //아사는 자기가 물려받은 재물을 하나님께 돌렸다. 자신의 소유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알았다는 고백적 실천이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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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4:21-31

열왕기상 14:21-31

한편 유다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다스렸다. 르호보암은 사십일 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십 칠년간 다스렸다. 르호보암의 어머니는 나아마라는 암몬 여자였다. 유다 백성도 야훼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다. 선조들보다도 더 큰 죄를 범하여 야훼께 미움을 샀다. 산당을 짓고 돌로 남신을 나무로 여신을 만들어 세웠다. 전국에 남창이 우글거렸다. 야훼께서 쫓아내신 원주민들의 온갖 추악한 폐습을 본받았던 것이다.
르호보암 왕 제 오년에 이집트의 시삭 왕이 예루살렘을 침공해서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가져갔다. 르호보암은 금방패 대신 놋방패를 만들을 왕국을 경비하는 친위대 장교들을 무장시켰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는 전쟁이 그치지 않았다. 르호보암은 세상을 떠나 다윗 성 안에 안장되었다. 그의 아들 아비얌이 왕위를 계승했다.

열왕기상 14:21-31

//르호보암이 즉위할 때 이미 마흔한 살. 그렇다면 르호보암은 솔로몬이 왕이 되기 전에 태어났다. 르호보암의 어미 나아마는 솔로몬의 여인 중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알려졌다. (스바의 여왕도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청년? 솔로몬은 이 암몬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고, 나아마는 조강지처로 (통혼정책으로 데려온) 다른 여자들 위에 군림했을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암몬의 신(밀곰/몰렉)은 인신제사를 받는 신이 아니던가. 솔로몬에게 일천이나 되는 첩과 후궁이 있었음에도 아내 나아마와 아들 르호보암, 딸 둘의 이름 외에는 기록이 없다. 나아마가 다른 여인이 낳은 아이들을 인신제사로 바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가? 이것을 피하기 위해 다른 여인들은 자신들의 자녀를 숨겼을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르호보암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조상들보다 더 악을 행한 것은 어미 나아마의 영향이 컷을 것이다. 솔로몬도, 르호보암도 나아마의 손아귀에서 놀아 났다고 밖에 달리 이해할 수 없다. ㅠㅠ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다’ 라는 카피도 있지 않은가? 사관이 르호보암의 어머니는 나아마이고 암몬여자라고 반복하는 이유다. //솔로몬의 영광이 사라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반세기도 안 되어 이집트 시삭 왕은 금방패를 비롯한 성전과 궁궐의 금붙이를 싹쓸이 해갔다. 르호보암은 남은 놋으로 금방패를 대신해야 했다. 르호보암은 이것을 하나님의 징계로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북 열지파를 잃어 힘이 약해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다스림 없이 국력을 회복하려니 남(르호보암)과 북(여로보암)은 통일왕국의 주도권을 가지고 서로 싸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 진정한 태평성대는 순종함으로 누리는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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