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1:12-20

디모데전서1:12-20(공동번역)

바울로는 자신이 맡은 일, 곧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음을 전하는 직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 감사한다. 주께서 자신을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하셨기에 임무를 맡겨주셨다고 적는다. 비록 자신이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했지만 그것은 믿지 않을 때 모르고 한 일이어서 하느님께서 자신을 자비롭게 대해주셨다고 말한다.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는 바울로에게 은총을 차고 넘치도록 베푸셨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들이 가지는 믿음과 사랑을 바울로에게 풍성하게 주셨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오셨다는 말은 틀림없고 누구나 받아들일 만한 사실이다. 바울로는 자신이 죄인들 중에서 가장 큰 죄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바울로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예수를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사람들에게 바울로를 본보기로 보여주시려고 한량없는 관용을 베푸셨다. [영원한 왕이시며 오직 한 분뿐이시고 눈으로볼 수 없는 불멸의 하느님께서 영원무궁토록 영예와 영광을 받으시길 빕니다. 아멘]

바울로는 사랑하는 디모테오에게 예언의 말씀을 회상하며 명령한다. 예언의 말씀대로 훌륭한 싸움을 싸워라. 믿음과 맑은 양심을 가지고 싸워라. 어떤 사람들은 양심을 저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은 파선 당했다. 히메내오와 알렉산드로가 그런 사람들이다. 바울로는 그들을 출교시켜 그들이 다시는 하느님을 모독하지 않도록 훈련을 받게 했다.

딤전 1:12-20

//성도는 말씀대로 훌륭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믿음과 맑은 양심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믿음과 맑은 양심은 말씀대로 행할 때 맺는 열매라고 생각된다. //양심을 저버리면 믿음도 파선한다. 어떤 시람들은 믿음을 빌미로 양심을 팔기까지 하는데 어불성설이다. 고르반을 외쳤던 바리새인들이 믿음을 빌미로 양심을 판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한다. //성도가 말씀대로, 믿음과 맑은 양심으로 싸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다. (성실성은 둘째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한량없는 관용을 베푸신 것이 좋은 본보기다. 그렇다면 성도는 말씀대로 믿음과 맑은 양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한량없는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믿음이 파선한 사람들은 사탄에게 내어주어, 그들과 더이상 논쟁을 하지 않아야 한다. 사탄에게 내어 주다니. 출교라고 이해한다. 믿음이 파선한 사람들과의 시시비비는 하나님을 모독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디모데전서 1:1-11

디모데전서 1:1-11 (공동번역)

발신자는 우리의 구세주이신 하느님과 우리의 희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바울로다. 수신자는 바울로가 참된 믿음의 아들로 생각하는 디모테오다. 바울로는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를 디모테오에게 내려주시기를 빌며 문안한다.
바울로는 디모테오에게 마케도니아로 떠나면서 간곡히 부탁한 대로 에페소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한다. 에페소에 그릇된 교리를 가르치거나 꾸며낸 이야기, 그리고 끝없은 족보 이야기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이 더러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못하게 하라고 명한다. 그런 일은 쓸데없는 논쟁이나 일으킬 뿐이고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게 해주시는 하느님의 계획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바울로는 그런 일을 금하는 것은 깨끗한 마음과 맑은 양심과 순수한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목적에서 벗어나 길을 잃고 쓸데없는 토론만 일삼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어떤 사람들은 율법교사로 자처하지만 사실은 자기가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아는대로 율법은 정당하게 다루어지기만 하면 좋은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율법은 올바른 사람들을 위해서 제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율법을 어기는 자와 순종하지 않는 자, 불경건한 자와 하느님을 떠난 죄인, 신성을 모독하는 자와 거룩한 것을 속되게 하는 자, 아비나 어미를 죽인 자와 사람을 죽인 자,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 인신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을 하는 자, 위증하는 자와 그 밖에 건전한 교설에 어긋나는 짓을 하는 자들을 다스리기 위해서 율법이 있다고 가르친다. 건전한 교설이란 복되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음에 근거를 둔다. 바울로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음을 전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이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다.

딤전1:4-5
//공동번역으로 딤전 1: 4절 후반과 5절을 연결하면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깨끗한 마음과 맑은 양심과 순수한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개역개정에는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라고 번역한다.) 믿음 안에 있는 것이 곧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요 하나님의 경륜은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계획은 사랑으로 열매 맺는다. 오늘날 떠올리는 (섹스와 연결된) 사랑이 아니라 순수한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다. 사랑의 많은 특성중 이타적/희생적 사랑이다. 흔히 아가페라고 한다. //우리의 구원은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부터 천국시민으로 사는 것이다.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음의 핵심이다. ////2026년 새해! 깨끗한 마음과 맑은 양심과 수수한 믿음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자! 깨끗한 마음/맑은 양심/순수한 믿음 –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뵙게 된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방법은 말씀을 마음에 두고,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를 구하는 수 밖에 없다. 시인(다윗)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새해를 시작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51:10-11] 아멘! ////(송구영신예배/언약갱신예배 한줄 정리) 성도에게 임마누엘은 변함없고 거짓없는 삼위 하나님의 약속이다. 우리가 임마누엘을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가 다른 마음을 품기 때문이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 아멘! 임마누엘!

말라기 3:13-4:6

말라기 3:13-4:6 (공동번역)

하느님을 속이지 않는다고 항변하는 백성들에게 주님은 ‘무엄하다’하고 책망하신다. 그래도 주의 백성은 우리가 못할 말을 했느냐며 따진다. 백성들의 속내는 하느님을 섬겨봐야 쓸데 없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분부를 지켜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만군의 야훼 앞에 베옷을 입고 울어봤지만 무슨 소용이 있었냐고 반문한다. 그들은 살고 싶은 대로 살아야한다고,못된 짓을 해서라도 성공해야 한다고 밀한다. 하느님을 시험하고도 멀쩡히 살아있다고주장한다. 주를 공경하던 백성이 돌이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야훼 하느님이 똑똑히 들었다. 그래도 이런 가운데서도 주를 공경하고 주님의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주님은 주님의 생명책에 적어두고 잊지 않겠다고 하신다. 이런 사람들을 주의 백성으로 삼아 하나님의 자녀로 소중히 여기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과 섬기지 않는 사람의 결국은 다르다.

이제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 멋대로 살던 사람들은 모두 불살라질 것이라고 만군의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주님의 이름이 두려운 줄 알고 살아온 사람들은 고침을 받고 나쁜 자들을 짓밟을 것이다. 그날에 주님이 나서시면 나쁜 자들은 올바른 자들에게 재처럼 짓밟힐 것이라고 만군의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주의 백성은 만군의 야훼께서 호렙산에서 주의 종 모세를 시켜 내린 법과 규정과 계명을 되새겨야 한다. 야훼가 나타날 날, 그 무서운 날을 앞두고 예언자 엘리야를 보내시겠다고 하신다. 엘리야가 어른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 자식들의 마음을 어른들에게 돌려 화목하게 할 것이다. 그래야 주께서 오셔서 세상을 모조리 쳐부수수지 아니하실 것이다.

말3:13-4:6

//구원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이런 착한 사람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나쁜 시람들은 불살라지고 말 것이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의 결국은 극명히 갈린다. 구원과 영벌로 나뉜다. //착한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화목이다.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자녀)이 될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구원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우리도 화목해야 한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우리도 화목의 도구로 쓰이기를 기도해야 한다. 화평(화목)이야말로 주를 공경하고 주의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늘 생명책에 이름을 올리는 길이다.

말라기 2:17-3:12

말라기 2:17-3:12 (공동번역)

17 유다 백성은 말마다 ‘야훼께서 못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야 눈에 들어 귀여워해 주신다’ 하고 또 ‘하느님이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데 그런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야훼의 화를 돋우어 드린다.
3:1 주님은 이제 특사를 보내어 주님의 행차 길을 닦으신다. 주님이 보내시는 특사는 유다가 애타게 기다리는 상전으로 궁궐에 나타날 것이다. 그가 와서 언약을 맺어 주실 것이다. 만군의 주가 말한다. 2 그가 오는 날, 아무도 그를 당할 수도 버틸 수도 없다. 그는 대장간의 불길 같고 빨래터의 잿물 같다. 3-4 그는 풀무질하여 은을 단련하듯 레위 후손을 정결케 하여 레위 후손은 순금과 순은처럼 순수하게 되어 올바른 마음으로 제물을 바치게 될 것이다. 그들이 바치는 제물이 옛날 처럼 만군의 야훼께 기쁨이 될 것이다. 5 만군의 야훼는 너희에게 재판관으로 나타나 점쟁이와 간음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와 하늘 두려운 생각없어 날품팔이, 과부, 고아, 뜨내기의 인권을 짓밟는 자들의 죄를 밝히실 것이다. 6 나는 야훼다. 나는 변하지 않은다. 너희를 여전히 야곱의 후손으로 대접할 것이다. 7 너희는 조상 때부터 내 법규를 지키지 않았다. 이제 나에게로 돌아오너라.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겠다. 만군의 야훼가 말해도 너희는 우리가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하고 묻는다. 8 너희는 나를 속이면서도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을 속일 수 있습니까? 하고 말은 잘한다. 십일조를 바치면서도 그대로 바치지 않으니 야훼를 속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9 천벌을 받을 것들아 너희 백성은 모두 나를 속이고 있다. 10 십일조는 정확히 바쳐라. 정확이 바치고 나서 야훼가 하늘 창고의 문을 열고 갚아주시는지 두고 보아라. 만군의 야훼가 말씀하신다. 11-12 십일조를 정확히 드릴 때 야훼는 농사를 망치는 일이 없게 하실 것이라다. 너희가 사는 땅이 낙원이 되어 뭇 민족이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 만군의 야훼의 말씀이다.

말 2:17-3:12
//하나님에 대해 바로 알아야 한다.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공변의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오히려 악인을 흥하게 하신다고 말했다. 이런 유다 사람들에게 주님은 특사를 보내신다고 말씀하신다. 특사는 먼저 불과 잿물로 죄를 씻으신다. 이 불과 잿물로 깨끗하게 된 사람들은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재판관으로 임하신다. 점쟁이와 간음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와 하늘 두려운 생각없어 날품팔이, 과부, 고아, 뜨내기의 인권을 짓밟는 자들의 죄를 밝히실 것이다. 이들은 심판을 면할 수 없다. 이들은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십일조도 속인다. 그러나 속이지 않고 정확한 십일조를 드려야 오히려 농사도 망치지 않고 땅도 낙원이 되어 뭇 민족들의 부러움을 사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사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우리의 처지에 따라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잣대는 변함이 없다. 나 개인의 입장이 아니라 우리 (교회) 공동체의 입장에서 세상을 봐야 한다. 우리에게는 특사보다 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오셔서 함께 하시지 않는가? 주님도 임마누엘을 기뻐하신다. 우리의 정확한 십일조는 공동체를 풍성하게 한다. 정확하지 않은 십일조, 곧 속이는 것은 날품팔이, 과부, 고아, 뜨내기의 인권을 짓밟는 죄다. 단순히 소득의 십일조를 정직하게 드린다고 끝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일에 우리 마음이 정직해야 한다. 임마누엘!

말라기 2:10-16

말라기 2:10-16 (공동번역)

10-12 우리의 조상은 한 분이고 우리의 하느님도 한 분인데, 어찌하여 우리는 서로 배신하여 우리 조상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깨뜨리느냐?  유다는 야훼를 배신하고 이스라엘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역겨운 짓을 했다. 유다는 남의 나라 신을 섬기는 여자를 좋아하여 아내로 맞았다. 이것은 하느님의 성소를 더럽히는 짓이다. 멀쩡한 정신으로 하느님의 성소를 더럽히는  것들은 만군의 야훼께 제물을 바치지 못하도록 야곱의 천막에서 쫓겨나야 한다. 13-16너희는 야훼께서 제물을 받아주시지도 않고 너희들을 굽어보시지도 않는다며 울고불고 눈물로 야훼께 나아가, 왜 이러시느냐고 묻는다. 그 까닭은 너희가 배반한 조강지처, 약혼한 아내, 너의 짝이 야훼께 고발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후손을 주시려고 짝지어 주셨는데 변심하여 조강지처를 버렸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는 조강지처가 싫어져서 내쫓는 것은 자기 옷을 찢는 것과 같다고 하신다. 그런 자들을 미워하신다. 그러니 변심하여 조강지처를 버리지 않도록 하라고 만군의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말라기 2:10-12
// 10-12절에서 유다의 죄는 이방과의 통혼이다. 통혼은 배우자 나라의 신을 섬겨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기 때문이다. 통혼은 하나님 앞에서 민족적으로 맹세한 언약에 대한 변심의 결과다. 단순히 다른 민족의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은 이방 여인들 라합과 룻의 혈통에서 나셨다. 문제는 통혼으로 하나님보다 다른 나라 신을 좋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바울은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하고 마음이 갈라져서 배우자를 어떻게 기쁘게 할까 염려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말한다. (물론 불신자와의 결혼이 그들을 구원할 통로가 될 수 도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 끼리 결혼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결혼할 수 있도록 저희 부부가 본을 잘 보일 수 있게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