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16-21

요한복음 6:16-21 (공동번역)

군중들이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고 하자 예수께서는 혼자서 산으로 피하였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 가파르나움으로 배를 타고 가라고 먼저 보내셨다. 예수께서는 밤늦도록 제자들에게 돌아오지 않으셨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고 있었다.
거센 바람이 불고 바다 물결은 사나워졌다. 제자들이 배를 저어 십여리쯤 갔을 때 예수께서 물 위로 걸어서 배 있는 쪽으로 다가오셨다.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은 겁에 질렸다. 예수께서 ‘나다 두려워 할 것 없다’ 하시자 제자들은 예수를 배 안으로 모시려고 했다. 그러나 배는 어느새 목적지에 닿았다.

요6:16-21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서 오시는 기적을 기록한다. 요한은 제자들이 겁에 질린 이유를 거센 풍랑 때문이라고 기록하지는 않는다. 대신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를 보고 겁에 질렸다고 기록한다. 특이하게 요한은 예수께서 거센 풍랑을 잠잠케 하셨다는 기록을 더하지 않는다. 외부 환경은 중요하지 않다. 예수와 함께 하는 것이 평안이다. 제자들은 예수와 함께 목적지에 도착했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주님 없이 거센 풍랑 가운데 노저어 가는 배와 같다. 그런데 임마누엘을 누리지 못하니 우리가 죽게 되었다며 주님을 찾지도 않는다. 20세기 마지막에 한국교회와 동행하셨던 주님이, 지금은 혼자 기도하러 가신 것 같다. 그러나 주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리고 우리 앞에 드러내신다. 그 때 우리의 반응이 오늘 본문의 제자들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아 심히 마음이 아프다. //우리 인생 길이, 한국 교회의 운명이 주님이 태워 보내주신 배이니 그 길에 거센 풍랑이 있다고 해도 크게 겁먹을 일은 아닌게 맞다. 그러나 제자들이 물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놀랐다는 것은 그들이 여전히 주님을 모르기 때문이듯, 망해가는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주님의 책망을 외면하고 겁에 질리기만 한다면 이 또한 우리가 주님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를 푸른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그러나 가는 길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주님이 우리와 동행해 주신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에 우리가 놀랄서는 안 된다. 주께서 지팡이와 막대기를 사용하여 우리를 안위하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 오시는 기적은 믿음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1:2)

요한복음 6:1-15

요한복음 6:1-15 (공동번역)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다.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기적을 보았던 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예수를 따라갔다. 예수께서 산등성이에 오르셔서 제자들과 함께 자리잡고 앉으셨다. 유다인들의 명절인 과월절이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예수께서 필립보에게 군중들을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사올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실 일을 이미 마음속에 작정하셨지만 필립보의 속을 떠보려고 질문하셨다. 필립보는 군중들을 모두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 어치를 사온다 해도 모자라겠다고 대답했다. 제자중의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는 웬 아이가 보리빵 다섯개와 작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되겠느냐고 예수께 반문했다.
예수께서 군중을 앉히라고 분부하셨다. 그곳에는 남자만 약 오천명이나 되었다. 예수께서는 손에 빵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후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달라는 대로 나누어주시고, 다시 물고기도 그와같이 하여 나누어 주셨다.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 난 뒤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조금도 버리지 말고 남은 조각을 다 모아들이라고 명하셨다. 그래서 보리빵 다섯개를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제자들이 모았더니 모두 열두 광주리에 가득찼다. 예수께서 베푸신 기적을 보고 사람들은 이분이야말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예언자이시다 하고 저마다 말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달려들어 억지로라도 왕으로 모시려는 낌새를 알아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피해 가셨다.

요6:1-15
//오병이어! 광야 사십년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신 하나님께는 오병이어는 식은죽 먹기보다 쉬운 기적이다. 따라서 이것이 어떻게 행해졌는지 추론하는 것은 넌센스다. //오병이어를 왜 행하셨는지가 중요하다. 요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그래서 보는 이로하여금 믿게 하도록 이적을 기록해 왔다. //이 관점에서 오병이어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 물이 포도주로 바뀐 가나 혼인잔치에서는 제자들이 믿게 되었다. 가버나움 고관의 아들을 고치신 기적에서는 고관과 고관의 온 가족이 믿게 되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는 군중들이 예수를 세상에 오시기로 된 예언자라고 저마다 수군거렸지만 그들이 믿게 되었다는 표현이 없다. 군중들은 다만 예수를 억지로라도 왕으로 모시려고 했을 뿐이다. //우리들도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봐야 한다. 왜보다 어떻게 행하셨는지에 집착하면 믿음을 저버리기 쉽다. //그래도 오병이어 교훈을 살펴본다면…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을 열두 광주리나 거두었다고 한다. 제자들이 한 광주리씩 남겼다는 것이다. 엘리야를 공양한 사르밧 과부의 밀가루와 기름병이 마르지 않은 것과 같이 제자들이 음식을 담아 나눠준 광주리가 비지 않고 오히려 채워졌다. 오병이어는 내 욕심을 위해, 혹은 내일을 위해 내 광주리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아무리 작아(적어)도 내 광주리를 타인을 위해 내놓고 비울 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어릴 때 자주 듣던 콩 반(한)쪽도 나눠먹는다는 속담이 그리운 아침이다.

요한복음 5:30-47

요한복음 5:30-47 (공동번역)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무슨 일이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저 하느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이기 때문에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나의 일을 내 입으로 증언한다면 그것은 참된 증언이 못된다.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이가 따로 있으니 그의 증언은 분명히 참되다.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냈을 때에 요한은 진리를 증언했다. 나에게는 사람의 증언이 소용없으나 다만 너희의 구원을 위해서 이 말을 하는 것이다. 요한은 환하게 타오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 때 그 빛을 보고 대단히 좋아했다. 그런데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훨씬 더 나은 증언이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성취하라고 맡겨주신 일인데 그것이 바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증거가 된다.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해주셨다. 너희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은 적도 없고 모습을 본 일도 없다. 더구나 아버지께서 보내신 이를 믿지 않으므로 마음속에 아버지의 말씀이 들어있지 않다. 너희는 성서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알고 파고들거니와 그 성서는 바로 나를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에게서 찬양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지만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 딴 사람이 자기 이름을 내세우고 온다면 너희는 그를 맞아들일 것이다. 너희는 서로 영광을 주고받으면서도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광은 바라지 않으니 어떻게 나를 믿을 수가 있겠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발할 사람은 오히려 너희가 희망을 걸어온 모세다. 만일 너희가 모세를 믿는다면 나를 믿을 것이다. 모세가 기록한 것은 바로 나에게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모세의 글도 믿지 않으니 어떻게 내 말을 믿겠느냐?]

요5:30-47
//마지막날 주님은 선한 일을 한 사람은 무죄(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한 사람은 유죄(심판의 부활)로 심판하신다. 이 심판자가 예수시다.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심판하신다. 예수께서 선한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시라고 하셨으니 선한 일을 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한 사람들이다. 악한 일을 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한 사람들이다. //예수께서 참 된 구원자(선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로 심판자(악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로 오셨음을 세례자 요한이 증언하고, 하나님 자신이 이 일에 증인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를 통해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가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셨음을 증언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이것을 믿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기 때문이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삼가 행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이신 예수보다 자기들끼리 서로의 영광만 주고 받는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자일 뿐이지 바른 신앙인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가?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가?

요한복음 5:17-29

요한복음 5:17-29 (공동번역)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일하시는 예수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예수를 죽이려는 마음을 더욱 굳혔다. 예수께서 안식일법을 어기셨고 하느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하시며 자기를 하느님과 같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아들은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할 뿐이지 무슨 일이나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할 따름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친히 하시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보여주신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을 시켜 이보다 더 큰일도 보여주실 것이다. 그것을 보면 너희는 놀랄 것이다.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듯이 아들도 살리고 싶은 사람들은 살릴 것이다. 또한 아버지게서는 친히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 권한을 모두 아들에게 맡기셔서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존경하듯이 아들도 존경하게 하셨다. 아들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존경하지 않는다. 내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의 세계로 들어섰다. 때가 오면 죽은 이들이 하느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것이며 그 음성을 들은 이들은 살아날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 때다. 아버지께서 생명의 근원이신 것처럼 아들도 생명의 근원이 되게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다. 그는 사람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내 말에 놀라지 마라. 죽은 이들이 모두 그의 음성을 듣고 무덤에서나올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오면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고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단죄를 받게 될 것이다.’

요5:17-29
//요5:29 공동번역 – 그 때가 오면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고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단죄를 받게 될 것이다. 개역개정-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선한 일은 그냥 착한 일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오직 한 분 하나님만 선하시다고 하셨다. 따라서 선한 일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일이다. 좀 더 쉽게 풀어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다. 반대로 악한 일이란 그냥 나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일이다.
//안식일에 대해 적용하자. 안식일에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따라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안식일 규정을 어겨도 된다. 안식일 규정을 지킨다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등한시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선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악한 일이 된다.
//선한 일이냐 악한 일이냐를 판단하시는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아버지 하나님은 그 권세를 아들 예수님께 주셨다. 예수께서 심판하신다. 우리 생각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심판)은 주님께 맡겨야 한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에 순종) 하면 된다.
//어제 말씀처럼 그날에 주님은 우리가 행한대로 판단하실 것이다. 그날에 할 말이 있어야 한다. 생명의 부활로 나가기 위해서는 예수밖에는 다른 분이 없다. 예수 안에 거해야 한다.

요한복음 5:1-16

요한복음 5:1-16 (공동번역)

유다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예루살렘 양의 문 곁에 베짜타라는 못이 있었다. 그 둘레에는 행각이 다섯이 있었다. 이 행각에는 수 많은 병자들이 누워 못의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을 휘젓곤 했는데 물이 움직일 때 맨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다 나았기 때문이다.) 병자들 중 삼십팔년이나 앓고 있는 병자가 있었다. 예수께서 그에게 낫기를 원하는지 물으셨다. 병자는 낫기를 원하지만 물이 움직일 때 자신을 물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혼자 가는 동안 딴 사람이 먼저 못에 들어간다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일어나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라고 명하셨다. 그 사람은 어느새 병이 나아서 요를 걷어들고 걸어갔다. 그 날은 마침 안식일이었다.
유다인들은 병이 나은 사람에게 안식일에 요를 들고 가서는 안 된다고 나무랐다. 그 사람은 자신을 고쳐주신 분이 요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하셨다고 대꾸했다. 유다인들은 요를 들고 걸어가라고 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누가 자신을 낫게 했는지 알 수 없었고, 예수께서는 이미 군중들 사이로 사라지셨다. 얼마 뒤에 예수게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병이 말끔히 나았으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고 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더욱 흉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유다인들에게 가서 자기 병을 고쳐주신 분이 예수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유다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이런 일을 하신다하여 박해하기 시작했다.

요5:1-16
//안식일! 출애굽기 십계명에서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기록하고 신명기에서는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고 기록한다. 기억하는 가장좋은 방법은 지키는 것이다. 지킬려면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출애굽기와 신명기의 안식일 준수는 목적이 다르다. 출애굽기는 창조후 안식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함이고, 신명기는 출애굽으로 노예에서 해방된 것을 지키기 위함이다. //출애굽기와 신명기는 역사적으로는 40년 차이가 나지만, 기록연대로는 200년 이상 최대 400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 신명기 기록연대와 예수님 때와는 또 700년 이상 차이가 난다. 안식일에 대한 적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예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는) 죄에서의 해방을 안식일 자체보다 우선시 한다. 안식일 규정 준수보다 메시아적 역할수행이 우선이다. 삼십팔년 된 병자를 고치시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다. //유대인들은 메시아적 역할, 곧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안식일에 관한 율법준수에 목을 맸다. 출애굽기의 창조후 안식도 신명기의 노예에서의 해방도 잊어버리고 안식일 준수만 고집했다.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한 날인데, 하나님은 쏙빼버리고 그냥 지켜야할 날로 만들었다. //주일은 안식일인가? 주일은 유대인들이 지키는 안식일이 (그들은 오늘날에도 지킨다.) 아니다. 주일은 창조주 하나님의 안식과 죄로부터의 구원과 구원자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는 날이다. 그렇다고 율법적으로 준수해야 할 날은 아니다. 오늘날과 같은 주일성수 개념은 5세기가 되어서야 확정되기 시작했다. 6세기 오를레앙 공의회 결정사항에 따르면 주일에 말을 타거나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명시함으로 주일이 구약의 안식일과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이런 역사를 알았다면 주일에 버스타고 교회가는 것에 대해 좀 더 자유롭지 않았을까? //주일에 안식도 해야 하지만 주일이 안식일은 아니다. 안식일을 대체하는 날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공동체적으로 예수의 부활에 참여하는 날이라고 적용한다….//베데스다 연못에 대한 단상이 빠졌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 항상 물이 동하면 모든 병자들이 손잡고 동시에 뛰어들면 어땠을까 상상하곤 한다. 물이 동할 때까지 기다리고 인내한 모든 병자들이 함께 나음을 입지 않았을까? 그러나 세상은 경쟁을 부추긴다. 동병상련은 없다. 오직 일등만 살아남는다고 가르친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