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6:22-36

출애굽기 16:22-36 (공동번역)

여섯째 날에는 일인당 두 오멜씩 이틀 분을 거두어들였다. 회중의 모든 대표들이 모세 앞에 나와 이 일을 알리자, 모세가 이렇게 말하였다. “아훼께서 하신 말씀이다. 내일은 모두 쉬어야 하는 야훼의 거룩한 안식일이니, 굽고 싶은 대로 굽고 끓일 만큼 끓이도록 하여라. 그리고 남은 것은 아침까지 남겨두어라.” 그들은 모세의 명령대로 그것을 아침까지 남겨 두었으나 쉬지도 않고 구더기도 생기지 않았다. 모세가 말하였다. “오늘은 이것을 먹어라. 오늘은 야훼의 안식일이니 오늘만은 들에 그것이 없을 것이다. 엿새 동안은 거두어들일 것이 있겠지마는 이레째는 안식일이니, 이 날에는 거두어들일 것이 없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레째 되는 날에도 거두어들이려고 나가 찾아보았다. 그러나 있을리가 없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언제까지 나의 명령과 지시를 다르지 않으려느냐? 야훼께서 너희에게 안식일을 주었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그래서 여섯째 날에는 이틀 먹을 양식을 주지 않았느냐? 이레째 되는 날에는 누구든지 밖으로 나가지 말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라.” 그래서 백성들은 이레째 되는 날은 쉬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것을 만나라고 이름지어 불렀다. 그것은 고수씨같이 희고 맛은 벌꿀과자 같았다. 모세가 말하였다. “아훼의 명령이시다. 이것을 한 오멜씩 가득담아 대대로 보관하여 내가 이집트에서 너희를 이끌어낼 때에 광야에서 먹여 살린 양식이 이런 것이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도록 하여라.”그리고 나서 모세는 아론에게 말하였다. “단지 하나를 가져다가 만나 한 오멜을 담아서대대로 야훼 앞에 보관해 두도록 하시오.” 아론은 야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만나를 증거판 앞에 놓아 보관하게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정착지에 이르기까지 사십년 동안 만나를 먹었다.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만나를 먹었다. 한 오멜은 십분의 일 에바이다.

출16:22-36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까지 광야에서 사십년 동안 만나를 먹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평생 먹어야 한다. 아니 영원히 먹어야 한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천국, 곧 하나님나라니 생명의 양식인 말씀이 중단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하고 선언했으며, 예수께서는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을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말씀하셨다. 성도는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만나는 안식일과 증거판 (십계명 돌판) 보다 앞서 주어졌다. 법이 밥보다 앞설 수 없다. 율법이 사랑보다 앞설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하지 않을까? 하나님은 안식일을 통하여 만나 거두는 것을 통제하시는 것이 아니라, 만나 거두는 것을 통하여 안식일(법)을 가르치신다. 성도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웃을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사랑을 통하여 복음을 전해야 한다. 만나(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증거판은 함께 보관되었다. 사랑과 복음전파도 함께 가야한다. 그러나 복음의 교리가 사랑보다 반 발이라도 앞서서는 안 된다. 사랑으로 시작하고 사랑으로 마쳐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출애굽기 16:1-21

출애굽기 16:1-21 (공동번역)

이스라엘 백성 온 회중은 엘림을 떠나 엘림과 시나이 산 사이에 있는 씬 광야에 이르렀다. 이집트를 떠난 지 한 달째 되는 보름날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온 회중은 이 광야에서 또 모세와 아론에게 투덜거였다.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 야훼의 손에 맞아 죽느니만 못하다. 너희는 거기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우리를 이 광야로 데리고 나와 모조리 굶겨 죽일 작정이냐?” 그러자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먹을 것을 내려줄 터이니, 백성들은 날마다 나가서 하루 먹을 것만 거두어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이 백성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해 보리라. 여섯째 날 거두어들인 것으로 음식을 차려보면 다른 날 거두어들인 것의 곱절이 되리라.” 모세와 아론은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였다. “저녁에는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너희를 이끌어내신 분이 야훼임을 알게 되리라. 그리고 아침이 되면 야훼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 야훼께서는 너희가 당신께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셨다. 우리가 무엇이라고 너희는 우리에게 불평하느냐?” 모세는 말을 계속하였다. “야훼께서 저녁에는 먹을 고기를 주시고 아침에는 배불리 먹을 빵을 주신다. 야훼께서 당신께 불평하는 너희의 소리를 들으셨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이냐? 너희가 하는 불평은 우리에게가 아니라, 야훼께 하는 것이다.”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백성 온 회중에게 일러주시오. 야훼께서 그들의 불평을 들어주셨으니, 모두들 그의 앞으로 나오라고 해주시오.”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 온 회중에게 말하고 있을 때 그들이 광야 쪽을 바라보니, 야훼의 영광이 구름 가운데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너는 그들에게, ‘해거름에 고기를 먹고 아침에 떡을 실컷 먹고 나서야 너희는 나 야훼가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되리라.’ 하고 일러주어라.”
저녁 때가 되자 난데없이 메추라기가 날아와 그들이 진을 친 곳을 뒤덮었다. 아침에는진 둘레에 안개가 자욱하였다. 안개가 걷힌 뒤에 보니 광야 지면에 마치 흰 서리가 땅을 덮듯이, 가는 싸라기 같은 것이 덮여 있었다.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 “이게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야훼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시는 양식이다. 야훼의 명령이니 저마다 먹을 만큼씩 거두어들여라. 한 사람에 한 오멜씩 식구 수대로 거두어 들이면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키는 대로 하였다. 많이 거두어들이는 사람도 있었고 덜 거두어들이는 사람도 있었으나, 오멜로 되어 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결국 저마다 먹을 만큼씩 거두어들였던 것이다. 모세는 그들에게 먹고 남은 것은 그 다음날을 위하여 남겨두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런데 모세의 말을 듣지 않은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이튿날 아침, 그들이 남겨둔 것에서 구더기가 끓고 썩는 냄새가 났다. 모세는 그들에게 몹시 화를 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침마다 먹을 만큼씩만 거두어들였고, 그 나머지는 햇볕에 녹아버렸다.

출16:1-21
//샘이 있고 종려나무가 있는 엘림을 떠났다. 엘림이 살기 좋아도 약속의 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길을 떠나야 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움직였다.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탄탄대로가 아니다. 광야의 길이다. 성도의 삶도 탄탄대로가 아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길은 광야와도 같다. 시험이 많다. //출애굽한지 한 달이 지났다. 출애굽 후 무교경만 먹었을까? 이스라엘 백성은 무교병에 질렸던지, 아니면 무교병마저 다 떨어졌던지 먹을 것을 달라고 불평했다. 어쩌면 우리 문화로 하면 중노동후에 먹던 삼겹살과 소주가 그리운 것이다. 불평을 들으신 하나님은 메추라기와 만나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신다. 그렇다고 그들의 탐욕과 배부름만을 채워주시기 위해서는 아니다. 출애굽의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다. 불평에 교훈으로 답해주셨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일용할 양식! 탐욕적이고 배불리 먹을 양식을 구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이 역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알라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신 것이다. 우리를 위하여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는 것은 나의 내일을 위하여 오늘 내 것을 남기지 않음을 의미한다. 공동체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여 내 것을 공동체를 필요에 따라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줄 안다면 내일을 위해 내 것을 고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각자 먹을 만큼만 거두면 된다. 굳이 더 거두어야 한다면 그것은 거둘 힘이 없는 사람 대신 거두어 그사람에게 갖다주기 위해서여야 한다. 나의 필요가 아니라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신다. 나아가 성도는 육의 양식으로만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친히 자신이 생명의 양식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글을 읽는다면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기도해야 할 만큼 어려운 사람은 아니다. 일용할 양식을 나눠야 할 사람들이다.

출애굽기 15:22-27

출애굽기 15:22-27 (공동번역 필타)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거느리고 홍해에서 수르 광야로 진을 옮겼다. 그들은 사흘동안 가면서도 물을 만나지 못하다가 마라에 다다랐으나 그곳 물은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고장을 마라라고 불렀다. 백성들은 모세에게 , 무엇을 마시라는 말이냐고 하면서 투덜거렸다. 모세가 야훼께 부르짖자, 야훼께서 나무 한 그루를 보여주셨다. 그 나무를 물에 던지니 단 물이 되었다. 야훼께서 바로 여기에서 드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부시고 그들을 시험해 보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너 이스라엘이 너희 하느님 야훼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그가 보기에 바르게 살며 그 명령을 귀에 담아 모든 규칙을 지키면 , 이집트인들에게 내렸던 어떤 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아니하리라. 나는 야훼, 너희를 치료하는 의사이다.” 그들은 샘이 열두 개 있고 종려나무가 일흔 그루 서 있는 엘림에 이르러 거기 물가에 진을 쳤다.

출15:22-27
//모세는 마라의 쓴 물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나무를 던져넣어 단물로 바꾸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게 살며 하나님의 명령을 귀에 담아 지키면 이집트인들에게 내렸던 어떤 병도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바르게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경청하여 순종하는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다. 홍해를 앞에 두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바다를 향해 지팡이를 뻗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쓴 물에 나무를 넣는 것도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순종하기 어렵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면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께는 쓴물을 단물로 바꾸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는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다. 그러나 순종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쓰고 쓴 내 마음에 말씀의 나무조각을 넣어준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음에 감사하게 된다. 치료중의 치료는 마음의 치료가 아닐까 한다. 여호와 라파!
//엘림. 샘이 열두개고 종려나무가 일흔 그루서 있는 곳이라고 한다. 장정만 60만이 넘는데 무슨 소용인가 싶다. 그러나 문자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샘이 열두개라고 했으니 열두지파가 다툼없이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이었으며, 일흔 그루의 종려나무도 일흔은 일곱이라는 완전수에 열이라는 완전수를 곱한 수이니 온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잠시 머물기에 완전한 곳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기록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약속의 땅은 아니다.

출애굽기 15:1-21

출애굽기 15:1-21 (공동번역 필타)

그제서야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러 야훼를 찬양하였다. “나는 야훼를 찬양하련다. 그지없이 높으신 분. 기마와 기병을 바다에 처넣으셨다. 야훼는 힘있게 나를 붙드시어 나를 살려주셨다. 내 하느님이시니 어찌 찬양하지 않으랴. 나의 선조의 하느님이시니 어찌 우러르지 않으랴. 야훼는 용사, 그 이름 야훼이시다. 파라오의 병거와 군대를 바다에 처넣으시니 빼어난 장교들이 홍해에 빠지더라. 깊은 바다가 덮치니, 깊은 물 속에 돌처럼 잠기더라. 야훼여, 당신의 오른손이 힘차 영광스럽습니다. 불타는 분노로 당신은 원수를 검불처럼 살라버리셨습니다. 당신의 세찬 콧김에 바닷물이 쌓였고 물결은 둑처럼 일어셨으며 바다 속 깊은데서물이 엉겼습니다. 원수는 장담하였습니다. ‘내가 그들을 따라잡아 약탈하고 내 욕망을 채우리라. 칼을 뽑아들고 이 손으로 쳐부수리라.’ 그러나 당신께서 바람을 일으키시자 바다가 그들을 덮어버렸습니다. 모두들 거센 물결 속에 납덩이처럼 잠겼습니다. 야훼여, 신들 중에 당신 같은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가 당신처럼 거룩하며 영광스럽겠습니까? 당신게서 해내신 놀라운 일에 모두들 두려워 떨며 찬양을 드립니다. 당신께서 오른팔을 뻗으시니 땅이 그들을 삼켰습니다. 당신께서 손수 건지신 이 배성. , 당신은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고, 힘있는 손으로 그들을 당신의 성소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 소식을 듣고 만방이 술렁거립니다. 블레셋 주민은 겁에 질리고, 에돔의 두목들은 놀라고, 모압의 권력가들은 떨며, 가나안 주민들은 모두들 기가 죽었습니다. 덮쳐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야훼, 당신의 백성이 지나가기까지 당신께서 불러내신 백성이 지나가기까지 모두들 당신의 억센 팔을 보고 돌처럼 말문이 막혔습니다. 당신께서는 그들을 데려다가 당신의 산 위에 심으십니다. 야훼여, 이 곳이 바로 당신께서 계시려고 마련하신 곳, 주여, 당신께서 손수 지으신 성소가 아닙니까? 야훼만이 영원히 다스리실 왕이시어라. 파라오의 말들은 결국 기병을 태운 병거를 끌고 바다 속에 잠겨버렸다. 야훼께서는 그들 위에 바닷물을 덮으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고 건넜다. 아론의 누이요 여예언자인 미리암이 소구를 들고 나서자, 여자들은 모두 소구를 들고 나와 그를 따르며 춤을 추었다. 미리암이노래를 메겼다. “야훼를 찬양하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기마와 기병을 바다에 처넣으셨다. .”

출15:1-21
//모세와 백성이 부른 노래와 미림엄과 여자들이 소고치며 부른 노래의 핵심은 같다. “그지없이 높으신 분, 여호와를 찬양하라. 하나님께서 기마와 기병을 바다에 처넣으셨다.”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움에 떨게했던 이집트 병거와 기병들은 그지 없이 높으신 하나님 앞에서는 오합지졸만도 못하다. 세상의 강자들도 약자들을 약탈해서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겠다고 칼을 갈아 날을 세우지만, 마지막 날에는 수장되고 말 존재들이다. 따라서 우리들의 무기도 총칼같은 무력이 아니다. 오직 그지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이어야 한다. 이 세상에는 여전히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것들을 무너뜨리고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다스림보다 재력과 권력과 명예와 건강이라는 세상이 자랑하는 병거와 기병이 우리를 사로잡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도에게는 세상 조류를 거스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능력이다. “그지없이 높으신 분,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나님께서 기마와 병거를 바다에 처넣으셨다.” 우리도 불러야할 노래다.

출애굽기 14:15-31

출애굽기 14:15-31 (공동번역 필타)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나에게 부르짖기만 하느냐?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진하라고 명령하여라. 너는 너의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팔을 뻗쳐 물을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건너가게 하여라. 나는 이집트인들의 마음이 굳어지게 하리라. 그리하여 그들이 너희를 뒤따라 들어서게 되면 내가 파라오와 그의 모든 군대와 병거와 기병을 쳐서 영광을 드러내리라. 내가 파라오와 그의 병거와 기병들을 쳐 나의 영광을 드러내면, 이집트인들이 비로소 내가 야훼임을 알게 되리라.” 이스라엘을 앞서 인도하던 하느님의 천사가 뒤로 돌아가 호위하자 그들 앞에 서 있는 구름 기둥도 뒤로 돌아가 이집트의 진과 이스라엘의 진 사이에 섰다. 그러자 구름 때문에 캄캄해져서 서로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밤을 새웠다. 모세사 팔을 바다로 뻗치자. 야훼께서 는 밤새도록 거친 바람을 일으켜 바닷물을 뒤로 밀어붙여 바다를 말리셨다. 바다가 갈라지자 이스라엘 백성은 바라 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고 걸어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주었다. 이집트인들이 뒤쫓아왔다. 파라오의 말과 병거와 기병이모두 그들을 따라 바다로 들어섰다. 새벽녘에 야훼께서 불과 구름기둥에서 이집트 군대를 내려다보시자 이집트 군대는 갈팡질팡하였다. 또한 야훼께서 그들의 병거 바퀴들을 얽어놓아 꼼짝도 못하게 하셨다. 그러자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버려두고 도망가자. 야훼께서 이스라엘 사람들 편이 되어 우리 이집트 군대를치신다.” 하고 소리쳤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이집트인들과 그들의병거와 기병들 위에 물이 도로 덮이게 네 팔을 바다 위로 뻗쳐라.” 모세는 팔을 바다 위로 뻗쳤다. 날이 새자 바닷물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집트인들은 물결을 무릎쓰고 도망치려고했으나, 야훼께서 이집트인들을 바다 속에 처넣으셨다. 물결이 도로 밀려오며 병거와 기병을 모두 삼켜버렸다. 이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 바다에 들어셨던 파라오의 군대는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고 건너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 그날, 야훼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을 이집트 군대로부터 건지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인들이 해변에서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훼께서 그 큰 팔을 펴시어 이집트인들을 치시는 것을 보고 야훼를 두려워하며 야훼와 그의 종 모세를 믿게 되었다.

출14:15-31
//신호등과 수신호. 신호등과 수신호의 우선순위는 수신호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신호등과 같다. 수신호가 없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이동하면 되었다. 그런데 이집트 파라오의 병거와 군대가 뒤쫓아오는 지금,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 백성 따라가야할 신호등이 아니다. 지금은 모세의 수신호에 따라가야 한다. 대신 구름기둥과 불기둥 신호등은 이집트 병거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성도는 이미 통과한 신호등을 뒤돌아 볼 필요가 없다. 앞에 있는 수신호를 잘 따라가면 된다. //물론 우리 인생의 신호등과 수신호는 말씀이다. 시인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노래했다. 인생길에도 때로는 빨간불이 있다. 항상 파란불이면 좋으련만 그럴 수는 없다. 다른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빨간불에 걸렸을 때는 다른 사람들이 안전하게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인내해야 한다. 짜증내어도 소용이 없다. 내가 가는 길이 파란불이라면 빨간불에 잠시 멈춰 있는 이웃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어쩌다 홍해가 갈라지듯 주님이 사이드카를 타시고 신호등을 무시하고 우리를 인도해주시는 날이 인생에 한 두 번 있다면 그거야 말로 아주 특별한 날이다. 그보다는 ‘공사중 우회하시오’, ‘양보’, ‘천천히’와 같은 표지판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남들은 잘 가는데 하필이면 내가 서있는 줄만 더 천천히 빠지거나 아예 막히기도 하는 날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서 성도를 건져내시는 방법이다. 그래서 오래참음의 성품이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