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3:13-4:11

예수님께서 등장하신다. 마태는 예수님의 등장을 당시 전국적으르로 떠들썩 한 요한이 세례주던 요단강에서 시작한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나오신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당연히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는 자신이 예수님께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예수님께 세례를 줄 수 있는냐고 항변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합당한 것이니 허락하라고 말씀하셨고 요한은 이 말씀을 받아드려 예수님께 세례를 준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 위에 임하셨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성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다.
세례 받으신 주님은 성령에 이끌리셨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한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은 무슨의미일까?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들 가운데 거하셨다. 바울의 가르침에 따르면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존재다. 결국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온전한 사람으로 이땅에 오심을 의미한다. 죄인인 우리 성도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없다고 인정함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완전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이제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시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아닐까? 세례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과 함께 성자 하나님으로 삼위 하나님의 한분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 복음서 기자들이 모두 이 사건을 기록하는데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심과 성부 하나님의 음성을 그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보고 들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만 보고 들었을 수도 있다. 하여간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은 의로우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두 사람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순종를 통하여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성부 하나님과 함께 하셨던 성자 하나님이 드러난 것이다.
마귀는 스스로도 속인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통하여 공식적으로 성자 하나님으로 계시되었건만, 이제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시는 분이시건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도전한다. 마귀 자신이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다. 물론 예수님은 마귀의 모든 시험을 물리치신다.
토요일 거의 하루 종일 정전이었다.

마태복음 3:1-12

예수님보다 앞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외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세례요한이다.

세례자 요한이 선포한 회개는 무엇이고 천국은 무엇이었을까? 회개는 뉘우치는 것이다. 잘못된 행실에서 돌이키는 것이니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천국이라는 개념은 쉽지 않다.

그러나 우선 쉽게 생각하면 지금의 가치관에서 돌이켜 새로운 가치관을 따라 살라는 가르침이다.

마태는 세례자 요한이 이사야서에 나오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의 주인공이라고 소개한다. 이 세례자 요한이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족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지냈다고 한다. 나름 구약의 선지자의 모습을 따랐다. 세례자 요한도 전하는 내용만큼이나 자신에게서 풍기는 삶의 모습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아니 말씀을 적용한 삶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외치는 세례자 요한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자 요한에게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많았다. 세례자 요한은 저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세례자 요한에게 나와 세례를 받고자 한 것은 회개가 아니라 만의하나 있을 지 모를 심판을 면하기 위한 면벌/면죄부를 받기 위함임을 세례자 요한은 직시했던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책망한다. 세례자 요한은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은 (사도 요한의 주석처럼)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고 강조한다. 육적 아브라함의 자손이니까 세례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시작되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을 맺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받음의 의미인 것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을 맺기 위한 첫걸음이다. 그러나 우리의 결심으로만 회개에 합당한 열매을 맺을 순 없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자신보다 능력이 많으신 그리스도를 소개한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그 분을 소개한다. 나의 결심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지만 보혜사의 도우심을 받으면 우리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우리가 세례받음은 그리스도 예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천국은 복음이지만 알곡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쭉정이는 불에 던져진다.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움을 당한다.

천국은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우리를 다스려 주시는 나라다. 형식적인 세례가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주님이 함께 하신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속으로 아무리 난 (물)세례받았다고 생각해봐야 심판대 앞에서면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실 것이다. 세례자 요한 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라고 하신다.

마태복음 2:13-23

세상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헤롯은 동방박사들이 자신에게 와서 아기 예수가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자 속았다고 생각하고 베들레헴과 그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들을 죽인다. 자신이 동방박사들을 먼저 속였다는 것은 전혀 모르는 모양새다. 동방박사들에게 아기 예수를 경배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애굽으로 피신한 아기 예수님은 물론 이 화를 피할 수 있었다. 마태는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한 것도, 베들레헴의 비극도 다 말씀의 성취라고 한다.

헤롯이 죽은 후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가로 알려준다. 요셉은 마리와 함께 아기 예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여전히 헤롯 가문이 왕위에 있어서 두려워 이스라엘 땅으로 가기를 주저하자, 주의 사자가 한번 더 요셉의 꿈에 나타나 지시하자 갈릴리 나사렛 동네로 가서 살았다. 이 역시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말씀의 성취라고 한다. (구약에는 나사렛 사람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이사야 선지자는 고난받는 종을 노래했고 예수님 당시 나사렛은 고난 받는, 멸시와 천대를 받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말씀의 성취는 일차적으로 문자적으로 적용되지만 궁극적으로는 내용적으로 적용된다. 앞의 두 성취도 같은 맥락이다.)

정작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들 가운데 (아기 예수로) 오셨지만 주의 말씀이 희귀한 때라 주님은 주의 사자의 현몽을 통해 의로운 사람 요셉과 교제하신다. 꿈 꿈 꿈! 의로운 사람 요셉과 마리아 가정은 순종한다.

꿈으로 지시함을 받았다고 순종하기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요셉은 이스라엘로 돌아가라는 주의 사자의 지시를 받았음에도 돌아 가기를 무서워했다. 애굽으로 피신하는 것도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고 갈릴리 나사렛에 정착하는 것도 재차 지시를 받아서야 순종할 수 있었다. 그래도 꿈을 통해 지시를 받는 의로운 부부라, 무엇보다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의로운 부부 가운데 거했기 때문에 두려움 가운데서도 순종할 수 있었다.

세상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헤롯과 달리 요셉과 마리아 부부는 하늘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부부였다. 주님은 이런 의로운 부부와 꿈으로 교제 하셨다. 이들에게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과의 교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주님은 우리와 말씀으로 교제하신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예수님과 교제하는 하루 하루를 살게하소서.

마태복음 2:1-12

예수님의 탄생은 전우주적인 사건이었다. 다만 땅만보고 사느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마태는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나신 후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을 향해 왔다고 기록한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경배하러 왔으니 그분이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 당시 유대를 다스리고 있었던 헤롯왕과 예루살렘 사람들은 놀랐다.

헤롯왕은 동방박사들이 말하는 그 분이 그리스도임을 알았을 정도로 예민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고 저들은 유대 베들레헴일 가능성이 크다고 미가서 5장 말씀을 근거로 답을 했다.

헤롯왕은 동방박사들에게 별이 나타난 때가 언젠지 묻고 자신도 그리스도께 경배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찾으면 알려 달라고 하며 베들레헴으로 가보라고 했다.

동방박사들은 베들레헴으로 갔다. 확실히 베들레헴이었다. 동방박사들을 인도하던 별이 그곳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별이 머물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별이 머물자 동방박사들은 그리스도를 찾았다고 확신에 차 기뻐하고 기뻐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다.

창조주 하나님은 꿈을 사용하셔서 동방박사들에게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셨고 동방박사들은 다른 길로 동방으로 돌아갔다. (더이상 하늘을 보지 않으니 꿈을 이용하셨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전우주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하늘을 보지 않고 땅만 보고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사건이다. 동방박사들처럼 전문적으로 하늘의 별을 연구하거나, 베들레헴 성 밖에서 양떼를 지키며 밤새 하늘의 별을 세던 목자들에게 예수의 탄생 소식이 전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어디서 태어날지 말씀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었던 종교지도자들도 하늘을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나심에 대하여 달도 없는 밤같이 깜깜했었다.

오늘날에도 땅에 있는 것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수 없다. 하늘을 봐야 한다.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하늘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바울의 권면을 들어야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이다. 임마누엘의 삶이다. 서로 사랑하는 삶이다. 하늘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다.

마태복음 1:18-25

예수의 태어나심은 남달랐다. 처녀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모친 마리아는 태몽이 아니라 천사의 수태고지로 잉태 사실을 알았다. 당연히 정혼자 요셉에게 이 사실을 알렸을 것이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 정혼녀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알려주자 요셉은 그 말을 감당할 수 없었다. 성령으로 태어날 자의 아비가 되다니. 요셉은 어떻게하면 이 정혼을 끊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아비됨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자

천사는 요셉에게도 나타나 정혼관계를 유지하라고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아들을 낳을 것이고 이름을 예수라고 지으라고 명한다. 예수는 구원자라는 뜻이다. (그당시 흔한 이름이었을까?)
천사는 의로운 요셉에게 구약의 말씀으로 확인시켜준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23)
요셉이 의롭다는 것은 성경말씀을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요셉은 말씀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았다. 그리고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다. 마침내 예수가 나셨다.

주님의 놀라운 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 결혼한다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 것이다.
결혼후에도 주님의 놀라운 일들을 나누며 사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의롭다는 것은 말씀을 알고 순종하는 것이다. 임마누엘이다.

예수님은 의로운 (순종하는) 가정에서 태어나셨다. 임마누엘의 가정에서 태어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