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17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족보.

나는 안동권씨 추밀공파다. 시조 권행은 원래 김씨였다가 고려창업에 큰 공을 세워 태조 왕건에게 권씨 성을 하사 받았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명하신 것처럼 이름이 바뀌었다. 안동권씨는 그후 권행의 자손들이 고려에서 큰 벼슬을 받을 때마다 파가 갈렸다. 추밀공파는 추밀원부사를 지낸 권수평을 파조로 한다. 다윗 역시 이스라엘의 왕이 된후 그 가문의 위가 영원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다윗은 아브라함씨의 다윗파의 파조가 된다.

아브라함씨 다윗파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족보다.

우리나라에서는 15세기에 간행된 안동권씨족보성화보가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족보다. (권씨가 자랑할 것이 이것 말고 또 무엇이랴) 이 족보는 조선 후기의 족보들과 달리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고 모든 계보를 수록하고 있다. 이후 한국의 족보는 유교의 영향?으로 딸쪽 계보는 점점 축소되어 나중에는 딸대신 사위만 수록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권씨 족보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다시 여자들도 수록하는 추세라고 한다.

예수님의 족보도 어쩌면 변화의 와중에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살아남은 족보다. 남자들의 이름가운데 여자이름이 보인다. 더군다나 라합과 룻은 이방출생 여인들이다. 다말과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 이야기는 부끄러운 내용이다. 순혈주의 유대인들은 거룩한 족보?에서 지우고 싶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족보 하이라이트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어렸을 때 어른들은 족보를 펴서 보이시며 조상들 중 무슨 벼슬 이상 하신 분들이 몇분이고 등등의 이야기를 하시며 자랑하셨다. 예수님의 족보는 다윗부터 포로전까지는 왕의 족보니 자랑할만 하다. 그러나 예수님에 와서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을 합한 구세주, 그리스도의 지위를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니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없을 것이다.

성도들은 바로 이 족보를 따른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믿음의 왕 다윗의 자손이다. 무엇보다도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족보에 기록된 자들이다. 성경은 이 족보를 생명책이라고 부른다.

시편 69편에서 시인은 악인들의 이름을 이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 노래한다(28). 악인들을 의인들의 족보에서 빼라는 것이다. 요한은 계시록에서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과 기록되지 못한 자들의 다름을 계시한다. 오직 의인들의 이름만 이 생명책에 남는다. 오직 의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임마누엘을 누리는 자들이다. 주님은 순종하는 자들과 함께 하신다.

 

 

시편 122

시인은 여호와의 집, 즉 의인들의 회중에 초대 받을 때 기뻐한다.
의인들의 모임에 발을 딛는 순간 감격한다. (드디어 의인들의 모임에 들어왔구나!)
의인들의 모임은 건강한 공동체다.
모든 지체들이 범사에 주님께 감사하는 공동체다. (건강한 공동체의 특징은 원망과 불평 대신 감사가 넘친다. 출애굽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해 보자.)
거기에 심판의 보좌가 있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주님이 약속하신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예수님의 보좌다.
시인은 의인들의 회중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면 의인들의 회중이 형통할 것이라고 노래한다.
의인들의 회중에는 평안이 있고 형통함이 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공동체인 교회의 모습이다.)
의인들의 회중은 형제와 친구를 위하는 공동체다. 서로를 위해 평안을 구하는 공동체다. 말과 혀로만이 아닌 진실된 행함으로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다.
시인이 서로를 위해 복을 구하는 노래로 마치는 이유는 하나님의 집을 위해서다. 의인들의 회중에 들어간 개개인은 하나님의 집을 위해서 복을 누린다. 평안과 형통을 누린다. 결코 개인적인 복이 아니다.

의인들의 회중은 임마누엘의 회중이다. 교회가 마땅히 누려야하고 따라야 할 모본이다. 평안과 형통은 임마누엘에서 온다.

시편 120, 121

시편 120편은 꺼꾸로 읽으면 이해가 더 질될까?

7 시인은 화평을 원하는 자다. 그러나 상대방은 화평을 원치 않고 싸우려 든다.
시인은 화평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에게, 6 화평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화평을 권하며 오래 머물렀다.
5 그곳은 메섹과 게달이었다. 화평을 미워하는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 시인에게는 화를 자초하는 것이었다.
4 화평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날카로운 화살과 숯불로 벌을 받을 것이다.
3 화평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속이며 탐욕스럽게 시인에게 덤빈다.
2 시인은 주님께 화평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거짓된 입술과 사악한 혀의 비방으로부터 구해달라고 기도한다.
1 곤경에 빠진 시인의 부르짖는 기도에 주님은 응답하셨다.

시편 121편은 곤경에 빠지 시인이 바라봐야 할 주님을 노래한다.

1 곤경에 처해 이 산 저 산을 쳐다본들 도움을 받을 수 없다.
2 시인은 도움이 창조주 주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깨닫는다.
3 주님은 시인으로 하여금 악인의 죄를 따르거나 죄인의 길에 서게 하거나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도록 지켜주신다.
4 주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지켜주신다.
5 주님이 시인의 오른편에 서계신다. 임마누엘이다.
6 낮의 뜨거운 열기도 밤의 차가운 한기도 막아주신다.
7 주님은 모든 재앙에서 지켜주시고 영이신 주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지켜주신다.
8 (임마누엘의) 주님은 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영원히 지켜주신다.

모든 곤경과 재난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유일한 길이 주님으로부터 나온다. 임마누엘의 삶이다.

시편 119:161-176

세상은 녹록지 않다. 세상 지도자들이 거짓에 설복되었다. 그래도 시인은 주의 말씀만 경외한다고 노래한다.
세상은 많은 물질로 기뻐하지만 시인은 주의 말씀을 보배삼아 즐거워한다.
세상이 거짓을 주장해도 시인은 거짓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한다.
와우. 시인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하루에 일곱번씩 주를 찬양한다고 노래한다. 하루에 일곱번씩이라는 표현은 하루 종일이라는 뜻일게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다. 임마누엘보다 더 큰 평안이 어디 있으랴. 임마누엘의 삶에 그 어떤 것이 장애물이 되랴?
시인은 임마누엘, 즉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들을 행한다.
온 맘과 뜻과 힘을 다해 주의 증거, 주의 약속을 사랑한다.
시인은 행하는 대로 갚으시는 주님 앞에서 살아간다.

시인은 자신의 삶을 주님이 지켜봐 달라고 간구한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대로 깨닫고 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구한다. 전문가 중의 전문가에게 삶을 지도받는다.
전문가의 지도를 구할 때 전문가이신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전문가이신 주님의 가르침을 받으므로 시인의 입에는 찬양이 넘친다.
주님의 가르치심이야 말로 의로우시며 시인이 부르는 노래의 제목이 된다.
(그러나 여전히) 주님의 도움이 없이는 주의 법도를 택하여도 순종하기 어렵다. 우리가 매 순간 주님의 도움을 구해야 하는 이유다.
시인의 임마누엘을 사모한다. 주님은 주의 율법을 따르는 자와 함께 하신다. 그래서 시인은 주의 율법을 즐거워한다.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바란다. 내 영혼아 주를 찬양하라. 시인의 찬송이다. 주의 규례들이 삶의 이정표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우리는 잃은 양 같아서 방황한다. 시인은 주님이 잃은 양 같은 자신을 찾아달라고 기도한다. 주의 계명을 따라 길을 가겠으니 갈림길에 섰을 때마다 바른 길을 따라 갈 수 있도록 주의 계명으로 인도해 달라고 간구한다.

결국 주님이 내미시는 손을 잡아야 한다. 시인의 마지막 외침 “주의 종을 찾으소서”가 나의 노래가 되게 하소서.

시편 119:145-160

시인이 주의 교훈들을 지키지 위해 주님께 전심으로 부르짖는다. 그만큼 주의 교훈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님의 응답, 즉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시인은 주께 부르짖은 것에 대한 응답을 구원이라고 한다. (주님이 함께 하심이 구원이다.) 임마누엘이 주의 증거를 지키게 도와준다.
시인은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주의 말씀을 구하고
주의 말씀을 읊조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시인이 이렇게 주의 말씀을 구할 수 있는 이유는 주님이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인자하신 주님께 주께서 약속하신대로 구원해 달라고, 주님 저와 함께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
주님의 인자하심을 모르는 사람들은 악을 따르는 자들이고 따라서 주의 법에서 떠난 자들이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들은 진리인 주의 모든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시인은 이미 주의 증거들을 알고 있었고 주의 증거가 영원한 약속인 것을 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고난중에도 구원의 삶을 산다. 율법을 지키는 삶을 산다.

시인의 자신의 구원이 주께서 친히 변호해 주시기 때문임을 고백한다. 주께서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하신 약속에 근거한 고백이다.
반대로 악인들이 구원에서 멀어진 이유는 주께서 하신 약속들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의 규례들은 주의 긍휼하심으로 가득하다. 시인의 주의 긍휼하심에 의지한다.
시인은 핍박하는 자들과 대적들 편에 서지 않고 주의 증거를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주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거짓된 자들을 보고 슬퍼한다.
그만큼 시인은 주의 법도를 사랑한다. 완전하게 주의 법을 따를 수 없을지라도 주의 인자하심에 생명을 건다.
주의 말씀이 진리다. 영원한 진리다. 불변의 진리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영원하신 하나님말씀으로 사귀는 성도는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