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9:16-27

여호수아 9:16-27

기브온과 화친조약을 맺은지 사흘밖에 지나지 않아 그들이 인근 백성이라는 소문이 들렸다. 그들이 진을 거둬 기브온, 그비라, 브레옷, 키럇여아림에 이르렀을 때다. 그러나 이미 야훼 하느님의 이름으로 화친을 맺은 후였기 때문에 그들을 칠 수 없었다. 온 회중은 지도자들을 원망했다. 지도자들은 회중에게 야훼 하느님을 두고 맹세한 것을 지켜야 한다고 대답했다. 대표들은 그들을 살려두되 그들을 노예로 삼자고 제안했고 온 회중은 지도자들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다가 왜 속였는지 물었다. 그리고 노예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브온 사람들은 가나안 땅 주민들을 모두 멸하고 이 땅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라고 모세에게 명하신 야훼 하나님의 명령을 분명히 들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진멸당하지 않기 위해 속였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자신들은 이미 이스라엘 수중에 있으니 어떤 처분이든 달게 받겠다고 대답했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살려주는 대신 노예가 되어 이스라엘을 섬기게 했다. 그들은 야훼께서 택하신 야훼의 제단 일을 거들게 되었다.

여호수아 9:16-27
//임마누엘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부적으로 사용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 묻고 하라는 의미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딴 짓을 한다. 부부가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대화가 일절 없다면 부부가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리적으로는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어도 동상이몽이다. 이처럼 임마누엘은 교제/대화를 전제로 한다. //기브온 주민과의 주종관계 화친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기브온이 가져온 양식에 눈이 어두웠던 지도자들의 잘못이다.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고 사관이 굳이 기록하는 이유 하나님께 묻지 않고는 임마누엘의 능력을 누릴 수 없음을 시사한다. 과연 기브온 주민을 노예로 삼은 것은 하나님의 뜻일까? //하나님을 두려워해 이스라엘을 속여서라도 살려고 했던 기브온은 목적을 달성했다. 노예 신분이라도 이스라엘 가운데 살아남을 수 있다면 좋은 것이다.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하나님의 집에 거할 수 있다면 문지기가 아니라 더 천한 일을 한다해도 낫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줄 아는, 그래서 철저히 낮아진 기브온 사람들은 제단 일을 돕는 일을 거들게 된다. 이들이 물리적으로는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게 되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 앞에서 낮아지고 낮아져도 그것이야 말로 복이다.

여호수아 9:1-15

여호수아 9:1-15

1-13 이스라엘이 아이성까지 함락시켰다는 소식에 가나안 땅 헷, 아모리, 가나안, 브리즈, 히위, 여부스 족속의 왕들이 동맹을 맺어 여호수아가 거느린 이스라엘과 싸우기로 했다. 다만 히위 족속의 분파를 알려진 기브온 주민은 반 이스라엘 동맹에 참여하는 대신 속임수를 써서라도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고자 했다. 기브온 주민은 마치 먼 곳에서 온 사람들 처럼 변장을 하고 여호수아를 찾아가 주종관계의 화친을 맺자고 말했다. 기브온 주민은 하느님 야훼의 명성을 듣고서 알고 있다고 했다. 야훼께서 이집트에서 하신일, 요단 서쪽 아모리 두 왕 시혼과 옥을 해치운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종이 되는 화친이라도 맺자고 했다. 기븐온 주민은 말라버린 빵과 헌 술과 헤어진 옷과 신발을 보여주면 자신들은 먼 곳에서 온 주민이라고 속였다. 14-15 이스라엘 회중의 대표들은 야훼의 허락을 얻지도 않고 기브온 주민에게서 양식을 받았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그들과 우호조약을 맺었다. 여호수아는 그들의 목숨을 보장한다는 조약을 맺었고 회중의 지도자들도 조약을 따르겠다고 맹세했다. 

여호수아 9:1-15

//가나안의 여섯 족속의 왕은 동맹해서 이스라엘의 침략을 막기로 했다. 마음이 녹았던 여섯 왕은 아이 왕이 첫번째 전쟁에서 이긴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비록 아이 성이 두번째 전투에서 패해 진멸되었다고는 하나,아이 성은 작은 성이었으니 여섯 족속이 연합하면 충분히 맞설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몰랐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행하신 일과 홍해를 가르시고 요단 서편 두 왕을 무찌르신 사실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히위 족속에 속한 것을 알려진 기브온 주민은 여호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았다. 동맹을 해서라도 맞서 싸울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속일 순 없어도 이스라엘 사람들을 속여서라도 살아야 했다. 그래서 지혜를 모았다. 그들은  가나안 일곱 족속이 진멸 대상이라는 것까지 알아내었던 것 같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이 되신 하나님께서 일곱 족속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 만큼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했다. //기브온 주민은 이스라엘을 속이는데 성공했다. 한편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속았다. 사관은 그들이 하나님의 허락을 얻지도 않고 기브온 주님이 건넨 양식을 받았다고 기록한다. 우리가 세상에 속는 이유는 하나님께 묻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묻지 않는 이유는 세상이 주는 양식이 너무 달콤하기 때문이다. 말씀이 꿀과 송이 꿀보다 달아야 하는데… 우리 입맛은 세상 양식에 너무나도 익숙해졌다. ////하나님께 묻는 삶을 살라고 하신다. 평안해서 묻지 않아도 되는 삶은 어쩌면 풍전등화일지도 모른다. 평안할 때라도 물어야 한다. 돌다리도 두들겨가며 건너야 하듯, 매순간 주님께 물어야 한다.

여호수아 8:30-35

여호수아 8:30-35

아이 성 승전후 여호수아는 에발산 위에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 바치는 제단을 쌓았다. 여호수아는야훼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한 그대로 제단을 쌓고 번제물과 친교제물을 바쳤다. 그리고 여후수아는 모세가 써둔 모세의 법 사본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제단 돌들에 새겼다. 온 이스라엘은 지위고하 구별없이, 내외국인 차별없이 모두가 야훼의 계약궤를 멘 레위인 사제들 앞에서 법궤를 향하여 양쪽으로 갈라섰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기 위하여 야훼의 종 모세가 처음 지시했던 대로 반은 그리짐 산 앞쪽에 반은 에발산 앞쪽에 섰다. 여호수아는 법의 축복조항과 저주조항을 법전에 기록된 대로 낭독했다. 여호수아는 남녀노소 차별 없이 참석한 이스라엘 큰 모임에서 모세에게 지시받은 말을 한 마디도 빼지 않고 낭독했다.

여호수아 8:30-35
//아이성을 무너뜨렸다. 여호수아는 온 이스라엘과 함께 제단을 쌓았다. 이제는 모세의 법대로 한다. 제단을 쌓는 것도 번제와 친교제를 드리는 것도. 그리고 모세의 법을 (제단) 돌들에 새겼다. 그게 다가 아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법을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 새기길 원해 낭독했다. 모세의 법을 마음에 새겨야 할 사람은 지위고하, 내국인외국인, 남녀노소 차별이 없었다. 축복조항만 아니라 저주조항도 낭독했다. //임마누엘의 기본은 말씀을 마음에 두는 것이다.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마음이 청결하다. 예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고, 그 복은 하나님을 뵙는 것이라고 했다. 임마누엘은 다른 것이 아니다.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삼가 행하는 삶이다. 예수께서도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를 내 안에 모시는 것과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는 것과 동일시 하셨다. 주님의 말씀에는 축복의 말씀만 있지 않다. 저주/경고의 말씀도 있다. 좌우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여호수아 8:18-29

여호수아 8:18-29

야훼께서 거짓 퇴각하는 여호수아에게 창을 아이쪽으로 뻗으라고 명하셨다. 이제 아이성을 여호수아 손에 부친다고 하셨다. 여호수아는 순종하여 창을 성쪽으로 내뻗었다. 그러자 복병들이 번개처럼 일어나 성을 점령하고 그 성에 불을 놓았다. 아이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니 성에서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그들은 앞뒤로 공격을 당해 도망칠 수도 없었다. 여호수아는 전군을 이끌고 아이 사람들을 무찔렀다. 아이 사람들은 독 안에 든 쥐가 되어 한 사람도 살아 도망치지 못하고 죽었다. 아이 왕은 생포되어 여호수아에게 끌려왔다. 온 이스라엘은 아이로 돌아가 그 백성을 도륙했다. 만 이천이나 되는 아이 사람이 쓰러졌다. 여호수아는 아이 주민을 전멸시키기까지 창을 내뻗었던 팔을 거두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전리품을 차지했다. 아이는 불타 영원한 폐허가 되어 돌무더기로 남았다. 여호수아는 아이 왕의 시체를 저녁때까지 나무에 달아두었다가 저녁에 그 시체를 내려 성문 어귀에 내던지고 그 위에 큰 돌무더기를 쌓아 올렸다.

여호수아 8:18-29
//주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 전군을 친히 지휘하신다. 이미 여호수아에게 알려주시 전략전술이지만, 주께서 타이밍까지 현장에서 지시하신다. 여호수아가 아이 주민이 전멸될 때까지 뻗은 팔을 거두지 않았다는 것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주님의 지시를 따라 전투를 지휘했다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출애굽 후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아론과 훌이 잡아 주었던 것처럼) 임마누엘이 가져온 승리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스라엘은 여리고 때와 달리 이번에는 전리품을 차지했다. 그렇다면 여리고는 주님께 속한 첫 태생, 첫 열매와 같이 첫 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세가 알려준 이 원리를 잘 알았다면 아간의 범죄는 없었을 것이다. 매순간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삼가하며 살지 않으면 조급함 때문에, 또 남보다 먼저 가지려는 탐욕에 무너지기 쉬운 우리다. ////아침에 눈뜨고 밤에 침대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삼가 행해야 한다. 소시적 깨달은 말씀만 가지고 살아서는 안 된다. 방향을 알았다고 해서 주님의 음성 듣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 매순간 인도 받아야 한다. 임마누엘!

여호수아 8:1-17

여호수아 8:1-17

1-8 야훼께서 여호수아에게 전군을 거느리고 아이성을 치라고 하신다. 예리고와 그 왕을 해치웠듯이 아이와 아이 왕도 해 치울 것이라고 하신다. 이번에는 전리품을 차지해도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성 뒤쪽에 복병을 배치하라고 전략전술도 지시하셨다. 여호수아는 전군에게 아이성 공격을 준비시키고 날쌘 용사 삼만을 뽑아 성 뒤쪽에 매복하라고 지시했다. 여호수아는 주군을 거느리고 아이성을 공격하다 퇴각하는 체 하겠으니 아이 군이 자신들을 쫓아 멀리 따라 나오면, 매복군에게 성을 점령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성을 점령하면 성에 불을 지르라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이 야훼의 말씀이니 그대로 따르다고 명령했다.
9-13 매복조를 떠나보내고 여호수아는 부대원과 함께 밤을 지내고 이튿날 아침 아이로 쳐 올라갔다. 주력은 아이성 북쪽에 진을 치고, 오천 명쯤은 아이성 서쪽에 기습부대로 배치하고 그밤을 골짜기에서 지냈다.
14-17 아이 왕은 이스라엘을 맞아 싸우러 나왔다. 그는 성 뒤쪽에 복병이 숨어 있는 것을 몰랐다. 여호수아는 전군과 함께 쫓기는 체 광야 쪽으로 도망쳤다. 성에 있던 전 부대가 그들을 따라잡으려고 추격했다. 그들은 여호수아의 유인책에 당했다. 아이에는 군사가 한 명도 남지 않았고 성문을 열어둔 채 이스라엘을 추격했다.

여호수아 8:1-17
//아이성을 처음 공격할 때 여호수아는 병사 삼천을 보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군을 동원한다. 복병만 삼만이요, 기습부대도 삼천보다 많은 오천명이다. 전력을 낭비한 것 같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숫자 놀음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전군을 동원했다는 것은 전심전력하라는 주님의 명령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주셨다고 해도, 싸움에 임할 때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싸움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렇다고 대충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총사령관이 되셔서 진두지휘 하시는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전군 사이의 전령역할을 한다.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들도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서 전령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스스로 대장인 체 교만하면 안 된다. //한편 경험에 의존한 아이 왕은 여호수아의 유인책에 놀아나고 만다. 우리도 때론 세상 지혜와 경험에 빠르다. 그러나 성도라면 항상(범사에)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