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15-25

/1/

선지자 수련생들은 성령의 역사가 엘리사에게 머무는 것을 보고 엘리사를 선지자 수련의 주인? 으로 모셨다.

선지자 수련생 무리는 엘리사를 설득하여 엘리야 시체를 찾고자 했다. 엘리사의 만류에도 수련생들은 엘리사가 부끄럽도록 간청하였다. 엘리사는 마지못해 허락했으나 수련생들은 헛수고만 했다.

주 하나님이 부끄럽도록 강청하는 기도도 헛수고다. 주님이 아니다라고 하시는데 강청하는 것은 불순종이다. 엘리야가 남긴 것은 성령의 역사, 말씀의 능력이다. 그런데 엘리사가 취한 엘리야의 겉옷에 능력이 있는듯 다른 소품을 구한 수련생들의 잘못된 열심이었다.

/2/

여리고 성읍의 물. 성읍은 풍수지리가 좋으나 물 자체는 나빴다. 성읍 사람들은 엘리사에게 물문제를 제기했다. 엘리사는 소금을 물이 나오는 근원에 뿌려 나쁜 물을 좋은 물로 바꿨다.

엘리사가 뿌린 소금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물을 고쳤다’는 주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갈 때 작은 아이들이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놀렸다. 엘리사는 자신을 조롱하는 아이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저주했다. 곰이 나타나 조롱하던 아이 사십이 명을 찢었다. 엘리사는 갈멜을 거쳐 사마리아로 겄다.

엘리사의 저주가 아니라 주님의 이름에 힘이있다.

열왕기하 2:1-14

주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회오리 바람에 태워 데리고 가셨다.

엘리사는 끝까지 엘리사를 붙좇았다. 결국 엘리사는 엘리야의 선지자 지위를 상속 받았다. (곳곳에 선지자 수련생 (제자) 들이 있었고 그들도 주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간다는 것을 알았지만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가지 않았었다.)

엘리사는 (승천하면서) 엘리야가 흘린 겉옷을 취했지만 엘리야의 능력을 받지는 못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하나님께 능력을 구했을 때 엘리야의 능력이 임했다. 능력은 엘리야나 엘리야의 소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 하나님께 있다.

선지자 수련생은 무엇을 어떻게 교육받았을까?

일차적 예언은 주어진 말씀을 배우고 깨닫고 전하는 것이다. 예언이 계속되던 때에도 주어진 말씀을 공부하는게 우선이었을 것이다. 하물며 우리랴.

열왕기하 1 :13-18

아하시야 왕은 세번째로 오십부장과 군사들을 엘리야에게 보냈다. 세번째 오십부장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무릎을 꿇고 (왕명을 수행하는 대신) 간구했다. 자신의 생명과 수하 50명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 달라고.

주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아하시야 왕에게 가라고 하셨고 엘리야는 순종했다. 엘리야는 아하시야 왕에게 사신들에게 했던 예언을 그대로 전했다. 말씀이 성취되었다.

주 하나님께 범죄하면 추락하고 병든다. 다시 올라가 봤자 침상 위에서 결국 죽는다. 생명의 보전은 주 하나님 앞에 무릎 굻고 간청해야 얻을 수 있다.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심판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적다. 주 예수 이름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이다.

열왕기하 1:1-12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1)

이스라엘의 강성함도 아합의 죽음과 함께 쇠락의 길을 걷는다. 이미 기울어진 신앙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아합을 이은 8번째 아하시야 왕 이야기는 추락하고 병든 이스라엘을 가감없이 그대로 드러낸다.

다락에서 떨어져 병든 아하시야 왕은 자신의 병이 나을지 물어보려고 에그론의 신(하나님) 바알세붑에게 사신을 보냈다. 주 하나님은 엘리야를 사신들에게 보내 이스라엘에 하나님(신) 이 없어서 에그론에 있는 신(하나님) 에게 물으러 가느냐고 반문하시며 아하시야 왕의 죽음을 예언하게 하셨다.

사신들이 도중에 아하시야 왕에게 돌아가 엘리야의 예언을 전하자 왕은 예언한 사람이 엘리야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다시 말하면 당시 주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던 것이 아니라 듣는 귀가 없었다는 것이다.

아하시야 왕은 그 즉시 오십부장과 그의 군대를 보내 엘리야를 데려오라고 명하였다. 오십부장은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며 엘리야에게 왕의 명령을 전했다. 엘리야는 자신이 주 하나님의 사람이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오십부장과 그의 군대를 불사르라고 명했고 엘리야의 말대로 이뤄졌다. 아하시야는 다시 오십부장과 그의 군대를 엘리야에게 보냈고 같은 일이 반복됐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소용없다.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세상 왕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에게 듣는 것은 더 중요하다. 우리가 주 하나님께 나아가는 이유다. 듣기위해서다. 나의 탐욕을 채우기위해 끌어 내리려고 해서는 안된다.

시편 113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 한다. 그리고 주님의 종들에게 찬양하라고 명령한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해돋는 곳부터 해지는 곳까지

주님은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주님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다. 주님보다 높은 것은 없다. 그러나 스스로 눈높이를 낮추사 천지를, 피조물을 살피신다.

가난한 자, 궁핍한 자를 일으켜 세워주신다. 지도자와 고관대작과 나란히 세워주신다. 불임의 여인들이 (사회적 약자들이) 집에서 (공동체에서)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미되어 (돌봄을 받으며) 살게 하신다. 할렐루야!

// 할렐루야! 건강도 부귀도 명예도 학식도 아니다. 시인은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를 공동체에서 세우시는 높고 높고 높으신 주님을 찬양한다. 주님의 종들에게도 찬양하라고 명령한다. 주님의 높으심만 보지 말고, 스스로 낮추사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를 도우시는 주님을 바라보라고 한다. 우리 입술의 찬양이 삶이 되어야 한다고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