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22-31

마가복음 14:22-31

식사 중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후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받아라. 이것은 내 몸이다” 하고 주셨다. 또 잔을 들어서 감사 드리신 후에 제자들에게 주어 마시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것을 마실 그 날까지 포도주를 다시는 마시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 식탁의 교제는 하나님의 축복과 감사 기도의 자리다. (요한복음에서는 가룟유다가 떡 한조각 받고 나간 것으로 묘사되나) 가룟유다가 여전히 참여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식탁에 그냥 손님으로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곧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식구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식탁의 전식은 배신이었지만  메인코스는 축복과 감사기도였고 후식은 찬미였다. 바울은  하나님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로마 성도들에게 편지한다. 하나님나라는 식탁의 주인되신 예수께 가족으로 (식구로) 참여하는 나라다. 

그들은 찬송을 부르고 감란산으로 갔다. 예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제자들 모두가 걸려서 넘어질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살아나신후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라고 하셨다. 베드로는 모두가 걸려 넘어져도 자신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큰 소리쳤다. 예수께서는 오늘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이경이 되기 전에) 베드로가 세번이나 자신을 부인할 것이라고 하셨다. 베드로는 예수와 함께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머지 제자들도 모두 그렇게 말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걸려 넘어지는 것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의 성취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고 교훈하셨는데, 베드로는 몰라도 한참 몰랐다. //나의 열심보다 주님의 말씀이 우선이다. 걸려 넘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면 어떻게 하면 돌이킬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겠다는 나의 결심도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결코 이루어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연약함이다.

https://quietwaters.blog/2020/04/05

마가복음 14:12-21

마가복음 14:12-21

무교절 첫날, 곧 유월절이다. 제자들이 유월절 만찬 장소를 물었다. 예수께서 제자 두사람을 성 안을 들어 보내, 물동이를 메고 오는 사람을 만나면 그를 따라가서 그가 들어가는 집 주인에게 예수일행이 유월절 음식을 먹을 방이 어디있는지 물어보게 하셨다. 그러면 방을 준비해 줄 것이니 거기에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어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그곳에 가셔서 유월절 음식을 드셨다. 식사중에 예수께서 제자중 한 사람이 자신을 배반할 것이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근심하며 ‘나는 아니지요?’하고 예수께 물었다. 예수께서는 함께 식사하는 열둘 가운데 하나라고 하셨다. 인자가 떠나가는 것은 기록된 말씀의 성취이지만 인자를 넘겨주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일행이 유월절 음식을 먹을 장소도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탈 나귀 새끼를 준비할 때와 같이 두 제자를 보내서 준비하게 하셨다. 두 제자가 그 때 그 두 제자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둘에게 일을 맡김으로 최소한 두명의 증언을 확보한 셈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유월절 만찬에 열두 제자 모두를 참석시켰다. 심지어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반한 것을 아시고도, 그도 참석 시켰다. 성찬식에 참석할 자격을 우리가 정해도 될까? 세례받은 사람만 참석하는 것이 성경적일까? 그냥 전통이 아닐까? //열둘 중 열하나는 (아마 열둘 모두) ‘나는 아니지요’라고 근심하며 예수께 물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다. 이들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여전히 무지했다. 그러나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로 인도한다. 그러나 한명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예수를 넘길까 사망을 이루는 세상 근심을 했다. 사실 가룟 유다 말고 나머지 제자들 역시 잠재적 배신자들이었다. 예수께서 잡히시자 뿔뿔이 흩어진 것이 그 증거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한다면 그 결국은 구원일 것이다.

https://quietwaters.blog/2020/04/04

마가복음 14:1-11

마가복음 14:1-11

1-2 유교절과 무교절 이틀 전.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속임수를 써서라도 예수를 붙잡아 죽이려고 궁리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이 두려운 그들은 명절은 피하려고 했다.

3-9 에수께서 베다니에서 나병환자였던 시몬의 집에 머물렀다. 음식을 잡수시고 계실 때 한 여자가 매우 값지 순수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몇몇 사람은 향유를 허비한다고 화를 냈다. 향유의 가치가 삼백데나리온 이상이었다. 노동자의 일년치 연봉이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을 돕지 않고 허비했다고 그 여자를 나무랐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를 괴롭히지 말고 가만두라고 말씀하셨다. 그 여자가 자신에게(예수께) 아름다운 일을 했다고 오히려 칭찬하셨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그들을 도울 수 있지만 자신은(예수께서는) 언제나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여자가 한 일은 자신의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미리 한 셈이며,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이셨다.

10-11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를 넘겨주려고 그들을 찾아갔다. 그들은 유다의 말을 듣고 기뻐하여 유다에게 은돈을 주기로 약속했다. 유다는 예수를 넘겨줄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예수를 죽이려는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 예수를 넘겨주려고 하는 유다 사이에 끼어있는 향유옥합 사건. 죽음을 앞두고 살려고 발버둥치는 사건이 아니라 죽음을 준비하는 사건이다.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한 마리아는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했다. 십자가 너머의 부활을 보지 못했다면 과연 예수님께 향유를 부을 수 있었을까? //가난한 자들은 우리와 항상 함께 있다. 예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다. 천국은 가난한 자들의 것이라고 하셨다. 천국은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다. 따라서 가난한 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복을 누린다. 그렇다면 우리가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난한 자들과 항상 함께 하면 된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작은 자를 영접한 것이 주님을 영접한 것이라고 적용해 주셨다. 가난한 자들 돕는 것이 연례 행사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연례행사에 그친다면 주님도 그 때에만 어쩌다 가끔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예수님과 물리적으로 함께 한다고 임마누엘이 아니다.  가룟 유다. 그는 예수를 팔았다. 자기 소유의 전부를 다 팔아서 사야 마땅할 천국을(예수를) 은 삼십에 오히려 팔았다. 반면 한 마리아는 자기 소유의 전부와 마찬가지인 향유 옥합을 허비해 천국을 샀다. 한 과부에게는 두 렙돈이 전부였다면, 한 마리아에게는 향유 옥합이 (자기 소유의) 전부였을 것이다. >>나의 소유를 늘리는 것은 예수를 파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내가 흥해야 예수님이 흥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예수님이 흥하기 위해서 나는 쇠해야 한다. 예수님과 항상 함께 하는 길은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시는 것이다. 내 안에 영원한 주님의 말씀을 담고 말씀 대로 사는 것이 임마누엘이다.

https://quietwaters.blog/2020/04/03

마가복음 13:28-37

마가복음 13:28-37

28-31 무화과나무에서 비유를 배우라고 하신다. 무화과나무를 보면 계절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세상 돌아가는 징조로 인자가 문 앞에 가까이 온 줄을 알라고 하신다. 주님은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천지가 없어지더라도 주님의 말씀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32-37 그러나 그날 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신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 아신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하고 깨어있어야 한다. 주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서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명령했다. 집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종들은 깨어 있어야 한다. 주인이 갑자기 와서 종들이 잠자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명하신다. 모든 사람들이 (문지기만 아니라) 깨어 있어야 한다.

//나무를들을 보고 계절을 알 수 있듯이, 천기를 보고 날씨를 분별 하듯이, 징조를 보고 인자가 가까이 온 줄을 알 수 있어야 한다. 특별히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말씀으로 인자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고 하신다. //그런데 주신 말씀은 인자가 가까이 온 줄은 알 수 있어도 그 날과 그 때는 알 수 없다고 하신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한다. 문지기만 대표로 깨어 있다가 신호를 주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 때부터 깨어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함께 깨어 있어야 한다. 인자가 맡겨주신 할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 //주님이 부활 승천하신지 이천년이 넘었으니, 주님이 더디 오신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우리에게는 여전히 곧 오신다. 아니 오히려 그 만큼 더 가깝다고 이해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을 미뤄서는 안 된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 깨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3:14-27

마가복음 13:14-27

‘황폐하게 하는 가증스러운 물건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사람은 깨달아야 한다.) 그때에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쳐야 한다. 짐을 챙기지 말고 뒤돌아보지도 말고 산으로 도망해야 한다. 도망치기 어려운 임산부는 불행하다고 하신다. 도망치기 어려운 겨울에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야 한다. 창조이래 지금까지 없었던, 전무후무한 환난이 닥칠 것이라고 하신다. 그래도 주님께서 그 환난의 날들을 줄여주셔서 구원받을 사람이 있다고 하신다. 주님이 뽑으신 선택받은 사람들을 위해 주님이 환난의 날들을 줄여 주셨다. 그때 자칭 그리스도가 나타나도 믿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그들은 주님이 뽑으신 선택받은 사람들을 유혹할 것이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한다고 주님은 미리 말씀으로 경고해 주신다. 환난이 지난 뒤에야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다. 그 때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구름을 따고 오실 것이다. 그 때에 인자는 천사들을 보내어 주님이 뽑으신 선택받은 사람들을 모을 것이다.

//종말에 대한 말씀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읽고 깨달아야 한다고 단서를 붙인다. 성령의 감동이  없으면 깨닫는 것은 불가능이다. 그렇다고 성령의 감동이라도 이땅의 언어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그러니 확실한 것만 먼저 되새기자. 먼저 종말이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 종말은 예수 십자가를 앞두고 이미 시작되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과 부활 전에 이미 종말에 당할 고난과 재림을 언급하시는 이유다. 두번째로 종말에 환난이 있다는 것도 환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것도 확실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님이 뽑아 선택하신 사람들은 끝내 구원을 받는다는 것도 확실하다. 언제와 어떻게와 얼마나는 확실하지 않다. 확실하지 않은 것을 몰라도 된다. 끝까지 인내한다면 종말이 언제 어떻게 또 얼마나 많은/적은 사람이 선택받아 끝내 구원을 받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우리 공동체가 끝까지 인내하도록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 격려해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안내한다. 내 뜻대로 살려고 아둥바둥 거리지 않고 , 내 것을 지키려고 맞서 싸우지도 않으셨다. 아버지 하나님의 길을 따르셨다. 그리고 그 결국이 부활이요 승천임을 보여주셨다. 주님이 뽑으신 선택받은 사람들도 부활이신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살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