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5:16-32

마가복음 15:16-32

16-20 예수께서는 십자가형을 선고받았다. 병사들은 예수를 총독 공관 안 뜰로 끌고갔다. 그곳에서 온 부대를 집합시키고 예수께 자색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머리에 씌웠다. 온 부대가 ‘유대인의 왕 만세!’를 외치며 비아냥 거렸다. 갈대로 예수의 머리를 치고 침을 뱉고, 무릎을 꿇어 예수께 거짓 경배를 하며 희롱했다. 그리고 자색옷을 다시 벗기고 그의 옷을 도로 입힌 후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갔다.

21-27  골고다로 가는 길에 어떤 시골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사람 시몬이었다. 병사들은 그에게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다. 그들은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는 곳으로 갔다. 그들은 몰약을 탄 포도주를 예수께 드렸지만 예수께서는 받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제비 뽑아 예수의 옷을 나눠가졌다. 그때가 아침 아홉시였다. 그의 죄패에는 ‘유대인의 왕’ 이라고 적혀 있었다. 병사들은 예수와 함께 강도 두 사람도 십자가에 못박아 예수님 좌우에 달았다.

29-32 골고다에 온 사람들은 예수를 모욕하며 말했다. 성전을 허물고 사흘만에 짓겠다던 사람이면 자기나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희롱했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도 함께 자기도 구원하지 못하면서 남은 어떻게 구원하겠느냐며 조롱했다. 그들은 예수를보고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는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 믿게 하여라!’ 하고 말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사람도 예수를 욕하였다.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사람 시몬! 성경은 보통 사람을 수식할 때 누구의 아들 누구라고 기록한다. 그런데 구레네 사람 시몬은 다르다. 누구의 아버지다.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다. 마가복음의 첫 독자들은 구레네 사람 시몬은 몰라도 알렉산더와 루포를 잘 알았던 모양이다. (얼마전까지 사람들은 이정후를 바람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제는 이종법은 1500억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자녀들이 잘 되면 부모가 자녀의 그늘에 들어간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믿음의 가정에서 자녀의 믿음이 부모의 믿음보다 더 크다고 인정 받으면 할렐루야다. 나의 자녀로 노엽게 하지 않고 말씀과 훈계로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한 열매일 것이다.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졌던 구레네 사람 시몬은 두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으로 키워냈다. //예수님처럼 나를 구원하는 것보다 남을 구원하기 위하여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썩는 길을 택하라고 하신다. 사람들은 자꾸 내가 흥해야 예수가 흥할 수 있다고 말을 한다. 아니다. 예수는 흥해야 하고 나는 쇠해야 (죽어야) 한다. //마가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예수를 욕했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누가는 한 편 강도는 예수를 모욕하는 다른 편 강도를 꾸짖고 예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라고 하지 않았던가? 십자가 사건을 기록한 복음서 저자들의 차이는 이래저래 있으니 누구의 기록이 옳은지 따지는 것 보다 마가가 강조하는 것에 촛점을 맞추고 싶다.) 마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을 말하면서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였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길 어디에서도 의로운 자가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다. (이방 군인들과 행악자 둘은  그렇다쳐도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환호했을 지나가던 사람들, 유대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반전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를 바라볼 때 일어날 것이다.

https://quietwaters.blog/2020/04/10

마가복음 15:1-15

마가복음 15:1-15

새벽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회의 끝에 예수를 결박해서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 빌라도가 예수께 유대인의 왕인지 신문했다.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빌라도가 말한 대로라고 답을 했다. 대제사장들은 여러가지로 예수를 고발했다. 빌라도는 예수께 고발에 대해 변론하라고 말했지만 예수께서는 침묵하셨다. 빌라도는 무죄를 주장하지 않고 침묵하는 예수를 이상하게 여겼다.

명절 때마다 사면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마침 무리들이 사면을 요청했다.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예수)을 사면해주기를 바라느냐고 무리에게 물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무리를 선동하여 차라리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요청하게 했다.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들은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다. 빌라도는 예수가 무슨 나쁜 일을 하였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더 큰소리로 외쳤다. 어쩔 수 없이 빌라도는 무리를 만족시키려고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한 다음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넘겨주었다.

// 종교적으로 모든 권세를 가진 것처럼 생각되었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은 사람 한 명 죽일 권한이 없었다. 정치적으로 모든 권세를 가졌다고 자처했던 총독 빌라도 역시 사람 한 명을 살릴 권한이 없었다. 요한복음에 보면 빌라도는 자신에게 예수를 놓아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처형할 권한도 있다고 말했지만, 예수께서는 그 권한은 위에서 주신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그래서 빌라도가 예수를 놓아주려고 힘썼지만 결국 무리들이 황제를 들먹이자 자기의 권한을 포기하고 말았다. 빌라도의 권한은 황제의 권한에도 미치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육신은 죽여도 그 다음에는 그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을 두려 하지 말고, 죽은 다음에 지옥에 던질 권세를 가지신 분을 두려워 하라고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십자가 앞에 당당하셨던 이유다. //성도가 고난 앞에 담대해야 할 이유다. 그러면 세상이 성도를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세상이 성도를 이상히 여길 때, 성도는 복음의 통로가 된다. 그런데 요즘은 성도가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이상하게 여긴다. ㅠㅠ다.

https://quietwaters.blog/2020/04/09

>> 예수의 십자가 형은 일사천리로 확정되었다. 빌라도가 나름 늦춰볼려고, 아니 무죄 방면하려고 애를 써봤으나 (다른 복음서 저자는 빌라도가 예수를 헤롯왕에게 보냈다 다시 받은 이야기도 포함한다), 하루도 안돼 예수님의 십자가형은 확정되었다. 과연 물리적 시간을 고려할 때 이 모든 일이 무박이일,  시간적으로는 24시간도 안되는 사이에 일어났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의문도 생긴다. 그러나 계획은 사람이 세우나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너무 상투적인 답일까?)

>> 예수께서는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가신다. 이 때, 이 잔을 받으신다. 불의에 대적하지 않으신다. 불의를 못본척하기 위해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 악으로 악을 갚지 않고 선으로 악을 갚기 위해 침묵하신다. 십자가의 길도 불의를 대적하는 방법이다. 선으로 악을 갚으신,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예수를  바라본다.

마가복음 14:53-72

마가복음 14:53-72

예수께서는 대제사장 집으로 끌려갔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모두 모였다.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 예수를 뒤따라 대제사장 집 안마당까지 들어갔다. 그는 하인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대제사장들과 온 희회가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고 그들 고소할 증거를 찾았다. 그러나 찾지 못했다. 예수에게 거짓으로 증언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들의 증언은 서로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이 사람들의 (거짓) 증언에 변론하라고 예수께 말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입을 다무시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대제사장이 예수께 “그대는 찬양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 하고 물었다. 이번에는 예수께서 “내가 바로 그이요. 당신들은 인자가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하고 대답하셨다. 대제사장은 예수께서 하나님을 모독한다며 더 이상 증인들이 필요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재판에 참석한 사람들의 생각을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예수는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들중 더러는 예수께 침을 뱉고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면서 누가 쳤는지 알아 맞추어 보라고 놀렸다. 심지어 하인들고 예수를 손바닥으로 쳤다.

베드로가 안뜰 아래쪽에 있었다. 대제사장의 하녀 하나가 와서 베드로를 보고 ‘당신도 나사렛 사람 예수와 함께 다녔지요?’ 하고 물었다. 베드로는 부인하며 바깥뜰로 나갔다. 그 하녀는 베드로 옆에 서 있는 사람들에 다시 ‘이 사람은 그들과 한패입니다’ 하고 말했다. 베드로는 다시 부인했다. 조금 뒤 베드로 곁에 있던 사람들이 ‘당신이 갈릴리 사람이니까 틀림없이 그들과 한패일 거’ 하고 말했다. 베드로는 저주하고 맹세하며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곧 닭이 두번째 울었다. (삼경이 되는 종소리가 울렸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엎드려서 통곡했다.

//예수님은 변론에 대해서는 침묵하셨다. 예수님의 침묵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결과다. 그런 예수님이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하셨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구름타고 오실 것을 말씀하셨다. 자기 변론에는 입을 다무셨지만 복음은 선포하신 것이다. 이 역시 성령께서 하게 하신 대답이다. 이 대답으로 예수님은 십자가의 지시게 된다. //베드로의 부인은 정반대다. 성령께서 입에 넣어주시는 말씀 대신 자기말을 쏟아냈다. 복음 대신 자기 변호에 바빴다. 자기를 구하느라 예수를 볼 수 없었다. 닭이 두번 울고서야 (삼경을 알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통곡했다. 그래도 베드로는 늦게라도 주님의 말씀을 기억했기 때문에 살았다. //말씀과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 살라고 하신다.

>> 오늘 사건은 모두 한밤중에 일어났다. 예수의 잡힘, 베드로의 부인, 예수께 신성모독의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까지 모두 어둠 중에 일어났다. 빛이라고는 예수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다’ 라고 시인하신 단 한구절에서만 빛난다. 마가가 말하려고 하는 복음이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 이 한 줄기 빛이 복음의 정수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요3:16절을 말씀하신 후에, 불신은 곧 심판을 이미 받았음을 뜻한다고 하셨다. “심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빛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누구나 빛을 미워하며,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 보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은 (그리고 이들 편에 선 무리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한 사람들이다.

https://quietwaters.blog/2020/04/08

마가복음 14:43-52

마가복음 14:43-52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왔다’ 하고 말씀하고 계실 때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보내 무리를 이끌고 왔다. 유다는 자신이 입을 맞추는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미리 신호를 알려 주었다. 유다가 예수께로 와서 선생님 하고 인사하고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보낸 무리가 예수를 붙잡았다. 예수의 제자 중 한 명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내리쳐서 그의 귀를 잘라버렸다. 예수께서 잡으러 온 무리들에게 ‘너희는 강도를 잡르려고 칼과 모둥이를 들고 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쳤는데 그때는 잡지 않았다. 그러나 너희들이 나를 잡는 것은 성경말씀을 이루려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새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다. 어떤 젊은이가 맨몸에 홑이불만 두르고 예수를 따라갔다. 예수를 잡은 무리들이 그도 잡으려고 하니 그는 홑이불을 버리고 맨몸으로 달아났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왔다고 오히려 일어나서 가자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예수께서 자신을 잡으러 온 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사이에 모두 달아나고 말았다.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다는 단어는 함께 하지 않고 피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예수와 제자들 사이의 물리적 임마누엘마져도 깨어지고 말았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예수께서 제자의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가르치셨었다. 그런데 제자들이 모두 달아났다는 것은 제자들이 자기를 부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말해 예수님처럼 자기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 하나님이 뜻에 순종하지 못했다. 예수만 바라보지 못하고 예수를 잡으러 온 무리만 보았기 때문이다. 주님을 보고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물에 빠졌던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된다. //벌거벗고 도망한 어떤 젊은이의 이야기는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적나라하게 대변한다. 예수님으로 옷입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도 아무것도 아니다. 예수 안에 거하지 거하지 않으면 은혜라고 말해왔던 간증의 내용들도 언젠가 도망치며 벗어버려야 할 홑이불(겉옷)에 불과할지 모를 일이다. ㅠㅠ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예수를 버려두고 도망쳤던 부끄러운 과거도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https://quietwaters.blog/2020/04/07

마가복음 14:32-42

마가복음 14:32-42

겟세마네에 이르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그곳에 앉아 쉬라고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데리고 좀 더 가셨다. 예수께서는 놀라시며 슬퍼하셨다.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세 제자에게 말씀하시며, 세 제자에게 그곳에 머물러 깨어있으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혼자 좀 더 가셔서 혼자 이 때가 지나가기를 구하며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그러나 자신의 원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돌아오니 세 제자들이 자고 있었다. 세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시고, 예수께서 다시 혼자 나아가 아버지의 원대로 이루어 지기를 기도하였다. 다시 돌아왔을 때 세 제자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예수께서 세번째 오셔서는 그들에게 이제는 자고 쉬라고 하셨다. 그리고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릴 때가 왔다고 하셨다. 그리고 세자를 데리시고 자신을 팔 자를 만나러 가셨다.

//겟세마네는 기도의 자리다. 기도는 기본적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듣는 시간이다.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의 자리로 나가시면서 놀라시고 슬퍼하셨다고 마가는 기록한다. 예수께서 놀라셨다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의 자신의 뜻과 너무나 달라 전혀 뜻밖이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슬퍼하셨다. 이 역시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다. (잠시나마) 아버지와 뜻이 다르니 매우 마음이 무거웠다. 결국 예수께서는 세 번씩이나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예수께서는 놀라고 슬퍼하셨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지고 들어갔다. 잠시나마 내 뜻을 고집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생각부터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아셨다. 그래서 세번씩이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할 힘을 구하셨다. //기도는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묻는 시간이고, 이미 아버지의 뜻을 깨달았다면 내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구해야 하는 시간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순종할 수 없다.

https://quietwaters.blog/2020/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