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9:19-27

고린도전서 9:19-27 (공동번역)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매여 있지 않는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내가 유다인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유다인처럼 되었고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나 자신은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서도 그들을 얻으려고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법의 지배를 받고 있으니 실상은 하느님의 율법을 떠난 사람이 아니지만 율법이 없는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율법이 없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그들 중에서 다만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한 것입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다 같이 복음의 축복을 나누려는 것입니다. 경기장에서 달음질 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달려가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여러분도 힘껏 달려서 상을 받도록 하십시오. 경기에 나서는 사람들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애쓰지만 우리는 불멸의 월계관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을 하되 목표 없이 달리지 않고 권투를 하되 허공을 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몸을 사정없이 단련하여 언제나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은 내가 남들에게는 이기자고 외쳐놓고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고전 9:19-27
//자유인과 사도의 길에서 바울은 사도의 길을 택했다. 앞서 사도란 그리스도의 종이라 말했다. 바울은 자유인 대신 종의 길을 택한 것이다. 나아가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하면 사도직이니깐 뽀대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말하는 순간 철저하게 낮아진다. 가오도 버린 것이다. 그 이유는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였다. //19절 많은 사람을 ‘얻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22절의 표현으로 바꾼다면 ‘구원을 받게 한다’라는 의미다. 이것이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이유다. 모든 성도와 복음의 축복을 나누기 위해서다. //24절에서 달리기에서 상을 받은 사람은 하나뿐이라고 말하면서 여러분도 힘껏 달려서 상을 받도록 하라는 말은 모순처럼 들린다. 어차피 일등은 한 명인데 다른 사람들은 들러리가 되고 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한 몸에 참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 하라는 바울의 권면은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한 몸에 참여하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몸에서 잘려나가지 말라는 경고다. 심지어 바울 자신도 실격자가 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보인다. ////모든 사람의 종이 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몸에서 잘려나갈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나의 정체성은 기독교의 종교적 열심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발견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9:12b-18

고린도전서 9:12b-18 (공동번역)

그러나 우리는 이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복음을 전하는데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참고 지냈습니다.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살며 제단을 맡아보는 사람들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가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이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제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권리를 조금도 써본 일이 없습니다. 또 내 권리를 주장하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내가 보수를 받지 않고 일한다는 이 긍지만은 아무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만일 내가 내 갖유로 이 일을 택해서 하고 있다면 응당 보수를 바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내 자유로 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 일을 내 직무로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나에게 무슨 보수가 있겠습니까? 보수가 있다면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응당 받을 수 있는 것을 요구하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전9:12b-18
//자유인과 사도의 갈림길에서 바울은 사도의 길을 택한다. 어제 적용했듯이 사도의 길은 그리스도의 노예의 길이다. 사도의 권리/권위를 주장하는 삶이 아니라 보냄을 받은 종으로서 보내신 주인의 명령에 마땅히 따르는 삶이다. 바울은 자유인이라서 긍지를 갖는다고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산다. 나아가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긍지를 갖는 것보다 더 나은 보수는 없다고 말한다. //시편 84편에서 시인은 “당신의 성전 마당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천 날보다 좋사옵니다. 악인의 장막에서 사느니, 차라리 내 하나님의 집 문지기가 되겠습니다.” 하고 노래한다. 시인은 악인의 장막에서 주인 노릇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집 문지기가 (종이) 되는 것이 낫다고 노래한 것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성도에게 하나님나라에서 (무보수) 자원봉사자로 일할 수 있다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 곧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최상의 보상(보수)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하늘의 법도를 따라 살자. 하늘 시민권이야말로 천국에 입국할 수 있는 유일한 여권이다.

고린도전서 9:1-12a

고린도전서 9:1-12a (공동번역)

내가 자유인이 아니란 말입니까? 내가 사도가 아니란 말입니까? 내가 우리 주 예수를 뵙지 못했단 말입니까? 여러분은 내가 주님을 위해서 일하여 얻은 열매가 아닙니까? 비록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도가 아닐지라도 여러분에게는 사도입니다. 주님을 믿는 여러분이야말로 내가 사도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확실한 표입니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도대체 우리에게 먹고 마실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우리라고 해서 다른 사도들이나 주님의 형제들이나 베드로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혹은 나와 바르나바에게만 노동하지 않고 먹을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자기 비용을 써가면서 군인 노릇을 하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습니까? 누가 포도밭을 만들어놓고 그 밭에서 열매를 따 먹지 않겠습니까? 또 도대체 누가 양을 친다면서 그 젖을 짜 먹지 않겠습니까? 내가 단순히 인간의 경험으로 이런 말을 하는 줄 아십니까? 율법도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모세의 율법에 “타작 마당에서 일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마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소를 걱정해서 하신 말씀이겠습니까? 아니면 우리들을 위해서 하신 말씀이겠습니까? 물론 우리를 위해서 기록해 두신 말씀입니다. 밭을 가는 사람이 희망을 가지고 일하고, 타작하는 사람이 자기 몫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일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영적인 씨를 심어주었는데 이제 여러분에게서 물질적인 것을 거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서 거두어갈 권리를 가졌다면 우리에게는 더 큰 권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고전9:1-12a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자신은 자유인이요, 사도요,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말한다. 특별히 고린도 성도들에 대해서는 자신에게 사도권이 있음을 강조한다. //바울이 가장 먼저 자유인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유인이란 종이 아니라는 뜻이다. 빚을 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바울은 고린도성도들에게 빚을 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비용을 써가면서 고린도 성도들에게 영적인 씨를 심어주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 대해서는 자유인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의 보냄을 받은 종이다. 사도는 자기의 삶이 아니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며 살아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 대해서는 종이 아니라 자유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에게서 거두어갈 권리를 가진자라고 밝힌다. 그러나 사도이기 때문에 보내신 분의 뜻을 따라 그 권리를 포기 했다. //성도는 그에게 복음을 전해 준 사람에게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이다. 이 빚은 복음을 전해 준 사람에게 갚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갚아나가야 한다. 권리를 주장하기 보다 의무를 다해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13:8) 성도가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가지 있다고 교훈하는데 그것은 사랑의 의무다.

고린도전서 8:1-13

고린도전서 8:1-13

고전8:1-13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1장 5절에서 그들의 언변과 지식을 칭찬한 바 있다. 고린도교회 성도는 지식을 자랑했나보다. 바울은 8장을 시작하면서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사람을 향상시켜 주는 것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지식(아는 것)이 믿음을 강하게 하지 (세우지) 않는다. 우상의 제물에 관하여는 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의 지식이 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망하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믿음이 약한 사람의 양심에 상처를 주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로마에 쓴 편지에서 (15:1) 믿음이 강한 사람은 자기 좋을 대로 하지 말고 믿음이 약한 사람의 약점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고 교훈한다. 오늘 본문 첫머리에서 바울은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사람을 향상시켜주는 것은 사랑이다.” 하고 가르친다. 개역개정에서는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번역한다. 사람을 향상시켜주는 것이 곧 덕을 세우는 것이다. 여기서 세운다는 단어는 건축을 의미한다.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으로 적용할 수 있다. //믿음이 강하다고 자기 좋을 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이 좋으실 대로 하시지 앟고 오히려 “하느님을 모욕하는 자들의 모욕을 내가 대신 다 받았습니다.” 라는 성서 말씀대로 사셨다고 바울은 로마서 15:3 으로 가르쳐준다. 우리도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고린도전서 7:25-40

고린도전서 7:25-40 (공동번역)

미혼 남녀에 관해서는 주님께서 나에게 지시하신 바가 없으므로 내 의견을 말하겠습니다. 나는 주님의 자비를 입을 사람이므로 내 말을 믿어도 좋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재난을 생각한다면 남자는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와 헤어지려고 하지 마록 아내가 없는 사람은 아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남자가 결혼한다고해서 죄를 짓는다거나 처녀가 결혼한다고 해서 죄를 짓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결혼한 사람들은 세상 고통에 시달릴 터이므로 여러분을 아끼는 마음에서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내 말을 명심하여 들으십시오. 이제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살고 슬픔이 있는 사람은 슬픔이 없는 사람처럼 지내고 기쁜 일이 있는 사람은 기쁜 일이 없는 사람처럼 살고 물건을 산 사람은 그 물건이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세상과 거래를 하는 사람은 세상과 거래를 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근심 걱정을 모르고 살기를 바랍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에 마음을 쓰지만 결혼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자기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에 마음을 쓰게 되어 마음이 갈라집니다. 남편이 없는 여자나 처녀는 어떻게 하면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에 마음을 쓰지만 남편이 있는 여자는 어떻게 하면 자기 남편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세상일에 마음을 씁니다.
나는 여러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을 속박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분이 아름답게 살며 딴 생각 없이 오직 주님만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욕정을 억제할 수 없어서 자기 약혼녀와 한 약속을 어겨야 할 경우 그 약혼녀에 대해서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어쩔 수 없을 때는 원하는 대로 그와 결혼하십시오. 그래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단단히 마음을 먹고 구태여 그렇게 하지 않고도 자기 생각을 다스릴 힘이 있어서 자기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결심한다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 약혼녀와 결혼하는 것도 잘하는 일지지만 결혼하지 않는 것디 더 잘하는 일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은 남편에게 매이지만 남편이 죽으면 자기가 원하는 남자와 결혼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꼭 교우하고만 결혼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 의견입니다마는 과부는 과부로 혼자 지내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나에게도 하느님의 성령이 계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고전7:25-40
//바울은 자신이 한 말을 믿어도 좋은 이유로 자신이 하나님의 자비를 입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자비을 입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오직 주님만을 섬기는 사람이다. 사심이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자비를 입었다면 주님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다스릴 줄 안다. //결혼에 대한 입장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도 주님의 명령이 아닌 자신의 의견이라고 덧붙인다. //독신도 은사다. 과부와 같이 결혼 후 사별로 독신이 되는 경우도 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서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정결한 처녀로 중매함이로다” 라고 말한다. 성도는 결혼을 했든 독신이든 과부든 그리스도 예수의 신부로 참여한다. 따라서 성령 안에서 결혼관계의 행복을 맛볼 수 있다. 그러기에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행복을 누린다고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