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4:17-25a

열왕기하 4:17-25a (공동번역)

그러나 그 여인은 임신하여, 엘리사가 일러준 다음 해 같은 철이 돌아오자 아들을 낳았다. 그 아이가 자라났다. 하루는 자기의 아버지가 농군과 함께 추수하고 있는 데로 나갔다가 갑자기 “아! 머리야, 머리아!” 하고 아버지께 소리쳤다. 아버지는 함께 있던 하인더러 그를 어머니에게 데려다 주라고 일렀다. 하인은 아이를 어머니에게 데려다 주었다. 그 아이는 정오까지 어머니 무릎에 누워 있다가 죽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을 안고 하느님의 사람이 묵는 방에 올라가 그의 침대에 눕히고 나와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나서 자기 남편을 불러 일렀다. “하인 한 사람과 암나귀 한 마리를 보내주십시오. 급히 하느님의 사람에게 갔다 와야겠습니다.” “꼭 오늘 그분을 가서 뵈어야겠소? 오늘은 초하루도 아니고 안식일도 아닌데.” 하고 묻는 남편에게 여인은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하며, 나귀에 안장을 얹고 나서 하인에게 명하였다. “고삐를 잡아라. 내가 시킬 때까지는 멈추지 마라.” 여인은 길을 떠나 가르멜 산 위에 있는 하느님의 사람에게 갔다.

왕하 4:17-25a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수태고지를 받은 수넴 여인은 말씀대로 아들을 낳았다. 말씀의 성취를 맛보는 행복보다 더 큰 것이 있을까? 그런데 어느 정도 자란 그 아들이 갑자기 죽었다. 이런 낭패가 없다. 차라리 아들을 주시지 마시지. 수넴 여인은 아들이 없었어도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행복에 행복을 더하라고 준 아들이 죽었다. 수넴 여인은 죽은 아들을 엘리사의 방에 눕히고 엘리사를 찾아 떠났다. 남편에게는 걱정하지 말라고만 말했다. 수넴 여인이 아들의 죽음이라는 큰 문제를 두고도 남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샬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바라지 않은 것을 주신 하나님께 이제는 바랄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부족함이 하나님을 찾게 한다. 부족함에도 자족할 수 있는 마음도 복이지만, 부족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도 복(샬롬/평안)이다. 그래서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낮은)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 수넴 여인은 고삐를 잡은 하인에게 하나님의 사람에게 갈 때까지 멈추지 마라고 당부했다. 쉬지말고 기도하는 자세다.

열왕기하 4:8-16

열왕기하 4:8-16 (공동번역)

엘리사가 하루는 수넴을 지나가게 되었다. 거기에 살고 있던 한 부유한 여인이 엘리사를 대접하고 싶다면서 머무르기를 간청하였다. 그래서 엘리사는 그 곳을 지날 때마다 그의 집에 들러 식사를 하고 하였다. 그 여인이 남편에게 말하였다. “여보, 틀림없이 우리 집에 들르시는 이분은 거룩한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옥상에 작은 방을 하나 꾸미고 침대와 상, 의자와 등을 갖추어 그분이 우리 집에 들르실 때마다 그 방에 모시도록 합시다.” 어느날 엘리사가 거기에 갔다가 그 다락방에 놀라가서 쉬게 되었다. 엘리사는 시종 게하지에게 그 집의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고 일렀다. 그가 여인을 불러오자 여인은 예언자 앞에 나섰다. 엘리사가 자기 시종에게 말하였다. “부인게 이렇게 여쭈어라. ‘부인, 수고가 많으시오. 이 은혜를 갚고 싶소. 내가 부인을 위하여 왕이나 아니면 군사령관에게 부탁드려 줄 수도 있는데, 무슨 아쉬운 일이 없으시오?” 그러자 “저는 이렇게 한 겨레 가운데 어울려 만족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하고 여인이 대답하였다. 엘리사는 시종에게 물었다. “그러면 이 부인에게 해줄 일이 없을까?” “이 부인은 아들이 없는데다가 남편은 나이가 많아 보기에 참 딱합니다.” 하고 게하시가 대답하였다. 그러자 엘리사는 그 여인을 다시 불러오라고 일렀다. 시종이 여인을 불러오자 여인은 문간에 섰다. 엘리사가 말하였다. “내년 이맘때 같은 철이 돌아오면 부인께서는 아이를 낳아서 안게 될 것이도.” 여인이 대답하였다. “그럴 수 없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저에게 농담을 하십니까?”

왕하4:8-16
//엘리사와 수넴 여인. 수넴 여인은 과부와 달리 부자였다. 과부는 엘리사를 찾아와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했다면, 부자 수넴 여인은 자신의 부로 엘리사를 섬겼다. 수넴 여인이 엘리사를 섬긴 이유는 엘리사를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가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인줄 어떻게 알았을까? 과부를 도운 이야기도 들어서 알고 있었을까? //하여간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가 주로 왕들에게 하나님의 신탁을 전했던 것과 달리 민중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일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과부의 문제에는 피동적으로 대처했던 엘리사는 수넴 여인에게는 능동적으로 다가갔다. 자신을 환대하는 수넴 여인에게 보상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때는 남녀칠세부동석이었나! 엘리사는 시종을 사이에 두고 수넴 여인에게 필요한 것이 있냐고 물었다. 수넴 여인은 아쉬운 것 없이 만족스럽게 산다고 대답하고 돌아갔다. 엘리사는 시종에게 어떻게 보상하면 좋을지 물었고 시종은 수넴 여인에게 자식이 없다고 말을 했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을 다시 불러 수태고지를 했다.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이 어찌 농담하느냐고 말을 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천사의 역할을 한 것이다. 수태고지는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천사의 몫이다. 그러니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이자 하나님의 천사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성도도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천사다. 곧 하나님의 다스림만으로 사는 존재들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천사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로 이웃에게 사람을 베풀며 살게 하소서.

열왕기하 4:1-7

열왕기하 4:1-7 (공동번역)

예언자 수련생의 부인 하나가 엘리사에게 호소하였다. “선생님의 제자인 제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아시다시피 그이는 야훼를 경외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이에게 빚을 주었던 사람이 제 두 아들을 종으로 끌어가겠다고 합니다.” 엘리사가 그 여인에게 말하였다. “내가 어떻게 하면 당신을 도울 수 있겠소? 집안에 남아 있는게 무엇이오? 말하시오.” 여인이 대답하였다. “집안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기름 한 병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말하였다. “돌아가서 당신의 모든 이웃으로 다니면서 그릇을 빌려오시오. 빈 그릇을 되도록 많이 빌려다가 두 아들만 데리고 집에 들어가서 문으 잠그고, 기름을 그 모든 그릇에 차례차례로 가득히 따라 부으시오.”
여인은 엘리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서 두 아들만 데리고 집 안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는 두 아들이 가져다 주는 그릇에 가득가득 부었다. 그릇마다 기름을 다 채우고 나서 여인은 아들에게 말하였다. “그릇을 더 가져오너라.” 아들이 “그릇이 더 없습니다.” 하자, 기름이 나오기를 멈추었다. 여인이 하느님의 사람에게 가서 이 일을 보고하자 그는, “가서 기름을 팔아 그 돈으로 빚을 갚아서 두 아들이 종으로 끌려가지 않게 하시오. 남은 것을 가지고 모자가 함께 살 수 있을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왕하 4:1-7
//왕들의 역사책에 왕과 관련 없는 엘리사의 이야기가 또 포함 된다. 선지자 생도의 남은 가족을 돌보는 엘리사의 이야기다. 하나님의 사람은 국가적 민족적 선지자의 역할만 감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귀퉁이에서 개인적 돌봄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간다. //빚도 갚고 과부와 두 아들이 함께 살아가려면 얼마나 많은 기름이 있어야 할까? 굉장히 많은 기름이 필요할 것이다. 그 많은 그릇(용기나 항라리)을 어디서 빌려올 수 있었을까? 하여간 이웃사람들이 그들에게 그릇을 빌려주었다니 다행이다. 빚쟁이도 있지만 선한 이웃도 있다. //그러나 선지자 생도 과부 가족이 겪는 어려움은 그 사회가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야고보는 (야고보서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고 권면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실천은 뒤로 미룬 채, 세속에 물들지 않고자 각종 교회 프로그램만 양산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우리는 빈그릇을 빌려주는데서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남는 그릇에 뭐라도 담아 거져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동네에 임대주택이 들어와도 환영하고 장애인 시설이 들어와도 기뻐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성도라면 이런 일에 앞장서야 한다.

열왕기하 3:13-27

열왕기하 3:13-27 (공동번역)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말하였다.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습니까?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예언자들에게나 가보십시오.” 그러나 이스라엘 왕은 그에게, “아니오. 야훼께서 우리 세 왕을 불러내시어 모압 군대의 밥이 되게 하셨소.”하고 말하였다. 엘리사가 대답하였다. “내가 모시는 만군의 야훼께서 살아 계시오. 어찌 내가 당신을 거들떠보기라도 하겠습니까마는,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보아서 청을 들어드리겠습니다. 수금 뜯는 사람을 불러주십시오.” 그래서 수금 뜯는 사람이 와서 수금을 뜯는 동안, 엘리사는 야훼의 힘에 사로잡혀 말씀을 전하였다. “야훼게서 말씀하십니다. ‘이 골짜기 군데 군데에 웅덩이를 파라. 나 야훼가 말한다. 너희가 바람 불고 비 오는 것을 보지 못하겠지만,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차서 너희와 너희 군인들과 짐승들이 마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쯤은 야훼로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야훼께서는 당신들의 손에 모압을 넘겨주실 것입니다. 당신들은 요새화된 성읍, 주요 도시를 모두 쳐서 점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수목을 모조리 쓰러뜨리고 샘구멍을 남김없이 틀어막고 옥토를 모조리 돌밭으로 만드십시오.”
다음날, 아침 제사를 드리는 시간이 되자 에돔 쪽에서 물이 쏟아져 나와 그 일대가 물바다가 되었다. 한편 여러 나라의 왕들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모압 전국에 퍼졌다. 그래서 징집 연령이 지난 사람은 모두 소집되어 국경에 배치되었다. 모압 군은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햇살이 물 위에 퍼져 있어 물이 피처럼 붉게 물들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피바다로구나!” 하고 모압 군은 소리쳤다. “왕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서 서로 쳐죽인 게 틀림없다. 모압 장벼을아, 나가서 털자!”
그러나 이스라엘 진지에 이르자 이스라엘 군이 일어나서 반격하였다. 그들은 도망치는 모압 군을 뒤쫓아가며 쳐부수었다. 도시들을 짓부수고 군인들이 모두 달려들어 좋다는 밭마다 돌을 던져 돌밭을 만들고, 샘이라는 샘은 모두 틀어막고 훌륭한 나무를 모조리 찍어 넘겼다. 그리하여 마침내 키르하레셋만 남기고 모든 곳이 돌무더기가 되었는데 그 곳마저 투석병들이 포위하고 공격하자 모압 왕은 이미 전세가 기운 것을 깨닫고는 군인 칠백 명을 이끌고 칼을 빼들고 포위망을 뚫어 아람 왕에게로 탈출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일도 실패하였다. 모압 왕은 세자인 맏아들을 죽여 성 위에서 번제를 드렸다. 그러자 무서운 신의 진노가 이스라엘 군에 내려, 이스라엘 군은 진을 거두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왕하3:13-27
//엘리사는 모압원정은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시작한 전쟁이라고 반응한다. 이스라엘 왕이 물이 없어 모압군대의 밥이 되어버릴 상황이라고 읍소하자, 엘리사는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봐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겠다고 대응했다. 이렇게 이스라엘 왕이 시작한 전쟁을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고 있는) 유다 왕 덕분에 하나님 앞에 다시 올려졌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손(힘)에 사로잡혀, 곧 성령에 붙들려 이스라엘 유다 에돔 연합군이 비가 오지 않아도 물을 해결할 수 있고, 또 전쟁에서도 모압 성읍들을 차지하고 수목을 쓰러뜨리고 샘구멍을 틀어막고 옥토를 돌밭으로 만들 것이라는 신탁을 받았다. //전쟁의 양상은 신탁대로 흘러갔다. 도시들을 짓부수고 밭을 돌밭으로 만들고 샘을 틀어막고 수목을 찍어 넘겼다. 신탁대로 성취되었다. 모압 왕은 길하레셋 성읍으로 피신했다가, 전세가 완전히 기울자 아람왕에게 도움을 구하려 탈출하려고 했지만 그마저 실패했다. //그런데 이상한 반전이 일어났다. 궁지에 몰린 모압 왕이 장자를 번제로 드리자 무서운 신의 진노가 이스라엘 군에 내렸다. 여기서 무선운 신은 누구인가? 모압의 신, 하나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시는 인신제사를 받는 그모스 신인가?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그모스 신에 의해 싸움을 그치고 돌아갔나? 열왕기의 저자는 이스라엘의 패배라고 적지는 않았다. 다만 전쟁을 그치고 돌아간 것으로 기록한다. 무서운 신의 진노를 하나님의 진노로 이해하려는 해석들도 있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뜻을 묻고 시작해야 한다. 무턱대고 시작해놓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을 할 때도 지나치면 과유불급이다. 좋은 게 최선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열왕기하 3:1-12

열왕기하 3:1-12 (공동번역)

유다 왕 여호사밧 제십팔년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위에 올라 십이 년을 다스렸다. 그는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였지만 그의 부모처럼 악하지는 않았다. 그는 부왕이 만든 바알의 주상을 철거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린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저질렀던 것과 같은 죄에 매여 그것을 떨쳐버리지는 못하였다.
모압 왕 메사는 목축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왕에게 암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조공으로 바쳐왔었다. 그러다가 아합 왕이 죽자 모압 왕은 이스라엘 왕에게 반기를 들었다. 여호람 왕은 즉각 사마리아를 떠나 이스라엘 군을 총동원하여 출정하는 한편,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전갈을 보냈다. “모압 왕이 나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모압을 치러 갈 터인데 당신도 함께 가서 싸워주시지 않겠습니까?” 유다 왕이 대답하였다. “함께 가겠습니다. 우리가 내 것 네 것 찾을 사이입니까? 내 군대 네 군대, 내 군마 네 군마 따질 사이입니까? 어느 길로 쳐들어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에돔 광야를 통과합시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왕, 유다 왕, 에동 왕이 함께 출정하였다. 돌아가는 길로 칠일 동안 행군하였는데 그만 군인들과 데리고 하는 짐승들이 마실 물이 떨어졌다. 이스라엘 왕이 걱정을 하였다. “큰일 났다. 야훼께서 우리 세 왕을 끌어내셔서 모압 군대의 밥이 되게 하셨구나.” 그러나 여호사밧 왕은 이렇게 물었다. “여기 야훼의 예언자가 없습니까? 야훼의 뜻을 알아보게 말입니다.” 이스라엘 왕의 신하 하나가 “마침 사밧의 아들 엘리사라는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엘리야의 시중을 들던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에게서라면 야훼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이오” 하고 여호사밧이 말하였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왕은 여호사밧과 에돔 왕과 더불어 엘리사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왕하3:1-12
//아합 왕이 죽자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치던 모압이 반기를 들었다. 이스라엘 왕은 유다 왕과 동맹하고 길을 내준 에돔 왕과 연합하여 모압을 치러 원정을 떠났다. 세 왕의 연합은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강으로 남기 위한 처사였다. //이들의 원정은 물부족의 어려움을 만났다.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께 원망했고 유다 왕은 그제서야 모압원정이 하나님의 뜻인지 묻고자 했다. 에돔 왕은 /정/명(모압)/가/도/를 요구하는 이스라엘 왕에게 길을 내 준 것 뿐이었지 실제 군대를 파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다 왕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 선지자를 찾았다. 이스라엘 왕의 신하 하나가 엘리사가 가까운 곳에 있다고 말했다. 엘리야의 시중을 들던 선지자라는 말에 유다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두 왕과 더불어 엘리사를 찾아 내려갔다. 여전히 엘리야의 그늘에 있는 엘리사!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약육강식으로 몰아부쳐서는 안 된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치러지는 전쟁이 약육강식의 전략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나 강대국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그런데 서로 하나님이 자기 편이라고 착각한다.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전쟁이라면,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전술이라면 하나님께서 친히 전쟁의 방해군이 되실 것이다. 하나님은 전쟁이 아니라 화평을 원하신다. 다만 전쟁을 통해 불순종의 백성들과 이방들을 벌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