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2:13-28

열왕기상 22:13-28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람이 미가야에게 모든 예언자들이 한결 같이 만사가 왕의 뜻대로 되리라고 예언하였으니 미가야도 같은 말로 예언하라고 당부했다. 미가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야훼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시 것을 그대로 전하겠다고 대답했다.
미가야가 왕에게 나오자 왕이 라못 길르앗을 공격하는 것이 좋은지 물었다. 미가야는 야훼께서 라못 길르앗을 임금님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니 쳐 올라가 정복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왕은 역정을 내면서 야훼의 이름으로 진실만을 말하도록 서약하게 했다. 미가야는 야훼께서 이스라엘이 이산 저산으로 흩어지는 목자 없는 양 떼 같으니 모두들 고이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왕은 유다왕 여호사밧에게 미가야는 이처럼 만사가 되지 않는다고만 하는 자라고 말했다.
미가야는 야훼께서 자신에게 (환상으로) 보여준 천상의 회의를 알려주었다. 모든 예언자들이 라못길르앗으로 올라가라고 예언하는 것은 천상 회의에서 한 영이 아합을 꾀어내겠다는 제안을 야훼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야훼께서는 이스라엘 왕의 모든 예언자들의 입에 거짓말하는 영을 넣으셨으며, 야훼께서 이스라엘 왕에게 재앙을 내리시기로 결정하셨다고 말했다.
그러자 시드키야가 미가야에게 다가와 뺨을 치며 호통을 쳤다. 야훼의 영이 자신을 떠나서 미가야에게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가야는 시드키야가 골방으로 피신해 들어가는 날이 올 텐데 그때 스스로 알게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스라엘 왕은 미가야를 투옥시키고 자신이 전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이라고 명령했다. 미가야는 이스라엘 왕이 무사히 돌아만 오신다면 자신이 한 말이 야훼의 말씀이 아닌 것으로 판명날 것이라고 말했다.

열왕기상 22:13-28
//하나님의 예언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만 전하는 사람이다. 이에 반해 아합이 불러모은 예언자들은 임금의 뜻대로 예언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예언자 미가야를 부르러 갔던 사람은 미가야에게도 임금의 뜻대로 예언하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언자는 그럴 수 없었다. 그냥 예언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예언자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왕은 미가야가 야훼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은 긍정적인 예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스라엘 왕이 미가야에게 야훼의 이름으로 예언하라고 하자 그제서야 임금의 뜻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신탁을 전했다. 역시 이스라엘 왕의 뜻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미가야는 다른 예언자들의 예언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거짓 영을 넣으셨기 때문이라고 천상회의를 공개한다. (욥은 천상의 회의를 보지 못해 그토록 심한 고통을 받았었는데…) 물론 다른 예언자들은 자신들이 거짓 영에게 속고 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시드기야가 앞장서서 미가야에게 반박한다. 시드기야는 미가야의 뺨을 때리며 호통쳤고, 이스라엘 왕은 전쟁을 마칠때까지 미가야를 투옥시키라고 명한다. 미가야는 임금님이 무사히 돌아온다면 자신의 말이 거짓으로 판명될 것이겠지만, 하나님께서 왕에게 내리실 재앙이 말씀대로 성취되리라 자신했다. 참 예언자의 진위는 결국 말씀의 성취 여부로 결정된다. ////참 성도의 진위는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결정된다.

열왕기상 22:1-12

열왕기상 22:1-12

시리아가 이스라엘에 형제관계로 굴복한 후 삼년 동안 평화가 이어졌다. 이때 유다 왕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을 방문했다. 이스라엘 왕은 신하들에게 시리아로부터 라못 길르앗을 아직 돌려받지 못하고 있으니 이래서 되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여호사밧에게 함께 시리아를 치러가겠느냐고 물었다. 여호사밧은 유다와 이스라엘은 하나라고 말하고 야훼께 당장 물어보자고 이스라엘 왕에게 제안했다. 이스라엘 왕은 예언자들을 사백 명이나 모아놓고 라못 길르앗을 치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 물었다. 예언자들은 야훼께서 라못 길르앗을 임금님 손에 부치실 것이니 공격하라고 말했다. 여호사밧은 야훼의 예언자는 없는지 물었다. 이스라엘 왕은 여호사밧에게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가 야훼께 여쭈어줄 수 있는데 그는 자신을 싫어해서 자신이 하는 일이면 사사건건 부정적으로 말하고 한 번도 긍정적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고 대답했다. 여호사밧은 한 나라의 왕으로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니라고 말을 받았다. 이스라엘 왕은 결국 미가야를 불렀다.
이스라엘 왕와 유다 왕이 옥좌에 나란히 앉아 있었고 예언자들이 두 왕 앞에서 예언하고 있었다. 그 중 시드키야는 쇠로 만든 뿔을 몇 개 가지고 나와서 야훼께서 이 뿔들로 시리아 군을 들이받아 전멸시키리라고 예언했다. 모든 예언자들이 같은 예언을 했다.

열왕기상 22:1-12
//예언자와 하나님의 예언자. 이스라엘 왕이 불러모은 예언자의 숫자가 사백명이다. (갈멜산에 모였던 아세라 예언자의 수와 같다. 갈멜산에서는 바알 예언자 사백오십 명만 죽였나보다. 뭐 제사장도 맘대로 세우는 나라에, 아첨하는 예언자가 수천 명인들 이상할리 없다. 잡신들 수만큼 예언자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 하여간 유다왕 여호사밧의 눈에는 이들이 야훼의 예언자로 보이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가 굳이 꼭 집어 야훼의 예언자를 찾았다는 것이 그 증거다. //예언자들은 신(하나님)에게서 들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다.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들어야 하고, 듣기 위해서는 물어야 한다. 아합이 소집한 예언자들이 그들의 하나님(신)께 물었다거나 들었다는 기록이 없다. 그냥 야훼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덧붙일 뿐이다. 그들은 생전 하나님(신)으로부터 말씀을 들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하나님(신)은 생명이 없는 우상이기 때문이다. //예외는 있겠으나 야훼 하나님의 예언자들의 신탁은 주로 조건적/경고성이거나 징벌적 경향이 강하다. 평안의 신탁은 거의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아합이 미가야가 자신에게 부정적으로만 신탁을 전한다고 말한 것으로보아 미가야는 하나님의 예언자의 전형을 따르는 사람이다. 아합이 인정한 대로 그는 야훼께 물어볼 수 있는 예언자다. 물어볼 수 있으니 들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우상을 좋아하는 이유는 듣기 싫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상이 말할리 만무다. 참된 신탁보다 빈말이라도 아니 거짓이라도 평안의 위로를 듣기 원하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는 술사들을 찾는다. 오늘날 점집을 찾는 사람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야 할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열왕기상 21:17-29

열왕기상 21:17-29

야훼의 말씀이 디스베 사람 엘리야에게 내렸다. 야훼께서 엘리야에게 이스라엘 왕 아합이 있는 나봇의 포도원으로 가라고 하신다. 가서 아합에게 ‘네가 사람을 죽이고 그의 땅마저 빼앗는 구나. 나봇의 피를 핥던 개들이 같은 자리에서 네 피도 핥으리라’ 하고 전하게 하셨다. 아합 왕이 엘리야에게 원수를 또 만났다고 말하자, 엘리야는 왜 목숨을 내던져 가며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느냐며 다음과 같이 야훼의 말씀을 전했다. [내가 이제 너에게 재앙을 내리겠다. 나는 네 후손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이스라엘에 있는 아합의 가문에 속한 사내는 자유인이든 종이든 씨도 없이 죽이리라. 나는 너의 왕조를 여로보암과 바아사의 왕조처럼 만들리라. 네가 이스라엘의 죄에 빠뜨려 그토록 내 속을 썩였는데 어찌 그냥 내버려두겠느냐? 개들이 이즈르엘 성 밖에서 이세벨을 찢으리라. 아합 가문에 속한 자가 성 안에 죽으면 개들이, 성 밖에서 죽으면 새들이 쪼아 먹으리라.]
사관은 아합처럼 아내 이세벨의 농간에 빠져서 목숨을 내던져 가며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으며, 아합은 참으로 못할 짓을 했다고 평가한다. 야훼께서 이스라엘 백성 면전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들을 본떠 우상을 만들어 섬기기까지 했다. 그런데
아합이 엘리야의 말을 듣고나서 자기 옷을 찢으며 굵은 베옷을 걸치고 단식에 들어갔다. 굵은 베옷을 입은 채 자리에 눕고 일어났다. 깨어 있을 때도 풀이 죽어 있었다. (드디어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한다.) 야훼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아합이 하나님 앞에서 얼굴도 들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그토록 낮추었으니 그의 생전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 그러나 그의 아들 대에 가서 그 가문에 재앙을 내리겠다고 하셨다.

열왕기상 21:17-29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을 이룬다. 엘리야는 나봇의 포도원에 가서 아합에게 하나님의 신탁을 전했다. 아합은 이번에는 침울한 심정에 머물지 않는다.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다. (감히 하늘을 울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오 하나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 기도한 세리가 떠오른다. 예수께서는 이 세리가 하느님께 올바를 사람으로 인정받았다고 말씀하셨다. – 눅18:13-14)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고 회개하는 아합에게 아합 생전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고 자비를 베푸셨다. (경고성 신탁은 말 그대로 경고에서 그칠 수 있으나 징벌적 신탁은 늦출 수는 있어도 돌이킬 수 없다. 벌은 받아야 한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필요한 이유다.) //목숨을 내던져가며 하나님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한 아합이 하나님의 자비를 입었다. 우리 성도도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지만 그리스도로 미암아 하나님의 자비를 입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비를 베푸는 일에 약하다.ㅠ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자비를 베푸는 자가 자비를 입는 복을 누린다고. 할 수 있는 대로 자비를 베푸며 살게 하소서. 하늘나라 백성으로 살라고 하신다.

열왕기상 21:1-16

열왕기상 21:1-16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의 별궁 근처에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날 아합이 나봇을 만나 별궁 근처의 포도원을 자신에게 양도하라고 말했다. 아합은 포도원을 정원으로 만들고 싶어 돈을 주고서라도 사고자 했다. 그러나 나봇은 아합 왕의 청을 거절했다. 선조들에게서 받은 포도원을 임금님께 드리면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거절했다. 나봇이 포도원이 선조의 유산이라는 이유로 거절하자 아합은 침울한 심정이 되어 별궁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워 식음을 전폐했다. 아내 이세벨이 들어와 아합에게 왜 이렇게까지 상심하냐고 물었다. 왕이 자초지종을 말했다. 이세벨이 아합에게 왕답게 처신하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나봇의 포도원을 선물로 주겠다고 말했다. 이세벨은 아합의 이름으로 밀서를 써서 옥새로 봉인하고 나봇이 사는 관할 원로들과 지방 어른들에게 보냈다. 나봇이 하느님과 왕을 욕하였다고 고발하여 나봇을 돌로 쳐죽이라는 내용이었다. 관할 원로들과 지방 어른들은 이세벨의 밀서대로 행한후 이세벨에게 보고했다. 이세벨은 아합 왕에게 나봇이 더이상 이세상 사람이 아니니 포도원을 차지하라고 말했다. 나봇이 죽었다는 말에 아합은 포도원을 차지하기 위해 내려갔다.

열왕기상 21:1-16
//침울한 심정! 지난 본문에서 예언자가 시리아 왕을 놓아준 책임이 이스라엘 왕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신탁을 전하자 아합 왕은 침울한 심정으로 사마리아로 돌아갔다고 사관은 기록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 구입을 거절 당하자 침울한 심정으로 별궁으로 돌아왔다고 기록한다. 그런데 그 정도가 다르다. 아합은 포도원을 구입하지 못하자 침울한 나머지 자리에 눕고 식음을 전폐하기까지 상심했다. 아니 어느 상황이 더 침울한 상황인가? 시리아 왕을 놓아 준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던가? 이것이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아닌 세상 근심의 전형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을 이루게 하지만, 세상 근심은 사망이다. (고후 7:10) //아합과 이세벨. 아합 왕에게는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있었다. 땅(토지)에 대한 율법적 전통이 아합의 마음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방 왕의 딸이었던 왕비 이세벨은 달랐다. 사무엘이 삼상8에서 왕정 폐해에 대해 경고한 그대로, 백성을 착취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심지어 이세벨은 공작정치로 나봇을 아예 죽여버렸다. (다윗이 우리야를 죽인 사건이 떠오른다.) 아합은 이세벨의 공작정치에 대해 무감각하다. 단지 선조의 유산이어서 포도원을 팔지 않겠다던 나봇이 죽었으니 포도원을 취할 수 있다고만 생각한 것 같다. 이런 아전인수적 태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리 없다. ///우리는 무엇으로 근심하는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는가? 아니면 세상 염려로 근심하는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열왕기상 20:31-43

열왕기상 20:31-43

도망하여 골방에 모인 시리아 신하들은 벤하닷에게 이스라엘 역대 왕들은 신의를 지키니, 자신들이 항복의사를 밝히면 이스라엘 왕이 벤하닷을 살려줄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스라엘 왕 앞에 나가 시리아가 이스라엘의 신하 나라라고 낮추며 벤하닷의 목숨을 구걸했다. 이스라엘 왕은 시리아와는 형제나라라며 벤하닷을 의형제라고 불렀다. 시리아 사절은 군신관계를 생각하고 왔는데 형제관계라고 하니 때를 놓칠세라 벤하닷이 이스라엘 왕의 의형제라고 받아쳤다. 이스라엘 왕은 벤하닷을 데려오게 해서 자기 수레에 태웠다. 벤하닷은 자기 부친이 빼앗은 이스라엘 성읍들을 돌려주고 무역도 재개하겠다고 약속하니 풀어달라고 말했고, 이스라엘 왕은 벤하닷을 놓아 주었다.
예언자 한 명이 야훼의 명을 받고 한 동료에게 자신을 때리라고 말했다. 그 동료가 거정하자 그 예언자는 동료에게 야훼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으니 길에서 사자를 만나 죽을 것이라고 말했고 그렇게 되었다. 예언자는 다른 사람에게 다시 자신을 때려달라고 말했다. 그는 예언자를 때려 상처를 입혔다. 그 예언자는 눈을 천으로 가리고 변장하여 왕을 만나 말했다.어떤 사람이 전쟁 포로를 데려와 잘 감시해달라고 말하면서 놓치면 대신 죽거나 은 한 달란트를 몸값으로 내야하는데, 바쁘다보니 포로가 도망쳤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왕은 말한대로 책임을 져야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예언자가 눈을 가렸던 천을 풀자 이스라엘 왕은 그가 예언자임을 알아보았다. 예언자는 이스라엘 왕에게 죽어야 할 자를 놓아주었으니 야훼께서 이스라엘 왕을 죽이겠고, 시리아 백성 대신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시겠다는 신탁을 전했다. 이스라엘 왕은 침울한 심정으로 사마리아 성으로 돌아갔다.

열왕기상 20:31-43
//승리에 취하면 술취한 것처럼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다. 승전에 도취된 이스라엘 왕은 군신관계로 이스라엘을 섬기겠다는 시리아 왕을 형제관계로 세워주었다. 벤하닷은 영토회복과 무역재개라는 보석금을 약속만하고도 풀려난다.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잊고 자만한 결과다. //이스라엘이 신의를 지키는 나라라는 것을 시리아가 알 정도였다. 시리아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이것을 악용?했고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에 속는다. 문제는 그 후유증이다.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해 시리아에 속은 이스라엘 왕과 백성이 그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신탁하신다. 승전의 기쁨이 한 순간만에 침울함으로 바뀐다.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그러나 잘못을 청산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비냐 청산이냐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있다. 한 동료가 자신의 때려 달라는 예언자의 요청을 거절했다가 죽임을 당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요청인 줄 몰랐기 때문이었을까? 동료라면 그도 예언자였을 것인데…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된다. 자비를 베푸는 기준은 내 뜻이 아니라 말씀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