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8:26-35

모압의 멸망을 술취한 자가 필름이 끊긴 것같이 모압도 기억속에서 사라질 것을 예언하신다. 아니 교만의 술을 마신 것이 결국은 주님의 진노의 잔을 마신 꼴이 되어버린다.

모압은 혈육? 이스라엘을 조롱할 정도로 자고 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모압을 성에서 쫓아 내신다.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은 모압에 대해 주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모암의 교만함을 안다. 허풍뿐인 모압이다. 그의 입에는 거짓뿐이다.

그래서 주님은 모압의 멸망을 애곡하시겠다면 삐꼰다. 모압은 애도밖에는 받을 것이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통곡에 통곡을 더하신다. 기쁨과 흥을 빼앗으신다. 향기나고 깨끗한 술은 빚을 수도 없다. 폐허에서 들리는 울음소리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모압의 산당에서 제사드리는 자들을 진멸시키겠다. 주님의 말씀이시다.

// 모압의 교만은 형제 이스라엘을 멸시하는데까지 치달았다. 주님은 이런 모압을 간과하시지 않으신다. 모압의 산당에서 제사드리는 자들은 결국 교만이라는 모압의 정체성을 따르는 자들이다. 교만한 자들은 결단코 주님나라에 들어올 수 없다.

 

예레미야 48:11-25

모압. 외침을 당하거나 포로로 잡혀가 본 적 없는 모압을 이 그릇 저 그릇에 옮겨 담지 않아서 밑술이 (술 찌꺼기가) 가라 앉은 채 있고 술은 말갛게 떠 있어 향기가 변하지 않고 맛이 한결같은 술에 비유하신다.

그런데 주님이 술을 옮겨 부울 사람을 보내신다고 하신다. 아니 술독을 비우고 술병을 부수겠다고 하신다. 모압이 의지하는 그모스 신 때문에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은 벧엘에 세운 금송아지를 의지하다 수치를 당했다.)

스스로 용사들이요 날렵한 군인이라고 뽐내봤자 (주님이 심판자들을 보내시는 날) 모압의 용사들을 살육을 당한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주님은 세상 모든 나라의 왕이시다.

모압이 패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패망의 재앙이 닥쳤다고 하신다. 모압과 연합한 나라들, 모압의 술을 나눠마시던 이웃나라들이 모압의 패망에 놀라고 슬퍼할 것이라고 하신다. 모압이 망하였다. 모압이 망하였다.

모압의 고원지대 (평지)와 모압 땅 원근 각지에 있는 모든 성읍들이 망하였다. 모압 왕조가 모압의 권세가 망했다. 주님의 말씀이다.

// 평생 말갛게 살아왔어도, 날쌘 용사라고 자부해도, 주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다. 천연요새 고원평지도, 인위적으로 세운 성읍들도 모두 주님의 심판앞에는 무용지물이다. 주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벧엘을 의지하다 망했는데 그모스 신을 의지하는 모압이 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주님없는 평안은 어쩌면 술독에 빠져 지내는 것이다. 독주가 아니더라도 말갛고 향기로운 술이라도 취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방탕한 것이다.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엡 5:18) 바로 앞절과 함께 읽으면 술 취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이요,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은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는 것이다. (엡 5:17)

예레미야 46:13-28

주님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애굽을 치실 일에 대해 더 자세히 말씀하신다.

애굽이 나름 믹돌, 놉, 다바네스에서 바벨론에 대항하여 굳건히 /서/자/고/ 선포하지만, 애굽의 운명은 /쓰/럼/짐/이다. 그들이 서지 못함은 주님께서 그들을 물아내셨기 때문이라고 분명이 밝힌다.

(어제 본문에 따르면) 유브라데 강까지 진격하지만 애굽은 주님의 뜻대로 쓰러졌다. 애굽 병사들은 도망쳐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그곳에서 망하고 만다. 애굽 바로 왕은 망했다. 왕조의 운명이 다했다. 주님이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을 산중의 산과 같이 해변에 솟은 갈멜산 같이 사용하셔서 애굽을 치신다.

애굽의 도시, 놉도 불타고 애굽의 백성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다. 과거의 영화는 뒤로하고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다. 애굽이 불러모은 주변국 군사들도 도망할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재난의 날이다.

애굽 백성들은 뱀같이 신음소리도 죽이고 숨어야 한다. 바벨론 군대가 벌목하듯 도끼를 가지고 오기 때문이다. 메뚜기 떼같이 와서 벌목할 뿐아니라 남은 수풀까지 갉아 먹을 것이다. 애굽은 수치스럽게 바벨론에게 망할 것이다.

애굽의 멸망은 애굽을 의지하는 이스라엘에게 교훈이 되어야 한다. 애굽을 의지하는 자들의 운명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다만 주님은 남은 자를 돌보신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놀라지 말라고 하신다. 포로잡힌 곳에서 구원하셔서 돌아와 평안히 살게 될 것이며, 대적이 없을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임마누엘을 또다시 말씀하신다. 멸망가운데 보존하신다. 그러나 법대로 징계하신다.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시지는 않으신다.

// 주님은 순종하는 자들과 함께 하신다. 주님은 함께 하시실 원하시는데 우린 불순종으로 주님을 떠난다. 주님은 법대로, 약속대로 하신다. 그러니 우리의 무죄함은 주님과 함께 할 때다. 주님을 떠나서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않으신다고 하신다. 복음이다.

예레미야 46:1-12

주님의 말씀은 이스라엘과 유다에 집중하지만, 주님은 열방의 주님이시다. 주님은 이방나라들에 대하여도 말씀하신다. 예레미야를 통한 말씀은 구원과 회복에 대한 소망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재앙의 예언이다. 불순종한 백성과 악한 이방에 대한 재앙의 예언이다.

제일 먼저 애굽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었다. 구체적으로 유다 여호야김 왕 네째해에 일어났던 애굽과 바벨론의 갈그미스 전쟁에 관해 주님이 풀어주신다. (예언이기도 하겠지만 역사에 대한 해석으로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애굽은 바벨론을 맞아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애굽 군대는 패하여 황급히 도망했다. 애굽 군대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유브라데 강까지 올라갔지만 바벨론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애굽은 나일강이 범람해서 온땅을 덮어 버릴듯한 나라였다. 그 기세는 주변 나라들을 멸절시키고 복속시켰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구스사람과 붓사람과 루딤사람들까지 끌여들여 바벨론을 공격했었다. 그런데 그날이 애굽이 패전하는 날이 되었다. 주님이 그날을 애굽에 대한 심판일로 삼으셨다. 애굽에 대한 주님의 심판은 치명적인 것이었다. 세상모든 나라에 울부짖음이 들릴정도로 회복 불가능한 패전이었다. 자중지란의 패전이었다.

// 세상 역사도 주님이 주관하신다. 주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신)만이 아니시다. 창조주시며 역사의 주관자시다. 나일 강의 범람도 주님이 주관하시고 유브라데 강의 창궐도 주님이 일으키신다. 그러나 나일의 번영도 유브라데의 번성도 영원하지 않다. 주님의 심판대에 서야 한다. 이방나라에 대해서도 차별이 없으시다.

예레미야 45

다시 여호야김때로 돌아간다. 예레미야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 바룩에게 불러주면 바룩은 주님의 말씀을 두루마리에 적는다.

주님의 말씀을 받는 예레미야나 그 말씀을 받아 적는 바룩이나 얼마나 암담했을까? 말씀을 받아 적으면서 고통과 슬픔에 잠겨있는 바룩에게 주님께서 위로의 말씀을 하신다. 평안이라곤 도무지 없는 바룩에게 말씀하신다.

주님은 심기도 하시고 뽑기도 하시는 분이시다. (음 좀 강하게 말하자면) 오직 나 주님만이 심기도 하시고 뽑기도 하신다. 그러니 네가 스스로 무엇을 하려고 하지마라. 재앙은 돌이킬 수 없다. 그래도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나 주님이 너의 생명은 지켜주겠다.

// 고통과 슬픔중에 평안을 구하는데 재난중에 생명만은 지켜주겠다는 것이 위로의 말씀이 될까?
// 목숨을 건지도록 보살펴 주신다니 영생이 아닌가? 재앙가운데도 임마누엘을 누린다면 구원이고 영생이다. 태평성대라도 임마누엘이 아니면 생명이 없다.
// 주님을 알고 주님의 아신 바 됨이 영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