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20-30

마태복음 11:20-30 (공동번역)

예수께서 기적을 가장 많이 행하신 동네에서 회개하지 않자, 예수께서 그 동네들을 꾸짖으셨다. 코라진, 베싸이다, 가파르나움 등이 대표적인 동네였다.
예수께서는 이방 띠로와 시돈에서 기적을 행하셨다면 그들은 벌써 회개하였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띠로와 시돈이 심판날에 코라진 베싸이다보다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가파르나움은 그 교만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하신다. 심판날에 가파르나움보다 소돔이 더 가벼울 벌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교만한 사람들에게는 하늘나라의 비밀이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신 것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린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고백한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하늘나라의 비밀을 맡기신 이유가 아버지 밖에는 예수를 아는 사람이 없고, 아들과 아버지를 계시하시려고 택한 사람들 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다고 하신다. 예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예수께 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안식을 주시겠다고 하신다. 예수께서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셔서, 예수의 멍에를 메고 예수께 배우면 우리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라고 하신다. 예수의 멍에는 편하고 예수의 짐은 가볍다고 하신다.

//고라신, 벳세다, 가버나움 동네가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은 주님의 피리에 맞춰 춤을 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님이 곡하시는데 따라 울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하지 않으면 무거운 벌을 면할 수 없다.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다시 가르치신다. 천국복음은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하락된 쉼이다. 치열한 경쟁을 통한 성취가 아니라 고난을 통과한 쉼이다. 세상에서 으뜸이 되기 위한 지혜와 슬기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멍에를 함께 메자고 하신다. 임마누엘이다. 예수님 안에 거하라고 하신다. 그리하면 쉼을 얻는다고 하신다. 세상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평안을 주신다고 하신다. 예수님의 멍에와 짐은 세상 지혜와 슬기로 따지면 결코 쉽지도 가볍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멘다면 그보다 쉬운 멍에도 없을 것이요 그보다 가벼운 짐도 없을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멘다른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임마누엘이다.

https://quietwaters.blog/2023/02/16/

마태복음 11:2-19

마태복음 11:2-19 (공동번역)

투옥 당한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행하는 일을 전해 들었다.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 오실 분이 바로 선생님이신지 아니면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는지 묻게 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하여 진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시며 보고 들은 대로 요한에게 알리라고 하셨다.
요한의 제자들이 물러간 후,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요한에 대해 말씀하셨다. 광야에 있던 요한이야 말로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셨다. 성서에서 ‘너보다 앞서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네 갈 길을 미리 닦아놓으리라’ 하신 말씀이 요한을 가리킨다고 하시며, 요한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중에 가장 큰 인물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요한 보다는 크다고 하셨다. 12절??. 모든 예언서와 율법이 예언하는 일은 요한에게서 끝난다. 예언서가 말하는 다시 오시기로 된 엘리야가 바로 요한이라고 하시며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어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세대는 예언의 말씀에 바른 반응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하신다. 세상은 요한의 금식에 대해서는 미쳤다고 하고, 인자는 세리와 죄인하고만 먹고 마신다고 말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은 이미 나타난 결과로 알 수 있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은 이미 나타난 결과로 알 수 있다. 요한의 의구심에 예수께서는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이미 나타난 결과로 (말씀의 성취로) 답을 대신하셨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요한이 예언서에서 말한 다시 온 엘리야라고 말씀하셨다. 말씀의 성취(결과)는 분명한데 요한은 잠시 흔들렸고, 사람들은 결과를 바로 읽어내지 못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성서(말씀)이라는 잣대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같은 잣대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요한의 금식도 예수님의 먹고 마시는 것도 모두 미친짓이 된다. //말씀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하여 진다.” 라는 말씀이 성취된 것도, 엘리야가 다시 온다는 말씀이 성취된 것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으로 확인시켜 주신다. //우리는 말씀이라는 잣대마저도 인위적으로 사용하는 잘못을 범한다. 성서도 성령에 붙들려 이해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다.

https://quietwaters.blog/2023/02/14/

마태복음 10:34-11:1

마태복음 10:34-11:1 (공동번역)

예수께서는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오셨다고 선언하신다. 부자가 모녀가 고부가 서로 맞서게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집안 식구가 서로 원수가 된다고 하신다. 그렇다고 부모나 자식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하신다. 주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을 잃고, 주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제자들을 맞아들이는 사람은 주님을 맞아들이는 사람들이며, 주님을 맞아들이는 사람은 주님을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사람이라고 하신다. 예언자를 예언자로 맞아들이면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며, 옳은 사람을 옳은 사람으로 맞아들이는 사람은 옳은 사람이 받을 상을 받을 것이다. 주님은보잘 것 없는 주님의 제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고 주는 사람은 반드시 예수의 제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가르치시고 근방 여러 마을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떠나셨다.

//하늘 나라 복음은 가족간을 이간시키고 심지어 원수가 되게 한다. 그렇다고 믿음을 지키지 위해 가족을 원수 같이 여겨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다. 전통적인 가족이라는 헌 부대에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다는 뜻이다. 육신의 아버지 대신 하늘 아버지를 가족의 머리로 하는 하늘 나라의 복음은 기존 가족관계를 찢어놓을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누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혈통과 육정과 사람의 뜻과 상관 없이 모두 가족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하늘 나라 복음을 먼저 받아들인 사람이 다른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이것이 가족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가족보다 예수를 더 사랑하는 유일한 길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하는 것이지 (불신) 가족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처럼 자기 희생의 길을 가는 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도 예수님이 받으신 상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 아니면 무엇이랴!

https://quietwaters.blog/2023/02/13/

마태복음 10:24-33

마태복음 10:24-33 (공동번역)

세상에는 청출어람이 있을 수 있어도 예수의 제자들에게는 아니다. 예수의 제자는 스승이신 예수께까지 자랄 수 있다. 이보다 바랄게 무언가?
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자기 식구들에게도 욕을 한다. 예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감추인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은밀히 가르치신 것을 제자들에게는 드러내놓고 가르치고 선포하라고 하신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신을 아울러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 하라고 하신다. 아버지 하느님은 참새 한 마리도 귀하게 여기신다. 우리를 속속들이 아시는 아버지 하느님은 우리를 수 많은 참새보다 훨씬 더 귀하게 여기신다.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증언하면 주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을 안다고 증언하신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하신다.

//세상은 청출어람을 기대하고 노래하지만, 예수께서는 스승에게까지 자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바랄게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성도는 예수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굳이 청출어람을 꿈꾼다면,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보다 예수의 장성한 분량까지 더 가까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이다. //사실 하늘 나라에서 청출어람을 꿈꾼다면 교만의 극치다. 바알세불(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우리보다 특별히 더 심각한 악을 행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러나 평범해 보이지만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사람들 모두다 악인에 속한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 영혼을 죽이지는 못한다. 그러니 우리 영육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주님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도 우리를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지 않으신다. 그러면 우리 영혼은 죽는다.

https://quietwaters.blog/2023/02/12/

마태복음 10:16-23

마태복음 10:16-23 (공동번역)

예수께서는 열둘은 보내실 때 마치 양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하셨다. 그러니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 같이 양순해야 한다고 하셨다. 하늘 나라를 선포하고 치유와 축귀를 행해도 제자들을 법정에 넘겨주고 회당에서 매질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니 조심하라고 경고하셨다. 총독들과 왕들에게 끌려가 재판을 받으며 그들과 이방인들 앞에서 예수를 증언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잡혀갔을 때 어떻게 변론할 까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때가 오면 제자들이 해야 할 말을 일러주실 것이라고 하셨다. 제자들 안에서 아버지의 성령이 말씀하실 것이다. 하늘 나라 복음으로 말미암아 가족간에 고발하는 일이 생기고 제자들은 예수님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박해하는 곳을 피하라고 하신다.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동네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 공동번역은 순결을 ‘양순’으로 번역한다. 원어사전에는 이 단어가 지혜의 상대어인 ‘미련하다’ 라는 뜻도 가지고있다고 한다. 바울은 로마서 16:19절에서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에서 이 (미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슬기로우면서도 미련하라. 이처럼 모순되는 말이 있을까? //슬기로우면서도 미련해야 하는 때는 이리 떼 가운데서다. 이리 떼란 제자들을 고발하는 자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슬기로움은 법정의 자리에까지 가서라도 예수를 증언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요, 미련함은 나의 지혜로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내주하시는 성령께 맡기는 온전히 맡기는 것이라고 적용해 본다. //가족관계에서도 다툼이 생기고 미움을 받겠지만 끝까지 견뎌야 한다. 예수께서는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불신 가족들을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적용해 본다. //이웃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다툼은 안 된다. 다툼이 생기지 않도록 피하라고 하신다. 화평이 우선이다. //제자들이 이스라엘 온 동네를 다 돌기 전에 인자가 오신다고 하신다. 상황상 재림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가 임박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https://quietwaters.blog/2023/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