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4:15-31

마태복음 24:15-31 (공동번역)

예수께서 종말의 때를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 예언자 다니엘이 말한 대로 황폐의 상징인 흉측한 우상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성전이 우상의 전이 될 것이다.) 그 때에 유다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가라고 하신다. 지붕에 있던 사람도 세간을 꺼내러 집안으로 내려오지 말고, 밭에 있는 사람도 겉옷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가지 마라고 하신다. 임산부가 불행하다고 하신다. 겨울이나 안식일에 피난가는 일이 없도록 기도하라고 하신다. 종말의 재난은 미증유의 재난이라고 하신다. 하느님께서 그 고생의 기간을 줄여주시지 않는다면 살아 남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하느님은 선택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 기간을 줄여주실 것이다. 종말의 때에 자칭 그리스도라는 사람들이 나타나겠지만 그들을 믿지 말라고 하신다. 그들은 선택받은 사람들마저 속이려고 큰 기적과 이상한 일들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니 자칭 그리스도라는 사람들을 믿지 말라고 하신다. 참된 그리스도는 빛처럼 확실하게 드러내실 것이다. 거짓 그리스도들은 시체가 있는 곳에 모여드는 독수리와 같다. 재난의 기간이 지나면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모든 천체가 흔들릴 것이다. 그러면 하늘에는 사람의 아들의 표징이 나타날 것이고 땅에서는 모든 민족이 가슴을 치며 울부짖을 것이다.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어 하느님이 택하신 사람들을 하늘 이끝에서 저끝까지 사방에서 불러 모을 것이다.

//마지막 때는 마지막 때다. 성전인 성도들의 모임에도 주님보다 돈과 건강과 자녀교육의 우상이 우뚝 서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피할 산은 어딜까? 좋은 설교자를 따라다니는 것일까? 그러나 그들의 메세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성도가 눈을 돌려 바라 봐야할, 아니 달려가야 할 산은 어딘가? 시온산, 곧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다. 성도 개인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가 바르게 살기 위해서다. 마음 속에 따뜻한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서다. 혹자는 그래서 좋은 설교자를 따라 다닌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말씀 자체에 힘이 있고 성령의 깨닫게 하심을 실천하는 것보다 더 나은 가르침은(설교자는) 없다. //주님의 다스림을 받고자 말씀을 따라 마음 속에 따뜻한 사랑을 회복한 사람들이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택하신 사람들을 불러 모으신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마음 속에 따뜻한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곧 믿음이다. //선한 목자의 음성을 아는 양만이 나팔 소리도 분별할 수 있다.

https://quietwaters.blog/2023/03/26/

마태복음 24:1-14

마태복음 24:1-14 (공동번역)

예수께서 성전을 나와서 얼마쯤 걸어가셨을 때 제자들이 예수께 성전 건물을 보라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성전의 돌들이 다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올리브 산에 올라가 앉으셨을 때 제자들이 언제 성전이 무너지겠는지, 주님께서 오실 때와 세상이 끝날 때 어떤 징조가 나타나는지 물었다. 예수께서는 아무에게도 속지 말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며 나타나 그리스도라고 떠들어 대는 수많은 사람들 속일 것이라고 하셨다. 여러번 난리와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정신을 차리고 당황하지 말라고 하신다. 기근과 지진도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다만 고통의 시작이라고 하신다. 사람들이 제자들을 잡아 법정에 넘겨 갖은 고통을 겪게 하고 사형에 처하게 할 것이라고 하신다. 제자들은 예수 때문에 온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 서로 배반하고 서로 미워할 것이라고 하신다. 거짓 예언자가 나타나 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세상은 무법천지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 속에 따뜻한 사랑을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다만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 하늘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모든 백성에게 밝히 알려진 다음에야 끝이 올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때가 이미 시작되었다. 그것도 2천년 전에. 아직도 마지막 때다. 마지막 때가 얼마나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영원에 잇대어 살면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따뜻한 사랑을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하시는데… 이미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여전히 사랑을 보기도 한다. //하늘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모든 백성에게 밝기 알려져야 한다. 하늘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것과 기독교가 모든 백성에게 밝히 알려지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개인적으로 하늘나라의 복음은 사랑의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요5:24)과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요일 3:14)이 같다고 본다. 적어도 요한은 믿음이 곧 형제사랑이라고 적용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다. 예수님도 율법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요약하셨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같다고 하셨다. 만약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구별하려고 한다면, 그건 그런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https://quietwaters.blog/2023/03/25/

마태복음23:29-39

마태복음23:29-39 (공동번역)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에 대한 책망이 이어진다. 그들은 자신들이 조상들과 다르게 예언자들을 죽이는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떠들어 대지만, 그것은 그들이 예언자를 죽인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실토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그들이 조상들이 시작한 일을 마저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이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다고 하신다. 그들이 뱀 같은 자들이며 독사의 족속들이라고 독설을 뱉으신다. 그들이 조상들처럼 예언자들과 현인들과 학자들을 죽이고 십자가에 매달고 회당에서 채찍질하며 잡으러 다닐 것이라고 하신다. 그들은 모든 무죄한 피 값을 치러야 한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이 이 세대에 내리고야 말 것이라고 하신다. 예루살렘. 주님의 말씀이 나오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예언자들을 죽이고 돌로 친다. 주님이 자녀들을 몇 번이나 품으려고 하셨지만 그들은 응하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다스림)에 응하지 않으면 성전이라도 하느님께 버림을 받아 황폐해진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양할 때까지 주님을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https://quietwaters.blog/2023/03/24/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죄를 종합하면 주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다. 조상들이 예언자들을 죽였다는 것은 실제로 죽인적도 있겠지만, 그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그들이 예언자들 통해 전해지 하나님의 말씀을 씹었다는 것은 결국, 그들이 하나님을 씹은 것이다. 더구나 종교지도자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이었다. 결국 그들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은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백성들의 불순종도 그들의 책임이다. //주님의 말씀은 주님의 다스림이요, 주님의 나라다. 주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 성전이라도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황폐 해진다. 주님의 나라는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 곧 주님을 찬양하는 백성들의 모임이다. 그곳에 주님이 함께 계신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곳에서 주님을 만날 수는 없다. 주님을 만나는 곳이 하나님나라다. 하늘이다.

마태복음 23:13-28

마태복음 23:13-28 (공동번역)

예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위선자라고 부르시며 그들이 화를 입을 것이라고 책망의 말씀하신다. 그들이 하늘나라 문을 닫아놓고 사람들을 가로막아 서서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마저 못들어가게 막는다. 그들이 겨우 한 사람을 개종시킨 후에 그 사람을 자신들보다 갑절이나 더 악한 지옥의 자식을 만든다.
예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눈먼자들이라 부르시며 그들이 화를 입을 것이라고 책망하신다. 그들은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성전의 황금을 두고한 맹세는 꼭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황금이 중요할까? 아니면 황금을 거룩하게 만드는 성전이 중요할까? 그들은 제단을 두고한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제단 위에 있는 제물을 두고한 맹세는 꼭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예수께서는 이번에도 제물과 제물을 거룩하게 만드는 제단 중에 어느 것이 더 중하냐? 하고 물으신다. 성전의 황금이든 제단 위의 제물이든 결국은 성전과 그 안에 계신 분을 두고한 맹세가 아니냐고 지적하신다. 하늘을 두고 한 맹세도 결국은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느님을 두고한 맹세라고 하신다.
예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위선자라고 부르시며 그들이 화를 입을 것이라고 거듭 말씀하신다. 그들이 소득의 십일조는 드리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책망하신다. 소득의 십일조도 바쳐야 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그들은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는 눈 먼 지도자라고 하신다. 겉만 깨끗하지 속은 착취와 탐욕으로 가득차 있는 그릇이라고 하신다. 그들에게 먼저 그릇 속을 깨끗이 닦으라고 하신다. 그래야 겉도 깨끗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심지어 그들을 겉만 그럴싸한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신다. 겉으로는 옳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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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quietwaters.blog/2023/03/23/

마태복음 23:1-12

마태복음 23:1-12 (공동번역)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마라. 그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위기 위한 것이다. 성서구절이 적힌 카드를 가지고 다니고 커다란 성경책을 들고 다닌다. 그리고 잔치와 회당에 가면 상석에 앉으려한다. 길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선생이라는 소리를 듣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는 소리를 듣지 마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 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마라. 너희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 뿐이시다.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마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https://quietwaters.blog/2023/03/22/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왜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되었는가? 물론 나라고 예외가 아닐 것이다. 여전히 리더쉽세미나가 판치는 세상이다. 지도/이끔 (leading) 이라는 단어대신 영향력 (influence) 이라는 단어로 옮겨가고 있지만 이 역시 세상가치로 따진다. ‘종의 리더쉽’이나 ‘섬김의 리더쉽’이라는 표현도 솔직히 빛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라고 하신다. 나의 선생님이 누구신지, 나의 주인이 누구신지 분명히 하라고 하신다. //선교지에서도 (아마도 교회에서도) 예수의 제자가 아닌 자신의 제자를 양산하는 (선)교사들이 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신다. 우리들의 아버지는 한 분 하나님이시고, 우리들의 지도자도 그리스도 한 분이시라고. 우리들은 모두 형제자매요, 동학/동문들이다. 성도들끼리 믿음의 선후배가 있을 수는 있으나 선생과 제자 사이는 없다.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우리 모두가 예수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 대신 스스로가 선생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 때 분파로 나뉘지 않던가! 권위는 사람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사는 것이다. 말로는 살 수 없고 본을 보이는 행실로만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