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2:12-24

열왕기상 12:12-24

닫힌 귀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잠언 29:7에 의인은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잘 알지만 악인은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못 본 체 한다는 말이 있다. 그 앞 29:2절에는 의인이 많으면 백성이 기뻐하지만,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을 한다는 말씀이 있다. 르호보암에게 정말 잘 적용되는 말씀이다. 르호보암은 의인의 길 대신 악인의 길을 택했다.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못 본 체했다. 백성들이 나와서 친히 탄원했지만 듣지 않았다. 백성의 사정을 듣지 않았다. 곧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모른 체했다. 결국 하나님도 르호보암을 모른다고 하실 것이다. 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통해 말씀하신다. 가난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복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7/06/03/

////9.26~10.3 인도네시아 서깔리만탄 방문으로

열왕기상 9:1-9

열왕기상 9:1-9

주님께서 두번째로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놀랍지 않은가? 성전을 건축하지 전에 나타나셨으니 이십년이 더 지나서야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주님이 솔로몬을 떠났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그동안 솔로몬이 주님을 찾지 않았다는 것일까?
주님은 솔로몬에게, 솔로몬이 한 기도와 간구를 들었다고 입을 떼신다. 그렇다면 왕궁을 완성하고 나서 성전을 봉헌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주님이 몇번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든, 주님은 같은 말씀을 솔로몬에게 하신다. 다윗처럼 살아라. 다윗처럼 산다는 것은, 주님이 명하신 것을 실천하고, 주님의 율례와 규례를 온전한 마음으로 올바르게 지키는 것이라고 풀이까지 해주신다. 그래야 다윗의 왕좌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시 확언해 주신다. //주님이 이십 여년만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것은 솔로몬이 다윗의 길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은 지난 이십년동안 솔로몬과 함께 하셨지만, 솔로몬이 다윗의 길을 따르지 않자 마지막 카드를 빼드신 것이다.
만약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곁길로 나아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면 이스라엘은 끊어질 것이요, 성전도 외면하겠다고 하신다. 이스라엘도 성전도 한낱 속담거리가 되고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하신다. 세상사람들도 이스라엘 백성이 재앙을 받은 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미혹되어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만약이라는 가정이 왜 필요할까? 솔로몬이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곁길로 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던가? 사관은 현재시점에서 여전히 기다리시는 주님의 자비를 드러낸다. 그러나 주님은 마냥 기다리시지는 않으신다. 끝이 있다.

내가 지은 것이, 나를 나되게 하지 않는다. 주님이 세워주셔야 한다.

https://quietwaters.blog/2017/05/26/

열왕기상 8:54-66

https://quietwaters.blog/2017/05/25/

/그/러/나/ 제일 감동은 봉헌식을 떠나는 백성들이 왕을 /축/복/ 했다는 것이다. 왕을 축복한 백성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왕을 축복한 그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사관은 백성들이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 하였더라.”[66] 라고 맺는다. // 왕이 백성을 축복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축사도 높은 사람들이 한다. 축하는 서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니 백성이 왕을 축복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왕께 ‘감사’하면서 떠난 것이 아니라 ‘축복’이라고 사관은 적었다. 각가그이 개인은 몰라도 ‘백성들’은 왕보다 위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엥 좌클릭 깜빡 깜빡 모드) 하여간 우리 정부도 국민들의 축복을 받았으면 좋겠다.

열왕기상 8:35-43

열왕기상 8:35-43

주님께 돌아와서 할 일은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예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세리의 기도가 좋은 예다. 주님 앞에 서면 한 없이 작아진다. 나는 죄인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주님의 자비가 아니면, 주님의 용서가 아니면 주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이것이 주님과의 관계를 트는 길이다. 하나님은 성전을 향해 하는 이 기도를 들으신다.
적에게 패하는 것도 가뭄과 기근과 역병과 전쟁과 전염병과 같은 재앙이 닥치는 근본적인 이유는 주님께 죄를 지어서다. 죄는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아서다. 주님을 인정하고 주님께 돌이켜 용서를 구하면 주님께서는 주님이 계신 하늘에서 기도를 들어주시고 용서해 주신다.
그런데 주님은 용서를 구하는 행위를 보지 않으시고 사람의 마음을 보신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주님은 이렇게 주의 백성이 주님을 경외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이방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성전에 나와, 성전을 향해, 곧 하나님께 기도하면 주님은 주님께서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그들이 주님을 경외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든 이방인이든 주께 나와 주님을 경외하며 살기를 원해야 한다. 다른 기도는 없다. 용서를 받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한다. 역으로는 주님을 경외하며 살기 위해서는 용서를 받아야 한다. 우리 주님이 그 길을 열어주셨다.

https://quietwaters.blog/2017/05/23/

[…오늘 본문에서도 기도와 간구의 핵심은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온 이스라엘의 잘못도 이스라엘에 속한 각각의 개인의 잘못도 그 잘못에 따른 전쟁과 기근과 가뭄과 재앙과 질병이라는 벌을 받아야 했다. 그렇다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주의해서 살펴야 할 것은 솔로몬의 기도는 전쟁과 기근과 가뭄과 재앙과 질병이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순종의 열매들이다. 기도의 열매가 아니다. 기도는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벌을 받을 때 돌이키게 해달라는 것이다. 은혜의 통로다….]